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장 총기살해 사건’ 막을 수 없었을까?
세월호 사태에 대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전방의 병사가 병영 안에서 동료병사들을 사살하고 총상을 입힌 후 탈영, 이틀간이나 군과 대치하다 생포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오래 전부터 필자는 군대라는 조직과 군사문화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 오고 있었는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몇년 후 군에 입대하게 될 필자 아들들을 염려하면서 성급할지 모르겠으나 공론화되길 바라면서 글을 쓴다. 징병제도에 관한 얘기다.
필자는 대학 다닐 때 해군장교후보생(NAVY-ROTC)으로서 4년간 훈련을 받았다. 매주 몇 시간씩 장교가 되기 위한 군사학 수업을 듣고 학내 연병장에서 훈련 받으면서, 그리고 교관들 얘기를 들으면서 문득 장교와 사병에 대한 차이점이 떠올랐다. 군의 장교 또는 지휘관에게는 항상 역사 속 화랑처럼 문무를 겸비해야 하는 것이 의무처럼 되어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 사병이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당시 내가 강하게 느꼈던 것은, 사병들이란 인간이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소양과 양심 및 학식은 필요하지 않은 존재였다. 외모만큼이나 천차만별인 인간의 다양한 성격과 인품, 능력 등은 무시되고, 적을 인간 취급 안하는 사병, 일사분란한 사병, 상명하복에 철저한 사병만이 장교들에게 필요했다. 부모가 아끼는 사랑스러운 아들, 부모를 사랑하고 잘 섬기는 효자, 늠름하고 책임감 있고 우애 넘치는 형제, 가난하고 나약한 이웃을 돕는 착한 청년, 회사나 학교에서 능력과 태도를 높이 평가받아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인재, 남들과 차별되는 다양한 끼로 삶을 사는 연예기질 등은 장교의 부하 사병들에게는 별로 쓸모없는 장식일 뿐이었다.
군에서 요구하고 지휘관이 요구하는 사병들이란, 적과의 전쟁 중 지휘관이 “돌격 앞으로!”를 명령할 때 무조건 포탄 속으로 뛰쳐나가는 사병이다. “사격!” 명령이 떨어지면 적군 병사가 효자이든, 학자이든, 사회 모범생이든, 미성년자이든, 부녀자이든 아무 상관과 고려 없이 눈에 띄는 대로 학살할 수 있는 사병들이다. “내가 죽을 게 뻔한데 왜 저 총탄 속으로 돌격해야 하는가?” 라든가, “누군지도 모르는 저 사람을 왜 죽여야 하는가?” 라는 인간적인 물음표를 머릿속에 간직하고서 지휘관의 명령에 따를까말까 망설이고 있는 인간을 군에서는 문제병사로 취급하고, 문제병사가 더욱 인간적일 경우에는 영창으로 보내버린다.
“우향우!” 명령에 모두들 우측으로 몸을 돌리는데, 한번쯤 장난삼아 또는 순간 맘에 내키지 않아 좌측으로 몸을 돌리는 인간을 일반사회에서는 흔히 볼 수 있고 당연히 용납되지만, 군에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으며, 용납할 수 없는 ‘인간’이다. 그래서 군에서 생활하는 졸병들은 ‘인간’이라고 불리지 않고 ‘사병’이라 불린다. 그러므로 군대에서 사병들이 인간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장교와 사병들이 서로 인간취급을 주고받지 않는 것도 역시 당연할 것이다. 아르키메데스가 적국 시라쿠사의 시민이었기에 로마병사가 그를 죽일 때에는 그가 얼마나 위대한 수학자인지, 인류에게 얼마나 가치있는 인간인지는 단순 무식한 병사의 판단기준에 없었다. 로마병사의 앞길에 방해를 준 적국시민이었을 뿐이다.
‘꼬마들은 병정놀이, 병정들은 꼬마놀이(Children play solider. Soldiers play children)’란 말이 있다. 애들처럼 천진무구한 (혹은 단순무식한) 병사들을 조롱하는 말이다. 대학시절 군사학 시간에 ‘명령에 철저히 복종하는 용감한 부하사병을 만드는 비법’에 대해 한 수 배운 바 있다. 단순무식화시키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부대 인근 야산으로 병사들을 인솔해 가서 하루 종일 참호를 파게 한다. 그 다음날 똑같은 장소에 가서 이번에는 참호를 메우게 하여 원상복구 시킨다. 그 다음 날, 다시 그 장소에 데리고 가서 하루 종일 참호를 다시 파게 한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또다시 원상복구 시킨다. 처음에는 사병들 사이에서 “왜 자꾸 쓸 데 없는 일을 시키는지 모르겠다”며 불평불만을 하게 된다. 물론, 그런 불평불만을 들을 때마다 단체기합을 호되게 준다. 이렇듯 단순한 일을 매일 반복시키며 불평불만이 나올 때마다 기합을 주게 되면, 나중에는 그런 ‘단순무식한 명령’을 아무리 자주 반복시켜도 더 이상 불평불만 없이, 더 이상 이치를 따지지 않고, 더 이상 아무 생각 없이 제대날짜만 기다리며 순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휘관의 명령에 대해 이치를 따지고 이유를 생각해 봐야 헛되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무조건 체념하게 만드는 것이다. 상관의 명령이 불합리하고 불법적이고 불공평하고 멍청하더라도, 불평불만하지 않고, 이치를 따지지 않고, 생각조차도 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순응하는 존재! 진짜사나이가 아닌 허접하고 멍청한 졸병! 그렇게 부하 사병들은 단순무식한 존재가 되어야만 유사시에 지휘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고 따르는 ‘용감한(?) 병사’가 된다고,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군사문화시대의 장교가 되는 것을 배웠다.
필자는 군인들이 독재정치를 하던 그 당시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독재자 추종자들과 재벌들이 국민들을 ‘단순무식화 (Stupidity)’ 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꼴을 예의 주시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두 가지 재미있는 어록을 소개한다.
맥아더 장군의 말이다. “펜이 총보다 강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분명 자동화기의 쓴맛을 보지 못한 사람이다. (Whoever said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obviously never encountered automatic weapons.)” 단순무식화한 집단의 우두머리격인 맥아더 같은 사람을 민주사회의 지도자로 선출하지 않은 미국민들의 상식과 안목도 생각해 볼 만하다.
영국의 가수이자 영화배우 오지 오스번은 이렇게 말했다. “군대에는 ‘비밀지능’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극비여야 한다. 아직까지 한번도 지적인 군인을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They say military have the so-called ‘secret intelligence’ – this amount of intelligence must be very secret, since I’ve never seen any intelligent military person.)”군대에는 지능뿐만 아니라 외부사회에 노출되어서는 안될 비밀이 수없이 많기 때문에 문제가 노출될 때마다 작전을 한다. 물론 기만(속임수)작전도 항상 유효하게 쓰인다.
이번에 발생한 임모 병장 사태가 군에서 행한 ‘단순무식화 훈련’이 임 병장에게는 실패한 탓인지, 아니면 ‘단순무식화 훈련’이 과도하여 임 병장이 일순간 정신착란을 일으킨 탓인지 알 길이 없지만, 수개월 이상 동고동락한 동료사병들을 무참히 학살한 것만 보아도 사병들에 대한 ‘비인간화(Brutality & Inhumane)훈련’은 지속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여진다. 다만, 우리 일반국민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깨달아야 하는 것은 이러한 ‘비인간적인’, ‘단순무식한’, ‘획일화된’ 특수집단은 특별히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과 파괴를 준비하는 특수한 집단은 창조와 창출 및 보존을 위해 노력하는 일반사회와는 물과 기름처럼 융합되지 않으므로, 군 조직에는 이러한 특수성에 적합한 사람들을 선별하여 전문화시켜 맡겨야 한다.
필자는 따라서 징병제도를 철폐하고 전문적인 직업군인들로 대체해야 한다고 본다. 현대 전쟁은 병사들 숫자가 아닌 첨단 병기가 승패를 좌우한다. 2003년 이라크전쟁이 발발했을 때 징병제로 100만명이 넘는 이라크군은 숫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20여만명에 불과한 연합군의 첨단무기로 인해 초토화되었다. 이제 우리 젊은 청년들의 귀중한 시간을 일반사회의 성격과 동떨어진 문화의 군대에서 장기간 허비하게 하지 말고 직업군인들을 채용하여 군조직을 전문화시키면 좋지 않을까?
그들로 하여금 첨단병기를 전문적으로 다루게 훈련시키고 일반사회로부터 일정 부분 격리시키기를 제안한다. 그러한 차별에 대한 보상으로 직업군인들에게 대한민국 평균 근로자들보다 많은 급여와 복지혜택을 주도록 하면 어떨까?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암울한 경험을 했듯이, 다시는 집 지키는 개가 주인을 물지 않도록 튼튼한 줄로 묶어두되 혜택은 충분히 주도록 하면 되겠다.
그리고, 우리의 청년들에게는 자신들의 꿈과 욕망, 독창성과 끼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풀어주었으면 좋겠다. 인간적인 삶, 다양한 사회의 발견과 다양한 시도 그리고 다양한 경험, 세대와 계층을 넘어 평등한 사고방식을 실천하며 살게 했으면 좋겠다. 상명하복과 같은 군사문화에 세뇌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강자에게 비굴하지 않고 약자를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문화를 배워 익혔으면 좋겠다. 혹시 당신의 자식에게 당신이 경험했던 군대의 독특한 문화를 체험하게 해주고 싶은가? 장교가 아닌 졸병으로서의 체험이라면 보름 또는 한달 이내로 충분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자식을 잘 설득해서 만족할 만큼 체험하도록 지원하여 다년간 복무하게 하면 되겠다.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식들이 군대에서 리더십을 배우고 경험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필자는 생각이 다르다. 리더와 보스는 개념상 차이가 있다. 리더십은 조직의 구성원들이 존경하여 자발적으로 부여하는 권위인데 반하여 보스는 조직의 구성원들이 두려움에 떨어 강제로 상납하는 권력을 가진다. 리더와 조직원 사이에는 존경과 사랑, 평등 및 배려가 있다. 조직이 수평적이기 때문에 조직원들 중에 누구라도 권위를 이어 받을 수 있고 누구라도 리더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보스와 조직원 사이에는 잔혹함과 획일화와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있다. 조직은 수직적이고 상하의 서열이 뒤바뀌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보스의 권위를 아무나 가질 수 없고 아무나 보스가 될 수 없다. 상위 보스는 하위 조직원들에 의해 선출되지 않고 최상위 보스의 지명에 따르기 때문에 항상 비굴하고 약삭빠른 충성경쟁을 한다. 군사문화는 리더성향의 문화일까? 보스성향의 문화일까?
필리핀 여성과 결혼한 필자의 아들 중 하나가 2년 가까이 컴퓨터 게임중독에 빠진 탓에 대인기피증세를 보인다는 전문가 진단에 따라 상담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한국말도 서툰 내 아들이 몇 년 후에 군대에 가게 될 것인데,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애들도 적응하기 힘들어 한다는 군대의 특수한 문화가 혼혈아인 내 아들을 어떻게 변하게 만들지 걱정이 많다. 혹시 내 아들 때문에 힘든 군생활을 하게 될지 모를 내 아들의 동료병사들 또한 걱정이다. 내 아들보다 더 심각하게 군대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느 청년 때문에 내 아들이 힘들어 할까봐, 제대 후에는 군대에서 경험한 특수한 문화를 탈피하지 못하고 일반사회에 적응하지 못할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