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리콴유 국장, 시진핑 ‘깜짝 참석’할까?

<콰이강의 다리>에서 일본군 포로 수용소장을 감복시킨 니콜슨 중령의 스피릿은 영국인과 영국정신의 정화다. 그는 전장에서도 포로에 대한 제네바협약은 준수되어야 한다는 서양의 법치정신을 동양인에 보여준 것이다. 영국에도 유학한 바 있던 포로수용소장은 결국 영국정신의 우월성에 무릎을 꿇는다. 외교관은 국가를 대표한다. 리퍼트 대사가 흉한에 피습당하면서도 의연함을 잊지 않았던 것은 “나는 미국을 대표한다”는 외교관으로서의 긍지와, 네이비 씰의 일원으로 전장에서 싸웠던 특전용사로서의 투지가 뒷받침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관과 국가를 지키는 군인의 애국심은 범인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마잉주 대만 총통이 리콴유 장례식에 참가한다고 한다. 리콴유는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지지해왔다. 철저한 실용주의 외교다. “중국은 하나다”라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장은 거부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대만의 존재도 부정할 수 없다. 대만이 중국과 분리되어 독립해야 한다며 국호도 중화민국에서 대만으로 개정하자던 천수이벤 전 총통과 달리, 마잉주 총통은 명분상으로 ‘하나의 중국’은 유지하되, 양안 간에 교류를 증대하자는 주장이다. 그는 이등휘 전 총통의 중국 7괴론(塊論)-중국은 너무 크고 인종이 다양하여 만주, 몽고, 신강, 티베트, 대만, 동부 해안, 중부 내륙의 일곱 개로 분리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하지는 않으나, 대만이 분명한 정치적 실체라는 입장은 확고하다. 이것은 중국의 핵심이익에 어긋난다. 시진핑이 리콴유의 장례식에서 마잉주와 마주치는 것을 기피하는 이유다. 마잉주는 시진핑에 어려운 숙제를 하나 던졌다. 외신이 이를 ‘외교적 쿠데타’라고 부르는 이유다. 시진핑 주석은 자신이 가지 않고 리커창 총리를 보낼 수도 있다.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은 권위가 거의 동등하여 중국에는 7인의 황제가 있다고 하는 권력구조이기 때문이다. 대만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필사적으로 붙드는 처절하고 영리한 생존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리콴유는 1960년대에 싱가포르 군대의 훈련장을 대만에 빌렸다. 1971년 대만은 중국 대표권을 상실하고 유엔에서 축출되었다. 한국에서도 명동의 대사관을 중국에 뺏기고 물러났다.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가 내려지는 광경을 바라보는 대만인의 비통한 심정을 더 비장하게 한 것은 타이페이에서 철수하는 한국 대사관의 무례였다. 외무부 직원들은 아무런 의전행사 없이 그냥 태극기를 내려 떠났다. 중국이나 대만은 모두 중국인들이다. 그들은 이러한 한국정부의 의리 없음을 두고두고 잊지 않을 것이다. 1975년 월남이 패망할 때 이대용 공사는 마지막까지 교민을 송환시키다가 월맹군에 포로가 되었다. 이대용 공사는 6.25전쟁 첫날 춘천전투에서 북한군의 진출을 막아낸 김종오 장군의 6사단 용사로 예비역 준장이었다. 북한은 이대용 장군을 끌어오려고 공작을 했다. 다행히 월맹은 여기에 동조하지는 않았으나, 이후 포로생활을 하게 된 이 대사의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조국에 충절을 다한 이대용 공사를 송환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1980년 스웨덴 정부의 주선으로 조국 대한민국에 귀환한 이대용 장군은 육사동창회에서 최초의 ‘자랑스러운 육사인’으로 추앙되었다. <콰이강의 다리>에서 일본군 포로 수용소장을 감복시킨 니콜슨 중령의 스피릿은 영국인과 영국정신의 정화다. 그는 전장에서도 포로에 대한 제네바협약은 준수되어야 한다는 서양의 법치정신을 동양인에 보여준 것이다. 영국에도 유학한 바 있던 포로수용소장은 결국 영국정신의 우월성에 무릎을 꿇는다. 외교관은 국가를 대표한다. 리퍼트 대사가 흉한에 피습당하면서도 의연함을 잊지 않았던 것은 “나는 미국을 대표한다”는 외교관으로서의 긍지와, 네이비 씰의 일원으로 전장에서 싸웠던 특전용사로서의 투지가 뒷받침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관과 국가를 지키는 군인의 애국심은 범인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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