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의 명대사 “해방될 줄 몰랐다”, 친일파 문제 처리 기준으로 삼아야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1940년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된 것은 비유를 하자면, 일본이 한국에 점령된 것과 같은 경천동지할 사변이었다. 샤를르마뉴의 프랑크 왕국 이래 프랑스는 유럽의 중심이었고 나폴레옹이 아우스테르릿츠에서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러시아 3제 동맹을 깨뜨린 이래 프랑스의 영광은 절정에 달하였다.

그후 나폴레옹 3세가 몰트케의 프러시아 군에 패전하고 1차대전에서 독일군이 파리의 지척에 다가오는 곤경을 겪었지만, 1차대전 후 베르사이유 체제를 주도한 것은 클레망소였다. 이러한 프랑스가 독일군에 6주만에 항복하였다. 프랑스의 자존심은 말할 수 없이 상처를 입었다. 드골은 비쉬 정권에 참여했던 페탕을 처벌하는 상징적인 조치로 전후처리를 마무리했다. 이를 되풀이 거론하는 자체가 프랑스의 자존심을 상하게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을 비롯, 총리 담화 등을 통하여 한국에 사과할 만큼 했는데 “앞으로도 얼마나 더 사과를 해야 하느냐”고 하며 양식 있는 일본인들도 피로를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일본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불충분하다고 느낀다. 정부에서 이번 8월 15일 아베의 담화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인은 일본인들에게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해보라고 한다. 명성황후가 1895년 궁궐에서 살해되고 불살라진 것은 쇼다 미치코 황후가 궁성에서 한국 청년에 난자(亂刺)된 것과 같은데, 이를 어떻게 잊을 수 있느냐?

“통석(痛惜)의 염(念)은 구천(九泉)에 닿는다”고 부르짖는다. 오호라!

일본인들도 한국인에 역지사지를 해보라고 한다. 1895년 일본이 청에 승리하여 조선이 중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으며, 1905년 일본이 러시아에 승리하여 영국과 더불어 세계를 양분하던 러시아로부터 한국을 구해준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한국인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으나, “아시아를 유럽의 식민통치에서 구한 것은 일본이다”는 일본인의 역사관은 완강하다. 아베 담화가 어떻게 나오건 일본인의 ‘진정성 있는 회개’는 가능하지 않다.

한국이 일본에 뒤떨어지지 않게 반듯한 나라를 만들면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인정과 존경은 따라온다. 한국과 일본의 애증은 프랑스와 독일의 그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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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에서 주목할 만한 문구가 나온다. 의열단에 응징당하는 친일파들이 “해방될 줄 몰랐다”고 한다. 백범이 한탄하였듯 해방은 ‘도둑과 같이’ 온 것이다. 1945년 11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이 ‘개인자격으로’ 귀국하였다. 김구, 김규식, 이시영, 조완구 등등. 모두 한일합방이 되는 무렵에 조국을 떠나 풍찬노숙(風餐露宿)하던 70대 노인 10여명에 불과하였다. 일제에 학병으로 징집되었다가 탈출하여 중경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찾아간 장준하 등이 묘사한 그대로였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날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건국된 날과 겹쳐서 혼란이 일고 있다. 금년이 광복 70주년이라 함은 틀린 것이다. 2018년 8월 15일이 대한민국이 건국된, 즉 광복이 이루어진 70주년이다. 이를 바로 잡을 날이 올 것이다. ‘대한민국의 완전한 건국’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는 헌법조항이 실현되는, 즉 통일 대한민국이 성립되는 날이다. 대한민국 건국사에 대한 혼란은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는 “해방될 줄 몰랐다”는 것을 친일파 문제를 처리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민족문제연구소도 이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정직하고 건설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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