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에 압록강 건너 북한인권 알린 ‘7개 이름 가진 소녀’ 이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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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최정아 기자] 탈북자 이현서씨는 17세의 철없는 나이에 외부세계에 대한 호기심 하나로 압록강을 건넜다. 북한난민으로 오랫동안 중국 땅에 살면서 죽을 고비도 많이 겪었다. 2008년 한국으로 들어온 뒤 한국외대에서 수학하며, 북한인권을 논의하는 대학생 모임에 꾸준히 참여했다.

그러던 그녀가 처음 국제사회의 조명을 받은 것은 미국의 비영리재단에서 운영하는 강연회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에서 강의를 한 이후다. 탈북자들은 간혹 소규모 강연을 하는 경우는 있으나 TED 같은 권위 있고 공신력 있는 곳에서 강연을 하는 것은 드물다. 이후 그녀는 유엔 안보리 비공식 회의 등에서 북한 인권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뉴욕타임즈>에 자신의 이야기를 기고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지난 7월 자서전 <7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를 냈다. 이 책은 올해 안으로 20개국에서 발간될 예정이다. 또한 그녀는 출판기념회와 북한인권 컨퍼런스에 참여하기 위해 영국, 미국, 이탈리아, 폴란드 등 전세계를 누비고 있으며, 영국 미국 등 세계 유수언론들과 인터뷰하는 등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매거진 N> 인터뷰를 통해 어린 나이에 홀로 탈북하게 된 계기, 중국 내 탈북자들의 실상, 최근 논란이 된 외신기자들의 북한보도 등을 소상히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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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제목이 <7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다. 7개의 이름을 가졌던 이유가 무엇인가.
“‘이현서’는 나의 7번째 이름이다. 가명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사건이 있었다. 2001년 중국에 있을 당시, 본명을 쓰다가 공안에 잡혀간 적이 있다. 내 인생 최대 위기였다. 한번 북송을 당하면 정말 끝이다. 가족들까지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경찰서에 도착해 붙잡힌 탈북자들을 보니, 불연듯 ‘중국인인 척 해야겠다’란 생각이 떠올랐다. 다행히 평소 국제정세를 알기 위해 중국 신문을 자주 읽었고, 중국어도 능통해서 공안들이 “이 여자는 북한사람이 아닌 중국사람이다”라고 인정을 해버렸다. 그렇게 기적적으로 탈출한 뒤, 이사할 때마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이름을 바꿨다.”

17살 때 강을 건넜다고 들었다.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건너게 됐나.
“어렸을 땐 북한에서 사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 믿었다. 또 김일성이 정말 ‘신’이기 때문에 절대 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 믿음이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결국 김일성도 똑같은 인간이었다. 북한의 경제위기가 심해짐에 따라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고, 거리에서 사람들이 죽어갔다. 이후 몰래 커튼을 가리고 중국 TV를 보기 시작했다. 중국은 북한보다 못산다고 배웠는데, TV 속 중국은 그동안 알고 있던 모습과 판이하게 달랐다. TV 속 중국이 정말 실제 모습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결국 17살 나이에 철없이 압록강을 건넜다. 강을 건널 당시에는 몰랐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가족과 이별하고, 국제고아가 되어 17살 나이에 스스로 돈을 벌고 삶을 연명해야할 줄은 그땐 정말 몰랐다. 음식점 종업원부터 통역원까지 정말 수십 가지 일을 한 것 같다.”

압록강을 건넌 지 20년이 다 됐다. 이현서씨가 기억하는 북한과 오늘날의 북한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북한인권 상황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한국을 포함한 외부에서 착각하는 것이 있다. 북한이 많이 변했다고 많이들 말하는데 근본은 변하지 않았다. 물론 변한 것도 있다. 이설주가 등장한 뒤 치마길이가 짧아지는 등 패션혁명이 왔다거나 일부 지역에 자본주의가 퍼져 ‘돈’에 대한 관념이 변했다든가. 과거보다 북한 정권에 대한 충성심이 상당부분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 사람들은 여전히 이동의 자유가 없다. 대다수는 여권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공개총살 횟수가 더욱 많아지고 있다.”

이현서씨는 중국에서의 탈북자 현실을 제대로 알려줄 수 있는 몇 안되는 북한인권가다. 중국에서의 탈북자 삶이 궁금하다. (중국 당국은 그녀의 자서전을 판매 금지시켰다.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겪고 있는 실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쳤기 때문이다.)
“중국으로 건너간 탈북자 중 70~80%가 여성이다. 북한에서 남자는 무조건 일을 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은 여성들이 탈북을 많이 한다. 일단 탈북하면 갈 곳이 없다. 탈북여성들을 기다리는 건 브로커들이다. 성노예로 팔려 중국인에게 강제시집을 가는 거다. 보통은 지적장애인이나 나이가 많은 남자한테 팔려간다. 그러다가 탈북자란 사실이 걸리면 북송을 당한다. 브로커들도 북송당한 사람들 모두 공개총살 당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탈북여성들을 단순히 ‘상품’으로 여기기 때문에 모른척하고 팔아넘긴다.”

미국 언론들 사이에서 ‘북한 보도, 어떻게 취재해야 하는가’를 놓고 공방을 벌인 것으로 알고 있다. ‘작은 정보라도 없는 것보다 낫다’라는 입장과 ‘북한의 프로파간다를 무비판적으로 보도한 셈이다’라는 주장이 부딪혔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뉴욕타임즈> 사진기자가 ‘눈부신 북한’(Illuminating North Korea)이란 제목의 르포를 쓴 것으로 알고 있다. 북한 주재 외신기자들은 북한 정권이 허가한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취재가 가능하다. 평양만 보고 북한이라 말하면 안 된다. 평양은 ‘백두혈통’을 위한 왕국이다. 나도 예전에 친척이 평양에 살아서 두 번 가봤는데 지방과 천지차이다. 그 때도 그랬는데 지금은 어떻겠나. 북한이 운영하고 있는 사이트 ‘우리민족끼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민족끼리 갤러리에 들어가면 화려한 사진들이 즐비하다. 사진만 보면 북한도 살만한 곳이다. 이런 사진은 1990년대에도 만들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 ‘가짜 사진들’을 그대로 보도하는 건 북한 정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논란이 된 신은미씨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평양의 한 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일했던 재미교포 수지킴이란 사람이 있다. 신은미씨와 비슷한 시기에 평양에 머물렀다. 그녀는 란 제목의 자서전에서 평양을 ‘거대한 감옥’이라고 표현했다. 신은미씨가 평양을 ‘살만한 세상’이라 묘사한 것과 상반된다. 지난 7월 신은미씨가 주장한 북한의 ‘종교의 자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신은미씨는 SNS를 통해 평양 칠골교회의 모습을 공개했다. 평양에 봉수교회와 칠골교회 두 곳이 있는데 북한정권의 프로파간다를 위한 곳이다. 즉 ‘북한은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선전하는 장소다. 예전에 봉수교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이 교회에서 한 여자가 “조선의 하늘에선 조선의 별을 믿는다”고 하더라. 이 말은 북한에서 유명한 말이다. ‘조선의 별’은 김일성을 뜻한다. 평양 교회가 가짜란 사실은 알 만한 사람 다 아는데, 신은미씨가 이 부분을 정말 몰랐는지 궁금하다.”

(c) Noman Studio (1)

최근 탈북자들의 증언에 대한 신뢰성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한국에 입국하는 탈북자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북한에 대해 증언해줄 수 있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주목을 받기 위해 부풀려서 증언하는 탈북자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해외의 경우, 인터뷰를 하면 ‘이현서씨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는 질문이 직접적으로 들어온다. 한국인들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북한의 상황을 외국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도 있어, 신뢰성에 의문을 던지는 외신기자들이 있는 것이다. 참 힘들고 안타깝다. 탈북자 출신 북한인권운동가들이 더욱 노력해야할 부분 같다.”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아일랜드, 홍콩, 인도, 대만 등 여러 나라에서 자서전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한국어판은 아직 출판이 안됐다.
“올해까지 총 20개국에 출간될 예정이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은 빠져있다. 이런 사실이 민망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이것이 지금 우리 한국의 상황이다.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사실 국내 대형출판사에서 자서전을 출판하고 싶다는 제의가 들어온 적이 있다. 탈북자에게 출판제의를 한 것은 처음이라고 들었다. 자서전을 발간한 다른 북한인권운동가들 보다 내 이야기가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개인적인 사정으로 정중히 거절했다. 언젠가는 <7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가 한국어로 읽힐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야한다고 보는가.
“북한은 죽어도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군사력도 한국과 비교가 안 된다. 북한이 핵으로 국제사회를 협박하는 이유는 북한 국민들 때문이다. ‘긴장 분위기’를 조성하면 국민들은 북한 정부에 더욱 의지하고 충성한다. 독재자는 자기목숨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긴다. 전쟁을 시작한단 말은 독재정권의 수명도 끝이란 말이다. 한국 정부가 이 사실을 항상 기억했으면 한다. 개인적으론 김정은 정권을 마지막으로 북한에서 독재가 사라질 것이라 본다. 그 다음 세대의 지도자는 국제사회와 대화할 준비가 될 사람이 올 것이다. 대화를 통해 간극을 좁히고 왕래도 잦아지면, 통일이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이현서씨는 다른 탈북자들과 달리 국내보단 해외에서 많이 알려져 있다. 해외에서의 활동이 더 활발한 데는 한국의 특별한 정치적 상황과 신변상 안전의 이유도 있다. 최근엔 북한으로부터 위협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 인터뷰에서 “장애물과 마주했을 때, 이를 장애물이 아닌 새로운 길을 향한 도전이라고 생각하라”고 말했듯이 그녀는 북한인권을 개선시키기 위한 그 도전을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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