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JA TALK] 왜 한국 사람들은 한글을 안 좋아해요?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모든 국민이 통하지 않음을 걱정한 어진 임금 세종대왕. 10월9일 한글날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해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국경일이다. 또한 세종어제(世宗御製) 서문(序文)과 한글의 제작 원리가 담긴 『훈민정음(訓民正音)』은 1997년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됐다. 우리 민족의 혼과 정체성이 담긴 한글날이 올해로 568돌을 맞았다. 외국인들은 우리 한글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졌다.

AJA 글로벌 리포터

아시아기자협회 아시아엔은 AJA 글로벌 리포터 마이클 모차르스키(Michal Mocarski·폴란드·경희대 언론정보학), 사울 세르나(Saul Serna·멕시코·강원대 사회학 박사과정), 카르마노바 제냐(Karmanova Evgenia·러시아·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예술학 석사과정)와 한국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카르마노바 제냐, 러시아

‘한글날’처럼 특별한 모국어 기념일이 있나요?

제냐: 러시아에는 매년 4월12일에 ‘러시아어 받아쓰기’ 대회가 열린다. 시험은 도시에서 제일 큰 대학교에서 열리며, 러시아어 실력을 점검하고자 하는 자발적인 참가자가 늘고 있는 추세다. 보통 엔지니어 직업군에 속한 사람들이 언어능력 검정용으로 많이 치르고 있다.

모국어의 특징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주세요.

마이클: 폴란드는 북동쪽으로 러시아연방, 동쪽으로 리투아니아·벨라루스·우크라이나, 남쪽으로 슬로바키아·체코, 서쪽으로 독일, 북쪽으로는 발트 해에 국경을 접하고 있어 여러 민족과 언어의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폴란드 내에서 쓰이는 방언도 크게 다섯 종류로 나눌 수 있다; ①인도-유럽어족: 영어, 프랑스어 ②발토-슬라브어족: 리투아니아어, 라트비아어 ③슬라브어족: 러시아어, 불가리아어 ④서슬라브어족: 체코어, 슬로바키아어 ⑤렉틱어족: 카슈비아어, 실레지아어. 이처럼 폴란드어는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한국어에 비해 그 뿌리가 매우 복잡하다.

사울: 멕시코에서는 스페인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스페인어는 이베로로망스어에 속하는 언어로, 중국어·영어 다음으로 가장 많이 사용된다. 그런데 스페인에서 사용되는 스페인어와 멕시코의 스페인어와는 발음면에서 차이가 있다. 모국에서 만난 한국인 교포는 오히려 멕시코 스페니쉬가 발음면에서 훨씬 깨끗하다고 얘기한다. 그래서인지, 멕시코 사람들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다른 나라의 TV 프로그램을 보며 각 스페니쉬의 차이점을 익히곤 한다.

제냐: 러시아어는 인도유럽어족 슬라브어파에 속한다. 넓은 땅덩어리만큼 언어도 다양한 부족과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러시아어는 발트어군과 매우 가까우며, 남슬라브어에 속하는 불가리아어·마케도니아어·세르보-크로아티아어·슬로베니아어와 서슬라브어에 속하는 체코어·슬로바키아어·폴란드어 등과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다. 문법과 어휘가 비슷해서 체코나 폴란드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다보면 우스꽝스러운 순간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러시아어에서 엉덩이를 뜻하는 단어가 우크라이나에서는 의자의 의미로 쓰인다.

마이클 모차르스키, 폴란드

모국어와 한국어에 유사점이나 차이점이 있다면요?

마이클: 폴란드에도 존칭어가 있고, 사투리 또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나 사투리에 대한 자부심은 한국인보다 월등히 높다. 서울에 오면 지방 사투리를 쓰지 않는 한국인들이 많은 것 같다. 너무 튀지 않으려하고 조화를 중요시하는 한국문화 때문인 것 같다. 폴란드 사람들은 오랜 전쟁과 지배하에 자국 문학과 언어가 번성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폴란드어에 자부심을 갖고 널리 알리려고 한다. 예를 들어 ‘폴란드어를 잘하면 슈퍼파워’라고 적힌 티셔츠도 폴란드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였다. 또다른 차이점으로 문법 구조가 확연히 다르다. 폴란드어는 인칭에 따라 동사와 단어가 바뀌므로 같은 의미라도 다양한 형태의 동사를 외워야한다.

사울: 스페인어와 한국어는 문법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 특히 사회적 지위나 나이 등에 따라 단어와 동사를 바꿔써야 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사회적 지위가 강하게 드러나는 언어가 바로 한국어인 것 같다. 호칭을 뭐로 하느냐, 높임말이냐 낮춤말이냐, 큰소리로 말하느냐 작은 소리로 말하느냐 등등 신경써야할 부분이 아주 많다. 유학 초반에는 실수할까봐 한국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게 두려웠다. 가끔 교수님께 “어디가세요?” 대신 “어디가?”라고 하거나, 동급생에게 높임말을 사용하기도 했다.

제냐: 러시아어도 폴란드어와 마찬가지로 단어의 ‘격변화’가 심하다. 한국어에서 기존 단어의 형태가 바뀌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러시아어는 대명사나 인칭에 따라 단어가 변한다. 예를 들어 ‘가다’와 ‘오다’라는 단어의 종류도 수없이 많다. 문법 구조도 다르지만, 예전에 일본어를 배워본 적이 있어서 적응하기 수월했다. 다만 전치사+명사 순서가 달라서 초반에는 많이 헷갈렸다. 또 사람에 따라 동사를 바꿔야하는 게 어렵지만 재미있다. 최근 교수님과 동급생, 후배와 함께 모인 자리에서 예전에 비해 존댓말과 반말을 자연스레 섞어 사용할 수 있었다. 한국어 실력이 점점 느는 것 같아 뿌듯하다.

사울 세르나, 멕시코

한국어를 배우면서 아쉬운 점이 있나요?

마이클: 한국어에 불필요한 영어가 많이 사용된다는 점이에요. 제가 볼 땐 영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문장에 굳이 영어를 집어넣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색깔’이라는 한국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컬러’를 사용하거나, ‘아내’를 ‘와이프’라고 부르는 것처럼요. 모국어를 축하하는 기념일이 있는 국가는 한국밖에 없을텐데, 한국 사람들이 왜 모국어를 존중하지 않는지 이해가 안 돼요. 또 한국 사람들은 말 실수를 지적해주지 않아요. 한국인 입장에서는 “외국인이니까 잘 모를거야”라며 예의를 차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우리는 잘못된 표현을 쓰고 있다는 걸 바로바로 지적해줬으면 좋겠어요.

사울: 교육 방식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에요. 학교 수업은 문법이나 단어 위주로 진행되고, 회화수업에서도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표현을 가르쳐주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한국어로 말하는 데 자신감이 떨어져요. 길거리에서 한국어로 길을 물어보면 한국 사람들은 되려 영어로 대답해줘요. 여기는 한국인데, 정작 한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아쉬워요.

제냐: 얼마전부터 일본어학원에 다니고 있는데요. 한국 사람들이 왜 영어를 못하는지 알겠더라고요. 문법 공부 후 읽기 연습만 반복하니까 실제로 배운 걸 연습할 시간이 없어요. 또 한국 사람들은 띄어쓰기나 맞춤법에 너무나 무관심해요. 카톡이나 메신저를 하다보면, 띄어쓰기와 맞춤법을 잘 지켜쓴 사람이 거의 없어요. 외국인 입장에서는 띄어쓰기가 없으면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기 어려워요. 한국 사람이 오히려 저한테 문법을 물어본 적도 있어요. 왜 한국인들은 그들의 모국어를 좋아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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