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national] 인천아시안게임의 목격자들
국경을 넘어서는 초국가(transnational) 활동이 기업·학술·문화 등 전 영역에서 세계인의 생활패턴으로 자리잡고 있다. 스포츠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진 세계 젊은이들이 모인 서울대 글로벌스포츠매니지먼트 과정 ‘드림투게더마스터’ 네 학생으로부터 제17회 인천아시안게임의 생생한 목격담을 들어본다. -편집자
마리아 메지아·콜롬비아·서울대 드림투게더마스터 대학원생
소수국가 메달 독식 벗어나 스포츠정신 되살려야
17회 아시안게임이 한국에서 개최됐다. 1986년 서울, 2002년 부산에 이어 한국에서 세번째로 열리는 아시안게임이다. 인천과 한국은 과연 대형국제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지 시험대에 올랐다. 그러나 7년여 준비기간을 거친 인천 아시안게임은 세부실행계획, 예산부족, 국제대회 경험부족 등의 의문점을 드러냈다. 대회기간 동안 시와 조직위원회는 제대로 협업하지 못했고, 임기응변력도 떨어졌다.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투자시설 활용 방안도 미지수다. 대회 종료 후의 경기장은 지역민들이 다양한 스포츠와 행사를 즐기는 공간으로 활용돼야 한다.
국제스포츠이벤트는 국력을 과시하는 수단이 됐다. 우리는 자아개발을 포함한 고유의 스포츠 정신을 지켜야 된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특정 소수 국가의 메달 독식을 지양하고, 전세계 스포츠의 균형발전도 추구해야 한다. 올림픽 헌장과 스포츠를 이해하고, 이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발전과 직결된다. 무엇이 진정한 발전일까? 경제적 여력을 갖춘 국가가 국제스포츠이벤트에 거액을 투자해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것인가? 개발도상국가일지라도 국민의 심신을 단련할 수 있는 스포츠의 필요성을 이해시키고 권장하는 것인가?
카밀라 율다세바·우즈베키스탄·서울대 드림투게더마스터 대학원생
첫 금메달 캄보디아, 39세 은메달 옥사나 감동스토리
우즈베키스탄올림픽위원회 스태프로 2주동안의 여정을 시작할 때와 2014년 아시안게임 개막식 때, 2014 인천아시안게임의 슬로건 ‘아시아의 다양성, 인천에서 빛나다’가 머리 속에 울려 퍼졌다. 선수촌엔 다양한 아시아 각국 선수들이 모였고, 이들은 스포츠의 힘 아래 하나로 통일됐다. 선수들은 때론 고통과 부상에 맞서며 영광스런 조국에 메달을 안기고자 최선을 다했다. 경쟁과 승리의 또다른 이면이다. 올림픽위원회 일로 많은 경기를 보진 못했지만, 흥미로웠던 경기들이 있었다.
우즈베키스탄 기계체조의 전설 옥사나 추소비티나의 경기였다. 올해로 39살인 그녀는 국제대회·올림픽 메달리스트로, 6번의 올림픽과 3번의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그녀는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고, 2016 리오 올림픽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순위가 전부는 아니듯이 경쟁을 넘어선 감동적인 기록과 이야기도 있었다. 개국이래 최초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캄보디아와 매경기 유니폼을 입고 자국선수들을 응원한 북한대표팀처럼 말이다. 17회 아시안게임은 완벽하진 않지만 성공한 대회라고 생각한다. 지역통합과 조화, 우정의 대회였기 때문이다. 대회에서 뛰어난 선수들이 선보인 퍼포먼스는 이미 역사가 됐다. 그리고 우리는 산증인이다.
아노마 라스나야카·스리랑카·서울대 드림투게더마스터 대학원생
고국 스리랑카 크리켓 경기 취재하며 눈물 울컥
가장 큰 스포츠이벤트 중 하나를 경험할 수 있어 행운이었다. 나는 스리랑카 올림픽위원회 스태프와 인천아시안게임 외국인기자단의 기자로 참가했다. 이번 대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겼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상냥하고 친절한 한국인들 덕분에 놀란 기억이 난다. 대회가 열리는 인천으로 향하는 도중에도 나를 기꺼이 돕고자 하는 많은 한국인들을 만났고, 우린 친구가 됐다. 개인적으론 스포츠의 가장 큰 가치 중 하나는 우정이라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스포츠가 단순히 메달을 획득하는 것이라 여길지 모르나, 스포츠의 진정한 가치 ‘우정’을 공유한다면 전세계에 행복과 다른 문화에 대한 존중을 가져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회기간 동안, 아시안게임 기자단으로 활동하며 성실함, 세심함, 열정이 중요함을 느꼈다. 또한 인터뷰 대상자를 정중하게 대하는 것이 사회성과 비판적인 사고를 향상시킨다는 것도 배웠다. 기자로서 스리랑카 올림픽위원회 이사와 비치발리볼 선수들, 스리랑카 대표팀의 크리켓 경기, 그리고 아시안게임을 보도한 스리랑카 언론들을 취재한 것도 기억에 남는 추억이다. 아시안게임 스리랑카 올림픽위원회 스태프뿐만 아니라 기자단으로 일한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인천에서의 지난 3주를 돌아봤을 때, 이 기회는 내게 큰 감명과 기쁨을 줬다.
리 위에나 옥타리아·인도네시아·서울대 드림투게더마스터 대학원생
아시안게임 ‘바통’ 이은 인도네시아 “우리도 할 수 있어!”
17회 인천아시안게임은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인도네시아 올림픽위원회에서 일하면서 자원봉사자로 폐막식에 참여했다. 이로써 대회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며 폭 넓게 이해할 수 있어서 뜻 깊었다. 개인적으론 인도네시아가 다음 아시안게임을 유치하기 때문에 특별한 경험이기도 했다. 베트남이 18회 아시안게임 유치를 포기하고 인도네시아가 개최하기로 했을 때 적잖이 놀랐다.
대회 기간 인도네시아가 다음 대회 때 가장 먼저 해야할 일과 누가 해야할 일인지 살펴봤고, 실제로 대회를 개최할 준비가 돼있는지 고민했다. 인도네시아에게 한국이 직전 대회 개최국인 것은 불리하다. 사람들은 전 대회와 비교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윽고 인천아시안게임 폐회식이 시작됐다. 인도네시아 국기가 계양되고 국가가 울려 퍼지자 자부심을 느꼈다. 리타 수보우 인도네시아올림픽위원장과 관계자들이 아시아올림픽평의회 깃발을 이양 받았고, ‘18회 인도네시아 아시안게임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자카르타와 팔렘방의 영상이 공개됐다. 나는 인천주경기장 6만관객 앞에서 전율과 자신감이 들었다. 춥고 바람 부는 경기장에서 호텔까지의 긴 여정도 아무렇지 않았다. 경기장을 나서며 동료들에게 한마디 했다. “난 우리가 할 수 있다고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