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D-123] 남북 최초 전화상봉···”오빠! 나야 나, 오빠~” “필화야, 필화야”
평창올림픽이 4달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동계올림픽은 메달 수 못지 않게 남북관계 개선과 세계질서의 평화적 재편의 계기가 되길 바라는 염원이 많다. 동계올림픽 하면 김연아와 이상화 그리고 쇼트트랙을 떠올리게 된다. 그들은 언감생심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조국에 선사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근 반세기 전에 이미 한반도에 세계적인 스피드 스케이트 선수가 있었다. 북한 출신의 한필화(1942년생)가 주인공이다. 그는 1964년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에서 동양인 최초로 3000m에서 은메달을 따며 주목을 받았다. 그는 場外에서도 세계적인 화제를 던졌다. 1971년 2월17일 삿포로 동계올림픽에 참가했던 그녀는 도쿄에서 서울의 오빠 한필성(1932년생)씨와 국제전화를 한 것이다. 분단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들의 통화는 한반도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세계는 깊은 관심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아시아엔>은 남쪽 고 한필성씨 가족을 통해 남북한 전화상봉 이후 45년, 그들의 삶과 바램을 몇차례 나눠 싣는다. -편집자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오빠 나야 나, 오빠!” “필화야, 필화야” 전화는 30분건 연결됐지만 실제 나눈 이야기는 많지 않았다. 남북한 오누이의 21년만의 전화상봉은 이렇게 이뤄지고 끝이났다. 진남포가 고향인 오누이는 한국전쟁 발발 때 10남매의 장남이던 필성씨가 단신 월남하면서 생이별을 해야 했다. 이들은 전화상봉 19년 뒤 1990년 2월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제2회 동계아시아경기대회 기간 실제로 이루어졌다. 필성-필화 남매와 올케 홍애자(1928년생)씨는 2~3일간 함께 머물려 지난 세월을 되새김 하며 울고 또 웃었다.
그후 또다시 23년이 흐른 2013년 10월 27일 한필성씨는 꿈에도 그리던 동생을 그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4년이 지난 8일, 연휴 끝자락에 부인 홍애자씨 팔순잔치가 일산의 한 음식점에서 열렸다.
한필성-홍애자 부부는 2남2녀를 두었다. 손자·증손자가 스무명을 넘어 주변에서는 “평소 좋은 일을 많이 하시니 자손복도 많으시다”는 얘기를 듣는다고 한다.
장남 한기석(59·농산물유통업)씨는 아버지를 그리며 강산에의 ‘라구요’를 부르고, 큰딸 한애자(62)·현승정(71)씨 내외는 ‘엠마오로 가는 길’ 합창에 이어 딸은 ‘희망가’에 맞춰 장고춤을 췄다. 이날 팔순의 주인공은 둘쨋딸 정의(54)씨가 선물한 쌍가락으로 된 금반지를 끼고 흐뭇해 했다. “전에 끼던 금반지는 시누이(한필화) 줬지요. 벌써 20년이 훌쩍 지났구려.”
홍씨는 “죽기 전에 애들 할아버지 고향(진남포) 하고 우리 고향 선천에 가고 싶다”고 했다. 막내 한태석(51·임대업)씨가 거든다. “어머니 평창올림픽이 열리면 뭐라도 숨통이 트이지 않겠어요. 아버지 고향 가서 막국수도 함께 맛보고요.”(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