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스페인 ‘게르니카 학살’과 ‘의령 우순경 총기난사’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35년 전 오늘 경남 의령의 시골 마을에서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관이 총기를 난사해 마을 주민 62명을 죽였다.

궁류 지서(지금의 궁류치안센터)에 근무하던 우범곤 순경이 범인이다. 우범곤과 당시 사건 개요는 다음과 같다.

우범곤은 1982년 4월 26일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 궁류 지서에서 근무하던 중 총기난사 연속살인을 일으키고 수류탄으로 폭사했다.

부산 출생으로 해병대 복무 중 특등사수로 뽑히기도 했던 순경 우범곤은 경찰관으로 임용된 후 1981년 4월부터 1982년 2월까지 청와대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지만, 인사 과정에서 탈락하여 1982년 3월 의령군으로 좌천되었고, 동거녀(당시 25세)과 사이가 몹시 좋지 않았다. 경찰은 평소 술버릇이 나빴던 우범곤이 동거녀와 말다툼을 벌인 뒤 흥분 상태에서 우발적인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결론지었다.

1982년 4월 26일 오후 7시 30분경에 예비군 무기고에서 카빈소총 2정, 실탄 180발, 수류탄 7발을 들고 나왔다. 우범곤은 우선 우체국에서 일하던 집배원과 전화교환원을 살해하여 외부와의 통신을 두절시킨 후, 궁류면 내 4개 마을을 돌아다니며 전깃불이 켜진 집을 찾아다니며, 총을 쏘고 수류탄을 터뜨렸다. 자정이 지나자 우범곤은 총기 난사를 멈추고 평촌리 주민 집에 들어가 일가족 5명을 깨운 뒤, 4월 27일 새벽 5시경 수류탄 2발을 터뜨려 자폭했다. 이 사건으로 주민 62명이 사망했으며, 3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위키백과 참조)

군복무 중이던 기자는 당시 사건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아왔다. 기자가 된 후 종종 이 사건에 대해 ‘불경스런’ 의문을 던지곤 해왔다.

‘그 많은 피해자 가운데 누구 한 사람이 우범곤 순경에게 달려들어 격투를 벌였다면? 그래서 총기를 빼앗았다면?’

밤에 벌어진 일인데다 시골마을의 집집이 떨어져 있는 곳이 많아 무기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이해하면서도 ‘만일’은 꼬리를 문다. 아마도 고등학교 시절 국어교과서에서 읽은 대만의 ‘오봉설화’와 오버랩 돼서 그런 게 아닌가 하고 의문을 접기도 한다.

혹시 기자의 ‘불경스런 가정’이 당시 억울하게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과 유족께 누가 되지 않길 바란다.

우범곤 순경 총기난사 사건 발생 45년 전인 1937년 4월26일 독일군은 스페인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를 폭격해 1654명의 목숨을 빼앗고 889명을 다치게 했다. 사상자 대부분은 노인과 여자, 그리고 아이들이었다.

피카소는 자신의 고국에서 일어난 참상을 60여점의 크로키와 데생으로 그려 대형 캔버스에 하나로 조합한 작품을 남겼다. ‘게르니카’다.

시인 폴 엘리아르는 게르니카 학살을 이렇게 시로 전했다.

“살고 죽기 위한 공포와 용기/ 그렇게 어렵고 그렇게 쉽기도 한 죽음/ 보석을 노래하게 한 사람들/ 보석을 망쳐버린 사람들/ 절망 때문에 희망의 삼켜버릴 듯한 불을 피게 한 사람들/ 미래의 마지막 꽃봉오리를 피우자.”(게르니카의 승리)

게르니카와 의령 피해자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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