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영국-프랑스와 중국-일본의 악연, 어느 게 더 뿌리 깊을까?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가면 이집트 상형문자가 새겨진 로제타 스톤이 있다. 1801년 영국군이 알렉산드리아에서 나폴레옹에 승리하여 몰수해온 것으로 천재 언어학자 샹폴레옹이 해독하여 이집트 학의 기초를 세운 프랑스의 자랑이었다. 이 프랑스의 국보가 온 세계인이 관람하는 대영박물관에 있는 것이다. 문화국가의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프랑스인을 모욕하는 데 이만큼 처절한 것이 없을 것이다.
프랑스의 면적은 50만km²로 스페인의 55만km²에 이어 유럽에서 두번째다. 산업혁명 이전, 농업이 주산업인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부국이었고 동원할 수 있는 병력도 월등한 최강국이었다. 불과 두 세기 전에 나폴레옹은 전 유럽을 거의 정복하였다. 프랑스어는 1차대전까지 유럽 왕실의 공용어였다. 유럽에서 프랑스의 위상은 아시아의 중국과 거의 같았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1815년에서 1차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 백년 동안 영국은 5대륙 6대주에서 대영제국을 이루었지만 유럽에서도 명실공히 ‘영광의 고립’을 누릴 수 있는 패자(?者)였다. 이 동안 프랑스는 영국에 밀리는 맞수였다. 1차대전 전까지 영국의 참모본부는 프랑스의 침공에 대비하는 작전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은 청일전쟁에서 패한 이후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에서 일본에 계속 굴욕을 당해왔다. 아시아의 종주국 중국의 위상은 말할 수 없이 쭈그러들었다. 중국은 그중에서도 중일전쟁 중 30만명 이상이 참살된 ‘난징대학살’을 가장 큰 능욕으로 여긴다. 총살이 아니라 칼로 목을 쳐 죽이는 자살(刺殺)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이를 유네스코인류문화유산에 등록하려 하고, 일본은 한사코 막으려 한다. 우리가 위안부 문제에 치를 떠는 것과도 같다. 중국과 일본이 불구대천(不俱戴天)이듯이 프랑스는 영국과 구원(舊怨)이 깊다.
양국이 원수지간이 된 뿌리도 깊다. 보불전쟁까지 천년 동안 프랑스는 독일을 압도하였다.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입은 자존심의 상처는 알폰스 도테의 <마지막 수업>에 잘 그려져 있다. 특히 20세기 들어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는 독일에게 철저하게 망가졌다. 하지만 2차대전 후 드골은 아데나워와 손을 잡고 1957년 EEC를 발족시켰다. 이것이 1967년 EC가 되었는데 드골은 1973년에야 영국의 가입에 동의하였다. 1993년 EC 전체회원국은 마스트리히트조약을 비준, ‘하나의 유럽’을 지향하는 의회, 집행부, 재판소를 갖춘 EU로 발전되었다.
따라서 EU는 기본적으로 독일과 프랑스가 주인이며 영국은 어디까지나 객(客)이다.
연합군이 노르망디상륙작전에 성공하여 유럽으로 진군하면서 자유 프랑스군을 이끌던 드골은 파리에 개선할 때 미군 1개 사단을 빌렸다. 드골의 굴욕감은 사무쳤을 것이다. 이번 브렉시트가 이루어지자 올란드 프랑스 대통령이 영국에 “EU에서 빨리 나가라”고 재촉하는 것도 이런 역사적 앙금이 있다.
영국과 프랑스, 중국과 일본의 앙금은 앞으로도 천년을 갈 것이다. 이것이 역사이고, 엄연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