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평창올림픽 폐막식에서 보고 싶은 사람들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25일 평창올림픽 폐막을 나흘 앞두고 남다른 감회에 젖은 이들이 있다. 냉전 시절 일본 삿포로동계올림픽이 열리던 1972년 2월 17일, 분단 후 처음으로 서울의 오빠 한필성(1932~20 년생)씨와 국제통화를 한 북한 스피드스케이트 선수 한필화(76·평양 거주)씨다.
분단 후 처음 있는 남북 남매간의 통화에 한반도는 물론 세계는 눈물바다가 됐다.
한필화는 1964년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에서 동양인 최초로 3000m에서 은메달을 따며 주목을 받았다. 남북 전화 상봉 46년, 당시 오빠 한필성씨는 <아시아엔> 취재 결과 2013년 10월 27일 동생을 그리며 눈을 감았다.
현재 한씨 부인 홍애자(1928년생)씨는 일산에서 막내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홍씨는 작년 추석 연휴 기간 팔순 잔치를 하며 남편과 시누이(한필화)를 그리며 눈가에 이슬이 맺었다.
한필성-홍애자 부부는 기석·애자·승정·태석씨 등 2남2녀를 두었다. 손자·증손자가 스무명을 넘어 주변에서는 “평소 좋은 일을 많이 하시니 자손복도 많으시다”는 얘기를 듣는다고 한다.
부인 홍씨는 “죽기 전에 애들 남편 고향(진남포)하고 우리 고향 선천에 가고 싶다”고 했다.
또 한분이 있다. 8·15 광복 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인 1948년 1월 30일~2월 8일 스위스의 생 모리츠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 우리 국호인 KOREA와 태극기를 앞세워 참가한 고 이효창(1922~2006) 선생 부인 하상남(92·여성발명가)씨다.
스피드스케이트 선수인 이효창은 제1회 한국빙상선수권대회 우승(1946)과 전일본선수권대회 빙상 종합우승(1944) 등 일제 때부터 이름을 날렸다.
생모리츠 올림픽에 문동성·이종국 등과 출전한 이효창은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이후 노르웨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거두며 한국 빙상스포츠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을 받았다.
여성벤처기업협회를 창립하는 등 기업인으로도 성공을 거둔 부인 하상남씨는 “이효창 선수가 태극기를 앞세워 독립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국가대표로 생모리츠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지 꼭 70년이 되는 올해 평창에 전세계 빙상인들이 모여 기량을 뽐내는 모습을 보니 절로 눈시울이 붉어진다”고 했다.
한필성씨 유족과 이효창 선수의 부인이 평창올림픽 폐막식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