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이명철씨의 100년 전 조부모 친척 찾는 애타는 사연
[아시아엔=편집국] 대구의 식당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탈북 새터민 이명철(48)씨는 이따금 꿈에 고향마을과 함께 조상님들이 보인다고 했다.
두만강을 통해 탈북해 2007년 7월 한국 땅을 밟은 이명철씨는 “증조할아버 윗 대 분들이 나서 자라신 남한의 친척분들이라도 먼저 찾고 싶다”며 “쉽지는 않겠지만 혹시라도 먼 피붙이라도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기도한다”고 했다.
이씨가 할머니(조금천, 1927년생, 2008년 별세)한테서 들어 기억하는 집안 내력은 이렇다.
“북한으로 넘어간 것인 1910년 한일병탄 2년 뒤인 늦은 1912년이었다. 서울 명동에서 소 수십마리를 키울 정도로 부자였던 증조할아버지(이덕오)는 증조할머니(정봉화, 경상도 태생)과 함께 갓 태어난 할아버지(이창술, 1911년생)를 업고 배를 타고 함경도 성진군 업억면(지금의 김책시 업억동)에 자리잡았다. 증조부는 ‘덕’자 돌림으로 다섯째 막내라 ‘오’자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북한에 정착한 할아버지는 1937년 아버지(이영호, 2006년 사망)를 낳았다. 어머니(이옥순)는 올해 70세로 김책시에 나를 제외한 남매와 함께 남아 있다. 할머니는 생전에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5촌당숙이 경주이씨 족보에 올려져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족보는 6.25전쟁때 미군 폭격으로 집이 불타면서 함께 사라져 나는 본 적이 없다.”
이명철씨는 “할아버지는 생전에 ‘원래 우리 고향이 서울 남대문인데, 내가 죽더라도 후손들이라도 꼭 고향을 찾아보기 바란다’는 유언을 남기셨다”며 “1945년 해방 전까지는 서울에 있는 친척들과 편지를 주고 받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같은 사연을 지난해 10월 경주이씨 중앙화수회(회장 이필우) 사무처에 전하고 남한의 친척을 꼭 찾아달라고 당부했다. 이씨 친척이나 친척 소재를 알고 있는 분은 경주이씨중앙화수회(02-742-6250~1)로 연락하면 된다.
한편 북한에는 1960년부터 본관 사용을 중단해 혈족모임 등은 금지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