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장군들③ 손원일]중국 해양대학 출신···해군가 ‘바다로 가자’ 작사한 영원한 제독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1950년 6월 26일 부산과 남해안에 상륙하려던 북한군 766부대를 탑재한 무장수송선을 격파한 대한해협전투는 육군의 한강선 방어에 비견되는 해군의 장거다. 이때 부산항이 교란되었더라면 미군 투입이 초기부터 지장을 받았을 것이다. 이만큼 대한해협전투는 대단히 큰 전략적 중요성을 갖는다.
해군은 손원일이 중심이 된 해방병단이 뿌리가 되었다. 사쓰마 중심의 순수혈통을 고집하던 일본 해군은 하물며 조선인 청년은 일체 받아들이지 않았다. 때문에 일본 해군에 근무한 경험을 가진 한국인이 없어서 중국에서 해양대학을 나와 항해사의 경력을 가진 손원일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해방병단이 해군의 모체가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선장 출신의 신성모를 국방부장관으로 임명한 것은 잘못된 인사지만, 손원일을 해군의 수장으로 선임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손원일은 손정도 목사의 영식이었다. 손정도 목사는 김성주(김일성의 본명)의 모친 강반석의 친척인 강량욱과 같이 평양에서 목사였다. 한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려했던 이승만으로서 손원일은 가족과 같이 친근한 사이였다. 미국에서 오래 생활한 이승만은 해군의 중요성을 잘 알아서 꼭 육해공군이 아니라 해륙공군이라 불렀다.
초대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은 문자 그대로 해군을 창조하였다. 대한해협전투에서 활약한 701함이 국민성금으로 구입한 함선이었던 데서 보듯이 해군의 조직, 인력, 함선은 손원일이 중심이 되어 만들었다.
손원일은 해군의 문화를 만들었다. 손원일은 육군에서 백선엽, 정일권, 이형근 등의 대장이 나올 때에도 “함선이 없는 해군의 수장이 大將이라면 외국 사람이 웃는다”고 하며 대장 진급을 고사하였다. 해군은 어느 나라나 영국 해군에 뿌리를 두었기 때문에 독일 해군이든, 러시아 해군이든, 일본 해군이든, 영국 해군의 전통에 따른 해군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손원일은 이런 영국 해군의 문화를 잘 알아서 함선이 갖추어지지 않은 가운데 Admiral이 격에 맞지 않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손원일이 작사하고 부인 홍은혜 여사가 작곡한 군가 ‘바다로 가자’는 피를 끓게 만드는 군가이다. 해군의 기상과 뻗어나갈 길을 이만큼 장쾌하게 뿜어낼 수가 없다.
우리들은 이 바다 위에
이 몸과 마음을 다 바쳤나니
바다의 용사들아 돛 달고
나가자 오대양 저쪽까지
나가자 푸른 바다로
우리의 사명은 여길세
지키자 이 바다 생명을 다하여.
해군사관학교 교훈 “진리를 구하자. 허위를 버리자. 희생하자.”도 손원일 제독이 제정한 것인데 ‘해군의 어머니’로 불리는 홍은혜 여사의 당부 “항상 신사가 되라”와 함께, 김홍일 장군의 “절대로 명예를 지키라”와 맥이 닿는 고결한 가르침이요 다짐이다.
여러 가지로 어려움에 처한 해군이 분발하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