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진의 정치이야기] ‘새정치’ 박영선에게 고함
얼마 전 어느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 새정치민주연합이 차라리 없어져야 한다는 응답이 40%를 넘었다. 이 당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뼈가 아팠다. 130명의 국회의원이 있는 거대 제1야당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나는 이를 ‘자업자득’이라고 푼다. 야당은 왜 존재하는가? 야당은 영어로 오퍼지션 파티(Opposition Party)이다. ‘반대하는 당’이다. 집권여당이 독선과 전횡으로 흐르려 할 때 확실하게 반대해야 하는 것이 야당이다. 그러지 않고 ‘국정의 발목을 잡기나 한다’는 일부 여론에 기가 죽어 시늉만의 반대를 하다가 슬그머니 꼬리 내리기를 반복하면 국민들은 그 집단을 제대로 된 야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허구한 날 싸우지만 말고 대안이 있는 수권정당이어야 한다’는 ‘합리적’ 주장이 있다. 그런데 이 주장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여당이 합리성을 상실하고 숫자를 앞세운 횡포를 부리려 할 때 치열히 싸워서 막아내거나 옳은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 곧 대안 제시이고, 그런 자세가 집권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당은 ‘2중대’이자 ‘만년 야당’으로 자리매김당할 수밖에 없다.
항간에서는 “야당이 언제 제대로 싸워보기라도 했나?”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2등에 만족’한다거나 ‘부자 몸조심한다’는 말들도 한다. 아픈 이야기들이다.
‘당 자폭론’ 또는 ‘제3정당론’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나는 그 원인을, 언제부터인가 이 당을 휩싸고 도는 ‘중원 우선론’에 있다고 본다. 이 당의 중심을 바로 세우고 중원을 도모해야 할 것을, 중심이 무엇인지 어슴푸레한 자세로 중원을 바라보니 기우뚱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자세는 보수와 진보 어느 쪽에서 보더라도 ‘아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난 1년6개월의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을 겪고 있는 우리 국민은 강력하고 유능한 야당을 원하고 있다고 본다. 그래 보이지 못했기 때문에 상당수가 차라리 지금 야당 없어지라는 주문을 하는 것이다.
나는 비상대책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박영선 원내대표에게 권고하고자 한다. ‘과욕’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년 초로 대략 합의돼 있는 전당대회까지 당을 두 축으로 나누어야 한다고 본다. 한 축은 원내대표가 중심이 되어 의원들로 구성해 정기국회에 집중해야 한다. 세월호 특별법의 재협상과 함께 박 대통령과 여당이 밀어붙이고자 하는 의료민영화, 각종 규제 완화 등 민생 현안을 밀착 감시·견제해야 한다. 이 문제들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원내대표는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또 한 축으로는 당 밖의 인사가 주도하는 가칭 비전위원회(또는 재건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위원회는 독자적 권한을 가져야 하고, 위원회가 논의·결정한 것은 앞으로 누가 지도부를 맡더라도 건드릴 수 없게 대못을 쳐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과거 수도 없이 경험했듯, 논의만 무성하고 보고서만 남는 결과를 빚게 된다. 철학과 소신과 배짱이 있는 인사가 위원회를 주도하도록 하고, 이 인사가 주기적으로 논의사항을 언론에 알리는 것도 괜찮다.
위원회 산하에는 크게 2개의 소위원회를 두었으면 한다. 하나는 개헌, 남북문제, 선거구제 개편 등 거대 담론을 다루도록 하고 또 하나는 전당대회 룰, 총선 공천 룰 등을 다루도록 한다. 이런 주요 의제들은 그간 쌓여 있는 연구 성과들과 경험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잘 정리만 해도 되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실행에 있다. 뿌리 깊은 고질병이라고 질타당하고 있는 계파 문제는 이 당이 좌고우면하지 않는 확고한 룰을 정착시켜 그 룰대로 집행하면 뿌리를 걷어낼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