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계탕·삼계탕 나가신다, 중복 찜통더위 물렀거라”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우리 조상은 한 해 중 가장 더운 시기로 삼복(三伏)을 꼽았다. 삼복은 음력으로 6월과 7월 사이에 들어 있는 세 번의 절기인 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을 말한다. 금년 초복은 7월 13일, 중복은 7월 23일, 그리고 말복은 8월 12일이다. 말복 전인 8월 8일이 가을을 알리는 입추(立秋)이다.

복날의 복(伏)자는 ‘엎드리다’ 또는 ‘굴복하다’는 뜻이다. 중국 후한(後漢)의 학자 유희가 지은 <석명>이라는 책의 기록에 따르면 복날은 오행설(五行說)에 따라 가을 기운이 땅으로 기어 나오려다 이직 여름의 더운 기운이 강해서 일어서지 못하고 엎드려 복종했다는 뜻에서 생긴 말이라고 한다.

한의학에서는 날씨가 무더우면 우리 몸은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 땀을 흘리게 되며, 이 과정에서 몸속이 차가워진다고 본다. 이에 삼복더위에 덥다고 찬 음식을 자주 먹으면 몸 안은 더욱 차가워져 위장과 간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병에 걸리기 쉬우므로 따뜻한 음식으로 차가워진 속을 다스려야 한다고 본다.

옛날 사람들은 복날에 바닷가 모래밭에서 뜨거운 모래에 몸을 푹 파묻고 모래찜질을 하고,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서 이열치열(以熱治熱)로 더위를 물리쳤다. 우리 조상은 팥죽을 ‘복죽’이라고 불렀으며, 삼복더위에 팥죽을 쑤어 즐겨 먹었다. 특히 팥의 붉은 색이 귀신들이 두려워하는 색깔이라 여겨 팥죽을 쑤어 먹으면 더위와 함께 스며드는 나쁜 기운을 쫓고 병에도 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또한 복날에 즐겨 먹었던 음식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개(犬)를 잡아 통째로 삶아 파를 넣고 푹 끊인 ‘개장국’이다. 복날에 개장국을 먹고 땀을 흘리면 더위를 잊게 하고, 영양을 보충하여 병을 쫓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편 개장국 대신에 ‘계삼탕(鷄蔘湯)’을 즐겨 먹기도 했으며, 이것이 오늘날의 삼계탕(蔘鷄湯)이다. 서울의 삼계탕 전문식당에서는 지난 초복 날 손님들이 많이 몰려 몇 시간을 기다린 후 뜨거운 삼계탕을 맛보기도 했다고 한다.

삼계탕과 더불어 복날에 먹는 보양식으로 초계탕(醋鷄湯)이 있다. ‘초계탕’을 낱말로 풀어보면 초(식초), 계(겨자의 평안도 방언), 탕(육수)으로 오이초절임과 겨자채무침에다 육수를 부었다는 뜻이다. 초계탕은 예로부터 궁중(宮中)요리로 알려졌으며, 궁중이나 양반가(兩班家)에서 특별한 날이나 더운 여름에 서빙고(西氷庫)나 동빙고(東氷庫) 등에서 얼음을 꺼내 차게 해서 먹었다고 한다.

초계탕은 삶은 닭고기에 여러 가지 채소, 식초, 겨자 등을 넣고 기름기와 냄새를 제거하여 매우 차고 담백하게 만든 음식이다. 찬 음식에 식초(食醋)를 사용하는 것은 살균력을 높이고 상큼하고 시원한 맛을 북돋아 주는데 효과적이며, 겨자(芥子, mustard)를 사용해서 매운맛을 낸 것은 겨자가 열(熱)이 있어 찬 음식에 좋기 때문이다. 초계탕을 시원한 물김치와 고소한 메밀부침을 함께 곁들어 먹으면 그 맛이 절묘하게 잘 어우러진다.

초계탕은 조선시대 궁중연회를 기술한 ‘진연의궤’ 등에 이름이 올라 있는 귀한 음식이다. 정조의 어머니이며 사도세자의 비(妃)였던 혜경궁 홍씨의 회갑(回甲)잔치를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에도 초계탕이 언급되어 있다. 일반 기록에는 명월관(明月館) 등을 통해 궁중의 음식이 민간에 흘러나오던 1930년대 이석만의 간편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 등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쯤 일반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옛날 궁중에서 만들었던 초계탕과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초계탕은 재료나 조리방법이 약간 변형된 것도 있다. 경기도 파주시 초리골에서 초계탕 식당을 5대째 이어가고 있는 김성수(‘보양식 닭요리 & 건강식 초계탕’ 공동저자) 사장은 옛것의 기본을 지켜가면서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초계탕을 조리하고 있다.

초계탕(4인분) 재료는 다음과 같다. 닭 1마리(약 1.3kg), 오이 2개, 파 1개, 양파 1개, 고추 2-3개, 샐러리 1줄기, 붉은 양배추 30g, 식초 1큰술, 겨자 1큰술, 설탕 1큰술, 사과즙 1큰술, 배즙 1큰술, 레몬즙 1큰술, 술(소주) 1/2큰술, 후추, 잣.

닭은 6개월쯤 된 것을 잔털을 제거하고 깨끗이 씻은 후 흐르는 찬물에 30분 이상 담가 핏물과 기름기 냄새를 제거한 후 삶는다. 삶은 닭을 뼈와 살을 발라내면서 기름기가 남아 있으면 기름기를 닦아서 제거한다. 닭고기를 냉장고에 넣어 24시간 정도 저온숙성(低溫熟成) 시킨다.

식초, 겨자, 설탕, 술(소주), 잘게 썬 파, 얇게 썬 양파, 후추 등에 육수를 조금 넣고 잘 저어준 후 오이와 닭고기를 넣고 버무려준다. 물김치 국물 또는 동치미국물을 조금 넣고, 육수로 얼린 얼음을 몇 개 올려놓는다. 배즙과 사과즙을 살짝 뿌리고, 잣을 고명으로 위에 올리고 레몬즙을 뿌려주면 시원한 초계탕이 완성된다.

초계탕의 닭고기와 채소를 다 먹을 때쯤 차게 한 메밀면을 넣고 식성에 따라 양념(식초와 겨자)을 더 넣어 먹으면 맛이 있다. 한편 찬 음식을 먹어서 몸의 내부가 냉(冷)해진 상태이므로 따끈한 육수나 면수(국수 삶은 물)를 마셔서 속을 편하게 해주면 위장(胃臟)건강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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