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당선] 해외동포 목소리 들리시나요?

재외동포현황 총계

[아시아엔=경윤주 해외 언론인, 텍사스 iNewsNet 대표, 재외동포언론인협의회 정책위원장 역임] 제19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재외선거 투표율이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급박하게 치러진 대통령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역대 가장 많은 유권자들이 75.3%로 사상 최고 투표율을 기록하자 나라 안의 이목이 집중됐다. 재외선거 풍경은 한국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투표를 위해 대여섯 시간을 쉼없이 운전해온 후 투표가 끝나자마자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 이들의 얼굴엔, 그러나 피곤함 대신 뿌듯함이 가득하다. 현장에 있지 않고서는 절대 공감할 수 없는 뜨거움이다.

“외국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피상적인 말로는 결코 설명되지 않는 이 간절함 속에 새 정부가 추진해야 할 재외동포정책의 열쇠가 담겨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당과 후보들이 제각각의 공약을 발표했다. 선거 때만 반짝 등장하는 빛 좋은 개살구도 있고, 신속히 추진돼야 할 과제도 있다. 선거공약만큼 국민에게 친화적인 언어는 없다. 표심을 얻기 위해 포퓰리즘도 마다하지 않는 게 선거공약이다. 그러나 어찌된 게 재외동포정책은 면밀히 뜯어보고 세심히 살펴봐도 각 당의 차별성을 찾을 수 없다. 지난 수년간 해외 한인사회가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재외동포 전담기구가 약간의 차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재외동포청’으로, 자유한국당은 ‘재외동포처’, 국민의당에서는 ‘재외국민위원회’로 이름을 바꿔 내걸리는 식이다.

한국의 정치권은 재외동포들을 끊임없이 글로벌시대의 자산이라고 추켜세우지만 언제나 말 뿐이다. 일례로 1997년 설립된 재외동포재단을 동포청(처) 또는 동포위원회로 키우자는 논의는 이미 오래전부터 말만 무성할 뿐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해묵은 공약’이 된 지 오래다.

현재 해외 한인사회에서 시급한 현안으로 바라보고 있는 정책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재외동포 전담기구 신설이다. 현재 정부조직법상 재외동포 정책은 외교부 장관이 종합 수립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총리실 소속 ‘재외동포정책위원회’가 동포정책을 심의·조정하도록 돼 있고, 실제로는 법무부(출입국) 고용부(노무) 보건복지부(입양) 선거관리위원회(재외선거) 병무청(병역) 등 11개 부처로 업무가 흩어져 있다. 이러한 체제로는 대한민국 인구의 15%에 달하는 재외동포정책이 제대로 시행될 수 없다. 분산된 힘을 한 곳으로 모아 재외국민과 한국간의 유기적인 협력을 이뤄내는 재외동포정책 전담기구가 절실하다.

두번째는 한인 2세들의 발목을 잡는 선천적 복수국적제도의 개선이다. 현행 국적법은 출생 당시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이면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된다. 2016년부터는 부계주의에서 부모 양계주의로 확대 적용돼 혼혈인 2세까지 이에 해당한다. 이 법은 미주 한인 2세들이 공직이나 정치 입문, 사관학교 진학, 경찰 및 소방관, 정보기관, 국공립 교사 등 신원조회가 필요한 모든 직종에 진출할 때 이중국적으로 인한 불이익을 받게 된다. 더욱이 남자의 경우 한국 호적에 흔적조차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태어날 때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만 18세가 되는 해 3월 31일까지 한국국적을 이탈하지 않으면 만 38세가 될 때까지 한국국적 이탈이 불가능하다.

이 악법은 2005년 통과된 개정 국적법, 소위 ‘홍준표법’에 기인한다. 원정출산과 병역기피자를 막는다는 명목이었지만 실제로는 20만명이 넘는 미주 한인 2세와 혼혈 2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밖에도 복수국적의 연령확대와 인터넷 투표제 도입, 해외 한인언론의 정부지원 확대 등의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그러나 화급을 다투는 현안보다 선행돼야 하는 게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규정하고 있는 재외동포는 누구이고, 새 정부가 수립하고자 하는 재외동포정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가장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개념정리다.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 수십년간 ‘글로벌 한민족’을 국정과제로 삼아왔다. 그러나 정작 세계 곳곳에 산재한 재외동포들을 위한 정책은 전무하다. 재외동포정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건 ‘국적’이라는 수도꼭지에 막혀 있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금 국토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조건은 조금씩 다르지만 미국을 비롯해 영국과 프랑스, 캐나다와 러시아, 호주와 뉴질랜드, 이탈리아와 핀란드, 스위스 등의 나라가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있다. 복수국적을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허용하는 국가는 전 세계에 80개국을 넘는다.

전 세계에 흩어진 한인 디아스포라의 힘이 ‘국력’으로 승화될 수 있는 세계화시대에, 대한민국 정부는 ‘국적’이라는 수도꼭지에 막혀 엄연히 대한민국 사람인 글로벌 인재를 남의 나라에 뺏기고, 장차 세계의 중심이 될 한인 2세들의 국적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이처럼 △재외동포 전담기구 설치 △선천적 복수국적 제도 개선 △복수국적의 연령확대 요구 등 재외동포정책의 덜미를 잡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도 ‘국적’의 연장선상에 있다. 현행 국적제도는 한국 내에서 이중국적을 악용하려는 이들에 대한 경계태세에 지나치게 치중하다 보니, 해외에 거주하면서 실질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는 해외동포들에게 거대한 족쇄가 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계 미국인’의 성공사례는 늘 한국인의 자랑거리가 된다. 그들의 논리로 보면 엄연히 ‘외국인’인데도 말이다.

세계화의 움직임은 빠르고 거세다. 해외동포들에게 맹목적인 애국심만을 강조해 ‘한민족’임을 강제할 것이 아니라, 재외동포들이 각 나라에서 당당한 한국 국민으로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한다.

국적법 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세계화의 흐름이다. 재외동포들에게 ‘한국인’ 아니면 ‘외국인’이라는 흑백논리를 강요하는 한 그 어떤 재외동포 정책도 시대착오적인 방안이 될 수밖에 없다. 22만1981명의 재외국민은 전 세계가 대한민국의 영토가 되어 발 딛고 선 땅 위에서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절실함으로 투표함에 희망을 담아 넣었다.

대한민국 인구의 15%에 달하는 750만 재외동포는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근간이다. 재외한인들의 국제적 위상과 해외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대한민국의 굳건한 글로벌 인프라를 구축해나가는 새 정부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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