헨 킴 ‘미지에서의 여름’: 당신의 꿈 비추는 한여름 밤의 달

[아시아엔=서의미 기자] 사람들은 ‘현실로부터의 도피’란 단어를 접했을 때 어떤 이미지들을 떠올릴까? ‘겁이 많다’ ‘현실을 두려워만 한다’ ‘정신을 놓았다’ 등 부정적인 의미들로 가득하다. 우리들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늘 책임감을 갖고, 효율적으로 행동하며, 항상 최고만을 추구하라고 배운다.

그 숨막히는 삶 속에서 몽상가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빈둥거리기나 한다’는 비아냥이나 듣는 게 전부다. 인간은 누구나 꿈을 꾸며 살라고 배우지만, 현실이란 굴레 안에서 꿈틀거리는 게 고작인 불편한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일러스트레이터 헨 킴은 지금 이 순간도 발칙한 꿈을 꾸며 현실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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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백의 물감만이 채워진 팔레트로부터 탄생한 그녀의 작품들은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작품 속 캐릭터들은 고래등을 타고 우주를 헤엄치고, 구름 위를 날아다니며 책 속의 바다로 풍덩 빠져드는 등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들을 거리낌 없이 벌인다. 또한 그녀의 캐릭터들은 하나 같이 얼굴을 가린 채 등장한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들은 ‘비현실적?이란 이유로 우리 가슴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꿈과 욕망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2015년 4월 인스타그램을 통해 작품을 알리기 시작한 헨 킴. 그녀의 작품들은 현재 모바일 메신저의 이모티콘으로 사용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즐겨 찾고 있다. 70만의 팔로워들도 그녀의 새로운 포스팅에 열광하며 피드백을 남긴다. “헨 킴의 작품은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의 감정들을 끄집어 낸다.”

헨 킴은 매 작품마다 작가의 작화 의도가 담긴 시구들을 더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시구들은 현실에선 납득하기 어려운 ‘꿈 속의 이야기’이기에 당신의 감수성을 일깨워준다. 책들로 가득한 한 남자의 가슴 속으로 걸어가는 여자를 묘사한 작품과 문구 ‘Read all about you. 너를 읽다. 숨겨둔 네 이야기들을 보여줘. 하나씩 읽어가면서 난 너와 더 가까워지겠지. 조금씩 천천히’는 그녀의 작품과 시구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

그리고 지난 7월 29일, 그녀의 첫 개인 전시회 ‘헨 킴: 미지에서의 여름’이 열렸다. 대림미술관 D Project Space와의 협업으로 용산구 한남동 구슬모아 당구장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회는 대중에게 무료로 공개된다. 모바일 또는 모니터를 통해 대중과 만났던 그녀의 작품들은 3D 흑백 화면을 통해 새롭게 탄생했다.

전시회장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자그마한 방 크기의 달이다. 이 달을 기점으로 전시회는 ‘밤-꿈-깊은 꿈-아침’ 4개의 섹션으로 나뉜다. 현실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들이 이곳에선 너무나 당연하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은 아침을 반기고, 꿈 속의 이미지들은 아침과 낮보다 생생하고 선명하다. 마치 한 여름 밤의 꿈을 꾸듯.

주최측은 “그녀의 작품은 관객의 가슴 깊은 곳에 자리한 감성을 자극하고, 현실의 무거운 짐과 상처들을 보듬어 준다. 이 전시회는 관객들을 치유하기 위해 기획됐다”고 말한다. D Project Space는 “전시회 안의 달은 아티스트에게 치유를 상징하는 중요한 매개체다. 달은 또한 아티스트가 숨가쁜 일상에 지쳐 하늘을 바라볼 여유조차 없는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선물이기도 하다.”라고 덧붙였다. 여름 밤의 시원한 산들바람을 떠올리게 하는 ‘미지에서의 여름’은 사람들에게 더 큰 꿈을 갖고 더 나은 현실을 살아가라고 속삭인다.

이번 전시회는 여름의 자취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을 10월 1일에 막을 내린다. 물론 그녀의 작품활동은 앞으로도 이어진다. 그녀는 이미 유니세프, 테드, 위워크 등 유명단체들과의 협업을 계획하고 있으며, 머지 않은 시일 내에 사람들의 감수성을 다시금 일깨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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