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성의 한국 계파정치 31] 이명박·박근혜 정부 이끄는 ‘TK사단’의 뿌리는?
[아시아엔=박종성 서원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민정당 집권 2기의 파쟁과 내분은 2공 당시 민주당 신·구파의 그것과 유사한 꼴이었다. 민정당 신주류와 수구파 간 갈등은 결국 쟁점화된 현안 해결보다 계보조직 구성원들로 하여금 소모적인 정통성 시비나 법통 문제에 집착하도록 유도한다. 따라서 4·19를 비 혁명적 방법을 통해 해결·승계한다는 2공의 통치명분이 민주당 신·구파 대결과 파쟁으로 무색해졌듯 민정당 신·구파 대립도 스스로의 해체를 향한 명분을 키워나간다.
이들 양 계파 사이에서 특히 정호용은 남다른 배신감과 과거 공화당 김종필 류(流)의 소외의식을 강하게 갖는다. 그는 전두환·노태우 등과 같이 육사 11기 동기로 하나회 최고선배 중 하나며 한국전쟁과 쿠데타 그늘에서 동고동락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당시 그에겐 동기생들이 누린 대통령직도, 민정당 대표최고위원 자리도 예정되어 있지 않았다. 오직 광주청문회 석상의 준엄한 질책과 누군가는 지불해야 할 속죄양 역할만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김종필이 그러했듯 그 역시 미국 외유를 감수·반복한다.
정호용이나 수구파와는 아랑곳없이 민정당내 계파 간 ‘무리 짓기’는 계속된다. 6공 개막 과도기에 얽힌 난제들을 우선순위에 따라 정리·수습(각종 청문회 개최, 전두환의 백담사행, 전두환 친인척비리 관련자 사법처리)한 노태우 체제는 민정당 당직자들과 사조직 성격이 강한 인맥구조 및 원로그룹 등 세 단위를 주축으로 당내 신·구파 결속을 유인한다.
1989년말 경, 노 체제는 민정당 내에서 ‘박준규·채문식·유학성’ 고문 밑에 임방현 중앙위의장, 이승윤 정책위의장, 김윤환 원내총무, 김영구 총재 비서실장, 김중권 제1사무차장, 심정구 재정위원장을 비롯하여 ‘박준병·이도선·이자헌·심명보·이춘구·김현욱·정순덕’ 의원 등으로 핵심진용을 갖춘다. 이들이 당 총재의 총애를 받는 측근들이었고 6공 말기까지 권력의 핵 주변에 모여든 인물들이다. 반면에 ‘윤길중·김정례’ 고문과 ‘이종찬·서정화·정석모·정재철·남재희·장성만·양창식’ 등 당 중앙집행위원들은 권력의 핵에 접근하지 못한다. 특히 이종찬은 철저히 소외된다.
사조직 성격이 강한 인맥구조는 야당과 마찬가지로 당 총재 출신지역을 축으로 뻗어나간다. 흔히 ‘TK사단’으로 통용되는 경북 인맥의 정점은 두말할 필요 없이 당 총재인 노태우였고 서로 섞이기 어려운 이질적 인물들로 경쟁·대결한 박준규·김윤환·정호용·김복동·박철언 등이 지맥(支脈)을 이룬다. 이들은 대구·경북을 세력기반으로 삼아 정계뿐 아니라 한국의 지배블록 일부를 장악하는 확실한 파워엘리트 그룹의 하나로 뿌리내린다.
80년대 말 민정당내 TK사단은 이들 4, 5명을 중간보스로 하여 ‘유수호·최운지·이정무·김용태·이치호·김한규’(이상 대구), ‘이진우·김일윤·박정수·박재홍·김진영·정동윤·김근수·정창화·황병우·오한구·이상득·황윤기·장영철·유학성·김중권’(이상 경북), ‘채문식·박태준·이원조·김인기·김종기·최재욱·이상회·김길홍·강재섭’(이상 전국구) 등이 모여 세를 형성한다. 이들은 각자 향후 최고 권력의 향배가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지 저울질하며 중간보스를 추종, 경우에 따라 계보 유파의 중간영역에 포진하거나 수시 변색(變色)한다.
이들은 분명한 색깔을 띠면서 세력을 형성해 나가는 계보구축방법을 쓰기보다 당내에 종횡으로 얽힌 수많은 인연과 선(線)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 후면에서 자신들의 지역세를 은밀히 키우거나 극도로 이를 감추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름을 바꾸거나 자진해산 선언을 하기도 한 ‘월계수회(月桂樹會)’나 ‘경구회(慶邱會)’ 같은 조직은 전두환의 ‘하나회’와는 또 다른 성격의 사조직으로 활용된다.
원로그룹으로 창당멤버 중 남아있던 인물들로는 ‘이종찬·채문식·윤길중’ 고문이 있었지만 이들의 지원은 부수적이었다. 이러한 세 힘의 중간단위들 주변에는 ‘정호용·이한동·권익현’ 등 수구파가 여전히 세 확장을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수구파와 신주류, TK와 비TK, 그리고 학연·지연 등으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민정당 계파가 당 내분을 격화시키며 새로운 위기조짐을 보이고 있던 1980년대 중반 및 후반, 야권 내부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잉태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