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한풍漢風 시대②] 한국, 유치원서 노인정까지 중국어 열풍
<아시아엔>-중국 <길림신문> 공동기획
[아시아엔=길림신문 특별취재팀/김경 김영화 안상근 유경봉 최화 한정일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9월 4일, 상하이 쉐라톤호텔에서 열린 한중비즈니스포럼에 참석한 자리에서 “중국에서 한국드라마와 케이팝(K-Pop)이 큰 인기를 끌고 있고 한국에서는 중국어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며 중국어열풍에 대해 직접 언급했다.
길림신문 특별취재팀은 한국의 부자동네 유치원생으로부터 시골의 80대 노인까지, 대그룹 직원에서 강원도 작은 마을주민까지 만나면서 한국 전반에서 일고 있는 중국어열풍을 실감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2014년 중국어 교재판매량이 전년 15% 증가에서 33%로 2배 넘게 늘었으며 판매량은 동기대비 영어교재 판매량 성장률 23%을 두배 이상 웃도는 54% 성장했다. 따라서 영어교재의 시장점유율은 전년도 59%에서 올해 40%로 급락하면서 영어교재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한국에서 중국어를 배우고 있는 사람은 2013년 이미 140만명을 넘었으며 140여 대학에서 중국어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한국 교육부는 전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중국어수업을 개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중국어능력시험(HSK) 응시자 중에서 한국응시자가 전세계 응시자의 70%에 달하면서 몇 년전부터 해마다 국가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영어반 취소 중국어반 증설
서울 동대문구에서 중국어학원을 운영하는 40대 후반의 박아무개 원장은 세번째로 방향을 돌렸다. 박 원장은 “최초 영어학원을 개설했으나 곧 영어반과 중국어반을 나누어 개설했으며 지난해 5월부터는 아예 영어반을 취소하고 중국어반을 더 증설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중국어는 대학교나 고등학교의 선택과목으로 되었는데 지금은중학교, 초등학교는 물론 심지어 유치원에서도 중국어 공부를 시작하고 있다”며 “그야말로중국어가 봇물처럼 밀려온다”고 했다.
중국 여러 곳을 견학했다는 박 원장은 “중국어에 대한 수요가 확대될 것”이라며 자녀 둘을 모두 중국의 대학으로 유학보냈으며 이들 모두 현재 중국에서 취업중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현재 자녀가 외국유학을 가겠다고 하면 한국 학부모 10명중 1~2명은 미국유학을, 5~6명은 중국유학을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어를 쉽고 재미있게 효율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여러 명의 교사가 한 학생을 가르치는 것’, 즉 한 학생을 상대로 복습, 진도, 연습, 한국어-중국어 대화, 중국어-중국어 대화에 각기 담당교사를 배치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 가운데 복습, 진도 및 연습은 학원에서 하고 기타 언어대화 및 실전연습은 인터넷 화상시스템으로 중국의 교사와 화상으로 하고 있다.
현재 그의 학원에는 유치원생부터 80세 어르신까지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 손녀가 한 학교에서 공부하는 특이한 정경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회사를 두고 있는 (주)드림이스트대표 이종근씨의 하루 일과는 오전 7시 걸려오는 ‘명가차이니즈 중국어’ 공부로 시작된다.
중국 단동시에 있는 중국인 원어민으로부터 국제 인터넷폰으로 10분에서 15분 가량 중국어 회화공부를 하는 것이다. 중국어 공부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바로 공부는 했으나 대화가 어려운 것이다. 원어민 중국교사와의 직접적인 인터넷폰 중국어 지도를 받으면서 이종근 대표는 요즘 중국에서 택시를 타거나 간단한 무역상담같은 일상적인 중국어 대화가 무난할 만큼 중국어 수준이 크게 올랐다.
이 대표는 “앞으로 어떤 분야든지 중국과는 꼭 일정 부분 관련될 것”이라며 “영어는 기본이고 이제는 중국어까지 기본적으로 배워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한다.
서울공자학원은 세계의 첫 공자학원으로 2004년 설립했다. 안영희 부원장은 “중국어를 배우려고 찾아오는 수강생들이 평소에도 400~500명, 방학기간이면 700~800명에 달한다”며 “현재는 서울시 여러 구청들과 기업들에서도 직원교육을 위한 중국어강좌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말한다.
서울공자학원에는 중국어를 배우려고 찾아드는 60세 이상 수강생들도 많다. 이들은 “퇴직 후 중국어 강사를 해보려고” “취미 삼아 배워 손자손녀들에게 가르쳐 주려고” “중국관광을 다녀오려고”등등 배우는 목적 또한 다양하다.
77세 시골할아버지도 “니호우” 늦깎이공부
한국 제주도의 용두암 해변가는 중국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곳이다. “이거우챈, 량거빠챈위안!”(하나에 5천원 두 개 사면 8000원이요) 해변가에서 해물을 구워서 파는 한국 상인들 발음과 억양이 서툰 중국말이지만 관광객들과 소통이 꽤 잘 된다.
제주 주재 중국 총영사관 손리민 영사는 “불과 몇 년 새 제주도 곳곳에서 중국어 인기가 급증했다”고 말한다. 관광 명소 제주에서 중국어에 능통한 직원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중국어만 잘 하면 일자리 구하기가 쉽다. 시집 온 중국인 아줌마들도 중국어 덕분에 맞벌이 수입이 짭잘해 싱글벙글 얼굴에 웃음꽃을 피운다. 중국어를 한다는 한가지 기능 때문에 면세점 직원으로 한달에 한화 180만~200만원의 월급을 받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제주도 인재개발원에서는 ‘2014 도민중국어교육사업’ 프로젝트를 가동해 도민 누구나 어디서나 중국어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김철환 면장은 ‘감탄조’로 말한다. “용평면은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평창군을 방문하는 중국 관광객 증가에 따른 대비책으로 마을 주민들의 요구에 의해 특별히 중국어반을 개설했다. 중국어반은 10개월 교육과정인데 수강생이 처음 18명으로 시작해 현재는 77세 어르신부터 15세 청소년까지 총 28명이 공부하는 중이다.”
대기업 직원 아침시간에? 무얼 공부하나 봤더니
취업난으로 경쟁이 치열화되는 구직시장에서 중국어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중국어 실력은 취업과 직장인의 승진에 직접 영향을 준다.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한우덕 소장은 “한국에서의 취직, 승진, 비즈니스, 무역에서 과거 영어가 기본조건이었다면 지금은 중국어 실력도 함께 기본조건으로 돼있다”고 소개한다.
서울시청 외국인담당 명예부시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이해응씨는 서울여자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길림성 집안시 출신이다. 이해응 명예부시장은 “한국에서 중국어의 위력을 가장 깊이 체감할 수 있는 곳이 대기업”이라며 “ 이곳에서 중국어에 대한 대우가 제2외국어 몸값을 훨씬 넘어섰다”고 한다.
LG화학에서 강사로 초청돼 직원들의 중국어 교육을 해온 그녀는 “매일 아침 8~9시 직원을 대상으로 중국어 강의를 했는데 중국어가 직원의 필수로, 진급의 조건으로 돼 직원들의 공부열정이 굉장하다”며 “대기업들에 중국어 원어민교사들이 직접 들어가 있으며 대기업의 중국 관련 투자설명회에 가면 아예 통역없이 중국어로 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취업경쟁률이 가장 높다는 삼성그룹의 경우 2011년 신입사원 채용부터 중국어능통자를 우대하겠다는방침을 밝힌 뒤 한국과외학원가에는 중국어 열풍이 폭풍처럼 터졌다. 삼성은 중국어인증시험에서 성적이 좋은 지원자에게 입사 시험점수의 3~5% 가점을 주기로 했고 승진시 중국어특기자를 우대하는 인사제도를 실시한다는 방침을 공개했다. 이에 따라 중국어 과외학원 학생수가 무려 전해 동기대비 60% 이상 급증하는 쓰나미가 일어났다고 한다.
SK그룹의 경우도 비슷하다. 홍보팀 안소희 부장은 “중국어점수가 승진점수에도 많이 반영되면서 매주 평일과 주말에 몇시간씩 조직하는 중국어강의에 대한 사원들의 열정이 영어강의를 능가할 정도”라고 했다.
대학 졸업인증제도까지 달라져
중국어 열풍이 한국대학의 졸업인증제도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한양대는 2014년 1월 영어졸업인증제를 폐지하고 중국어 등 제2외국어에 비중을 두는 방향으로 제도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이 대학은 2016년 신입생부터 중국어를 졸업의 필수조건으로 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양대 이영무 총장은 한국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영어와 중국어를 졸업필수과목으로 하는 ‘G2(미국 중국) 언어소양교육’을 도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양대는 2016년 신입생부터 중국어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한국외대는 이미 ‘졸업언어 2개 인증제를’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이 졸업을 위해 선택하는 언어는 영어 다음으로 중국어와 스페인어 순이다. 한국외대는 2016년부터 중국어교육학과를 신설하고 호남대는 2015년부터 전교생에게 중국어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유치원 중국어 조기교육 등장
한편 한국고교의경우 2012년 이미 중국어가 제2외국어의 자리를 차지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고교에서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개설한 학교는 2000년대에는 전체의 8.8%에 불과했지만 2012년 36.8%로 급증했다. 2000년 제2외국어 개설비율이 36.2%로 가장 높았던 독일어는 2012년 4%로 떨어졌고 프랑스어도 같은 기간 22%에서 5.1%로 감소했다.
서울 노원구 용화여고의 경우 10년전만 해도 일본어를 선택하는 학생이 가장 많았지만 최근엔 계속 하락하고 있다. 1학년 14학급 가운데 현재 중국어가 7개반으로 1위, 일본어 5개반, 프랑스어 2개반 등이다.
길림성 매하구 출신인 김홍매씨가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인천시 용일초등학교는 모든 학년에서 1년에 12교시의 중국어수업을 한다. 8교시는 중국문화, 3교시는 중국어, 그리고 1교시는 이미 배운 중국 관련 지식들을 정리한다. 김홍매씨는 “인천의 경인교육대학부속초등학교의 경우 중국어를 정규과목으로 지정하고 공자학원을 통해 중국에서 파견돼온 중국 원어민교사가 직접 강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부자동네로 불리는 강남지역에서 영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가르치는 한 유치원의 경우 등록금이 월 170만~180만원, 연 2000만원이 넘는다. 한국에서 대학등록금은 비싼 곳이 연 1241만원선이다.
중국어 사립유치원이 강남권을 중심으로 한국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중국어를 조기교육 과정에 설치하는 바람이 불고 있다. 이에 따라 오전 중국어, 오후엔 영어로 수업하는 일명 ‘반반유치원’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고려대 중어중문학과 권혁준 교수는 “1980년대초 대학에서 중국어전공을 선택한 것이 참 잘했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권혁준 교수는 “G2로 급부상한 중국이 세계문화와 경제를 이끌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의 중국어 열풍은 더욱 뜨거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