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독 당시 ‘프라이 카우프’, 우리도 추진할 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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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국방부에서 국군포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던 김영삼 정부 당시 일이다. 박용옥 국방부 정책실장이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이제 돈으로라도 그분들을 데려오자”는 제안을 냈다. 그저 아이디어 차원의 제안이었다. 곧이어 햇볕정책을 추진하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이 문제는 거론조차 안 되다가 노무현 정부 말기에 “전쟁시기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의 문제를 다룬다”는 희한한 의제로 제기됐다. 하지만 본격적인 논의는 시작도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이제 다시 그 아이디어를 정책으로 추진해볼 때도 되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지금과 같은 북한이 꾸며놓은 이벤트로 끝나서는 안 된다. 북한은 상봉행사에 놀랍게도 북한에 납북된 어부들까지 데리고 나온 적이 있다. 6·25 전후 이산가족들이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서 활용할 자원이 없다 보니 납북자까지 내보낸 것이다. 북한이 이제 체면이나 명분을 가릴 수 없는 최악의 절박한 상황에 도달하였다는 것을 노출한 것이다.

북한이 이런 고육지책까지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렇게 해서라도 한 푼이라도 손에 쥐어야 김정은 일족의 호구지책(糊口之策)이라도 강구할 수 있는 형편이 된 것이다. 때는 이제 왔다.

북한은 그동안 일관되게 6·25전쟁 중 국군포로는 정전협정에 따라 다 송환하였으며 남아 있는 포로는 한 명도 없다고 강변하여 왔다. 1970년대 북한과의 접촉이 시작된 이래 원천적으로 북한의 버릇을 잘못 들인 것은 김영삼 정부으로부터 시작된다. YS는 “민족보다 앞서는 가치는 없다”면서 이인모를 비롯, 수십 명의 미전향장기수를 북으로 돌려보내면서 이를 억류된 국군 포로와는 아무런 연관을 짓지 않았다. 이런 어리석은 대북정책은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대북정책 전략을 구상, 추진하는 데 있어 훨씬 더 과감하고 적극적인 접근을 시도할 때가 되었다. 서독이 동독에 돈을 주고 정치범을 사오던 프라이카우프(Frei Kauf)를 북한에 대해 시도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최우선으로 모셔올 분들은 당연히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와 그 가족들이다. 다음은 납북자와 그 가족들이다. 북한도 이제 이러한 종류의 거래를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되지 않았느냐를 다시 확인할 시점이다. 물론 이미 이산상봉 상봉행사에서 일부 성과로 드러났듯이 말이다.

독일통일은 오랜 기간 노력하여 이루어진 것이지 어느 날 대박으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독일 정치인, 학자들의 통일에 대한 조언을 무엇보다도 귀하게 들어야 한다. 경험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신뢰할 수 있는 지혜의 원천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사이에서 통일을 이룩한 그들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로 둘러싸인 우리의 외교환경과 똑 같다.

통일은 무작정 기다리는 비원(悲願)이 아니라,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이며 이러한 노력의 소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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