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 특별기고] 평창올림픽에 프란체스코 교황님을!
[아시아엔=이은재 공간에너지연구회 대표] 봄이다. 움츠렸던 겨울을 지나 찾아오는 봄에는 식물들이 하나, 둘 움트며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이 봄에 한국의 겨울을 생각한다. 300일 남짓 앞으로 다가온 평창올림픽을 떠올리면서다. 한국의 겨울은 거창하지 않지만 눈이 시릴 정도로 소박하고 아름답다. 눈이 쌓여 있는 한국의 겨울풍경은 시, 소설, 영화 등 다양한 예술작품들 속에서 많이 소개되어 왔다. 특히 서구에서 잘 알려진 이미륵 선생의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도 한국의 정조(情操)를 드러내며 한국의 겨울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그러나 한국인에게 겨울의 으뜸가는 풍경은 장독에서 얼음이 둥둥 떠 있는 동치미를 꺼내와 장작불로 덥힌 온돌방에서 한 사발 시원하게 들이키는 모습이다. 겨울 동(冬)에 김치를 나타내는 침(沈)자를 써서 동침(冬沈)으로 표기되었던 동치미는 겨울에 먹는 김치로서 우리 한국인에게는 대표적 겨울 음식이다. 동치미를 비롯해 한국의 겨울에는 한민족 고유의 음식인 간장, 된장, 고추장 등 숙성된 장(醬) 문화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이와 같은 한국의 숙성문화는 한 겨울을 시베리아를 연상시키는 차가움과 황량함으로 바라보는 대신 고요한 응축(凝縮)의 시간으로 받아 들였기 때문에 피어난 것이다.
겨울은 음양오행의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 가운데 수(水)로 이해된다. 우리 민족은 물을 화학적 물질상태로서의 H2O가 아니라 생명의 에너지를 응축시킨 수(水)의 상태로 바라봤다. 이 응축된 에너지가 활짝 피어나는 봄(木)을 준비하기 위하여 숙성문화를 일구어낸 것이다. 한국의 숙성문화는 바로 맑은 물과 공기, 그리고 깨끗한 흙이 삼위일체가 되어 빚어낸 최고의 문화이자 예술작품이다. 한국의 겨울은 이런 과정을 통해 최고의 눈과 얼음으로 빚어지곤 한다. 세계인들에게 이같은 과정과 결과물들을 전파하는 것이 평창올림픽의 중요한 미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평창올림픽은 단지 스포츠 축제의 성격을 뛰어넘어 지구촌 모두에게 우리 한국이 어떻게 겨울을 이해하고 맞아왔는지, 그리고 이를 철학 및 생활과학과 어떻게 접목시켜 왔는지 펼쳐 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평창올림픽은 겨울스포츠뿐 아니라 문화올림픽, 환경올림픽, 과학올림픽이 되어야 그리스 시대 및 19세기 말 쿠베르탱이 제창한 제2의 올림픽을 뛰어넘어 바야흐로 ‘제3의 올림픽’으로 계승·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2018 평창올림픽’이 한국의 고유한 문화유산인 숙성문화를 널리 소개해 지구촌의 겨울문화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면 역대 어느 동계올림픽과는 매우 차별화된 올림픽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대회 개최를 1년 남짓 앞두고 조직위원장을 맡게 된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평창올림픽을 당초 약속대로 경제·평화·문화·환경올림픽이 되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면서 “지금까지 해오던 과제 외에도 더 많은 과제를 발굴하고, 모든 분야에서 평화와 환경 등이 접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전적으로 맞는 말이며 그대로 실현된다면 올림픽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평창올림픽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 즉 프란체스코 교황님의 참석을 정중하게 당부 드리고 싶다. 교황님의 올림픽 참석(참관)은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이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인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휴전선의 코앞인 평창에서 열린다는 역설적이고 비극적인 현실에 대한 直視를 의미한다. 최근 교황님께서는 “위선적 신자보다 무신론자가 낫다”고 말씀해 큰 울림과 공감을 주셨다. 나는 프란체스코 교황님께서 평창에서 이렇게 나지막하게 외쳐주시길 바란다. “형제자매들이여, 미워하고 다툴 시간에 대화하고 용서하세요. 전쟁과 파괴가 아니라 맑은 물과 공기 그리고 깨끗한 흙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도록 노력합시다.”
평창올림픽은 물질주의로 오염된 올림픽 정신을 한겨울의 응축과 같은 통렬한 반성과 자각을 통해 애초의 숭고한 정신으로 회복시키는 장(場)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산업화와 환경오염으로 인한 지구의 위기는 물과 공기 뿐 아니라 인류의 정신마저도 병들게 했으며, 그 예로 건전한 육체와 정신의 제전이어야 할 올림픽을 화려한 건축물과 이벤트로 세계인의 눈과 귀를 현혹시키는 거대사업으로 변질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창올림픽에는 반드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방문해 주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그는 지구촌 구석구석을 오염시키고 있는 물질만능주의와 패권주의를 걷어낼 수 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현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를 통해 한국의 참모습이 전 세계에 전달된다면, 그리하여 한국의 긍정적 에너지와 문화가 널리 전파되어 그곳에서 숙성된다면 인류는 새로운 영성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