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팔선생의 고금인생] 57세에 딴 박사입학 합격증 내려놓다
수험표. 2003학년도 대학원 박사과정 후기 수시모집. 수험번호 321-352007. 합격증도 있었다. 학번은 20320124. 쉰여덟의 기록이다. 중도 하차하고 말았던 기억이다.
진규 메일 받고 꺼내봤다. “신고합니다. 지난 6월 정년퇴직했습니다. 대학 환경조경학과 1학년으로 입학했습니다!” 그는 법학사 학위 소지자로 특채됐었다. 그 분야에서 주욱 일했다. 이번 입학은 이력과는 전혀 연관성 없는 선택이다.
보통들 하는 관례대로 위로 가지 않았다. 아래를 향했다. 석사나 박사과정 가지 않았다. 대학 신입생이 됐다. 하기야 나이 들어 석, 박사 따야 뭐 하나? 인생 재설계, 훌륭한 선택이다. 나이 예순하나에 대학신입생, 신선하다.
난감한 그 이후 인생이다. 명줄이 자꾸 길어진다. 수명이 연장되면 직장생활도 길어져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연령대에 물러난다.
고약한 면도 있다. 글로벌경쟁이니 자유주의경제니 하며 구조조정을 해댄다. 말이 구조의 조정이지 인력 삭감이다. 목 잘라 내치기다.
대략 50대 후반에 퇴직한다. 30~40년 직장만 오간 탓에 그만 두고 나면 그걸로 대개 끝이다. 잘못 하다가는 20~30년이 아니라 30~40년 더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간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활용할 길이 거의 없다.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 허구한 날 산이나 탄다. 동네 도서관이나 주민자치센터 기웃거린다. 옛날에 더울 때 은행 들어가 땀 식히듯 마트 간다. 시식도 하며 어슬렁거린다.
노후 운영이 어려운 일에서 더 나아가 심란한 일이 됐다. 그저 하는 일 없이 놀기만 하는 유수도식(遊手徒食)만 해도 상팔자, 이건가?
일에서 손 떼기가 쉽지 않다. 2010년 봄에 출퇴근 행위를 마감했다. 새벽 4시 기상. 5시 사무실 향해 출발. 이 습관이 계속 됐다. 그만 두고 나니까 잠이라도 더 잘 거 같지만 그렇지 않다. 습관의 관성이 새벽에 눈 뜨게 만든다. 재재취업(再再就業) 노린다.
어느 날 준구와 땡구를 만났다. 현재 준구는 치안정감으로 퇴직하여 다른 공직에 가 있다. 땡구는 치안감이다. 점심을 함께 먹었다. 좀 쉬시면 어떠시냐? 했다. 순간 그 말이 옳다. 퍼뜩 가슴에 와 닿았다. 그래, 맞다! 나도 이제 쉴 때 됐어. 좀 쉬자. 왠지 맘이 편해졌다. 다시 일거리 잡으려는 생각 버렸다. 그 둘이 내 차기(次期) 인생 가이드가 되어준 거다.
생활이 확 변했다. 잠자리 드는 시간이 보통 자정 지나서였다. 밤 9시면 졸려 못 견딜 지경이 됐다. 아침에는 9시는 돼야 일어났다. 잠꾸러기 됐다. 이러니 저녁 약속은 사절! 점심때나 사람 만나게 됐다.
그래도 뭔가 해야 한다는 그래도 낮에는 뭘 하지 않고는 못 배겼다. ⓔjabji를 계속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jabji 이메일 잡지를 아는 이에게 보냈다. 매일 꼬박꼬박 발간해야 한다. 하루라도 거르면 큰 일 날듯이 매달렸다.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그러다가 2013년 11월 갑자기 하기 싫어졌다. 그만 뒀다.
그럼 뭘로 소일한다? 운동도 등산도 산책도 안한다. 영화관도 거의 안 간다. 미술관? 박물관? 관심 밖이다. 축제? 내 고향 서천의 주꾸미나 전어도 먹으러 안 가는 판에 어딜 가나. 딱 한 가지, 책 읽기다. 직장 다니며 책을 많이 샀다. 읽기도 많이 했다. 그러나 못 읽은 책이 대부분이다. 퇴직하고 나서 책 감소작업에 돌입. 기증도 했다. 재활용품으로 내놓기도 했다. 그래도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독서방법에 벽(癖)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밑줄 쳐 나가냐 한다. 그래야 뭐 읽었다는 느낌이다. 속도 날 리 없다. 필요한 자료나 통계가 나오면 메모한다. 더 더뎌진다. 일전에는 그렇게 읽은 탓에 거의 검은 색으로 도배된 책을 상기와 정애에게 선물했다. 어떻게 읽으라고! 후, 후, 후, 재미있다.
영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1772~1823). 그는 열네 살부터 아버지 밑에서 증권업에 종사. 스물여덟에 우연히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보게 됐다. 금융과 경제를 독학. 증권으로 부자 되자 은퇴. 본격 연구. 경제학과 과세의 원리를 썼다. 마흔 다섯이었다. 고전파 경제학 완성!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 어렸을 적 아버지가 들려준 트로이의 목마를 찾아내겠다고 다짐한다. 열네 살부터 식품점 수습사환으로 일했다. 무역으로 부자 되자 발굴에 착수. 마흔 여덟이었다. 트로이는 못 찾았다. 그러나 미케네 문명은 발견했다. 그리스 역사의 공백을 채웠다. ‘불타는 트로이를 탈출하는 사람들’, 슐리만은 신화가 아니라 사실이라 믿었다.
미국 천문연구가 퍼시벌 로웰(1855~1916). 1884년 고종 사진을 찍었다. 1866년에는 기행문 <조선> 출간. 화성인이 있다고 믿었다. 전 재산 털어 로웰천문대 세웠다. 서른아홉이었다. 화성인은 보지 못하고 죽었다. 그러나 작업은 후학들이 계속 중이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원망(願望)을 품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명예퇴직 하는 이들보다야 낫다. 나와 봐야 돈만 까먹는다. 정년까지 묵묵히 일하는 게 확실한 노후대책이다. 오래 일하는 삶도 품위 있다. 그렇지 않으면 확실하게 변신하라. 한창 일해야 할 때 회사 그만두자 사진에 몰두, 이 11월에 전시회 여는 진기 아우는 인생 재창조에 성공!
이제 좀 알 거 같은 그런 느낌이다. 나이 들면 버려야 한다고들 한다. 그렇다고 무소유(無所有)? 없이 살라? 불가능하다. 소소(小少)소유를 향해 감경(減輕)시켜 나가는 일상이 진실이다. 옷도 많다. 구두도 만다. 그릇도 많다. 만년필도 많다. 책도 많다. 퍼내기도 많이 했다. 도서관에 기증했더니 복지회관 도서 모으기 캠페인 도서로 되돌아 온 책도 있다. 독도경비대장 단희가 그걸 보내왔다. 서재에 아직 601권. 앗! 가방 속에 한 권 더 있다. 읽고 재활용, 줄여라!
소유물을 경량화한다. 줄이자고 해서 보관해도 좋을 사진자료를 간혹 버린다. 몇 십년 써놓은 기록을 없애는 우를 범한다. 그런다 해도 시간은 버리지 못한다. 언제 종료될지 모르는 수명. 그러나 여명은 채워나가야 하는 시간의 양이다.
녀석 좀 삐딱하다고 봤다. 그 자세의 유효성을 입증한 듯하다. 이번 대학 선택은 실용이다. 시간의 양과 질을 충족시키리라 전망한다. 현명하다! 내 선택. 602권 다 읽고, 안부편지 써 보내고, ⓔjabji 보내고. 더는 책을 사진 않겠다, 결코, 진짜 결단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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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겸/ 전 인터폴 부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