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n Travel] 고난과 축복의 땅, 예루살렘(상)
인간은 늘 무언가를 갈망하고 소원하며, 신을 향해 애절하게 울부짖는다.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한 가슴 아린 현실을 내 안의 그분만은 알아주길 간절히 원하면서.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고, 유대교인이 되고, 불자가 되는 길을 찾아 나선다. 예루살렘은 가슴 아픈 역사와 분열의 중심인 동시에 구원과 희망의 성지다. 전쟁과 정치, 종교 갈등은 뒤로하고 그저 신에게 온전히 의탁하고자 하는 마음이 어느 새 예루살렘으로 우리를 이끈다.
고난 속에도 잃지않은 ‘예루살렘의 미소’
황량한 대지를 연상했던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은 미지의 땅이다. 안개 속에 사로잡혀 드러나지 않을 것만 같던 광활한 황야는 첫 대면부터 뜨거운 생명력으로 다가온다. 굴곡진 바위산을 지나니 산양과 소떼가 풀 뜯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일광욕을 즐기듯, 두 뿔로 힘자랑 하듯, 올리브와 함께 생동감을 더해준다.
이스라엘을 대면한 첫 느낌이 광야에서 숨 트는 감동이라면, 예루살렘으로 들어선 두번째 느낌은 진지하고도 강인한 사람들의 미소다. 수천 년 고난의 역사에도 자부심과 자긍심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얼굴엔 거칠던 삶 대신 여유가 가득하다. 매 순간 신과 함께 하는 삶이 준 혜택이었을까, 예루살렘을 들여다보는 순간 순례자의 가슴 속 안개는 어느새 사라졌다.
다양한 종교와 민족이 함께 어울어져 있는 곳. 검은 모자에 검은 정장을 한 정통 유대인들이 유대교 ‘토라(Torah)’를 읽으며 잰걸음을 하고, ‘히잡(Hijab)’을 쓴 여인들이 무리지어 쇼핑을 즐긴다. 성전산 황금돔 사원에서는 예배시간을 알리는 ’아잔(Azan)’이 흘러나오고 그 너머 ‘통곡의 벽’에선 유대인들의 통곡소리가 터져 나온다. 때로는 부딪히며 때론 화해하며, 서로 존중하고 공존하는 삶이 이어지는 곳, 그곳이 바로 이스라엘 예루살렘이다.
‘비아 돌로로사’에서 입맞춤···예수가 여기 임하시다
수백만 기독교인을 울린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기억한다면 이 길에 놓인 자취와 의미가 생생하게 느껴질 것이다. ‘슬픔의 길’ 또는 ‘고난의 길’로 불리는 ‘십자가의 길’은 최후의 예수가 인간을 향해 최고의 사랑을 보인 길이다. 신이 사랑하는 인간의 죄를 아들 예수를 통해 용서하는 것이니 인간에게는 축복이지만 그 아픔과 통곡소리가 여행자들 가슴을 후벼 판다.
매주 금요일이면 프란체스코수도회에선 예수의 십자가 수난을 기리는 의식이 열린다. 예수가 재판을 받던 빌라도 법정 안토니우스 요새에서부터 골고다언덕에 이르는 800m는 제각각 뜻을 지닌 14곳이 있다. 이 가운데 제10지점에서 제14지점까지 성묘교회 안에 있다.
로마총독 빌라도는 유월절 기간 동안 자주 일어났던 반(反) 로마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총독부를 두었다. 그렇게 시작된 십자가의 길은 제1지점 빌라도 재판정을 시작으로 예수가 슬퍼하는 성모 마리아를 만나게 되는 제4지점에 이르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장면이 더욱 선명해진다. 아들의 고통을 지켜봐야만 했던 성모 마리아의 슬픔과 그 어머니를 대면한 예수의 눈빛이 떠오른다. 이어 성 베로니카 여인이 물수건으로 예수의 얼굴을 닦아준 제6지점을 지나고 예수가 세번째로 쓰러진 제9지점에 다다른다.
제10지점에서 제14지점까지는 예수가 처형당한 골고다 언덕이 성묘교회 안에 있다. 로마군은 제10지점에서 예수의 옷을 벗기고, 제11지점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한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임 당한 제12지점을 지나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의 시신을 내려놓은 지점 제13지점에서 순례자들은 눈물을 쏟아낸다.
예수의 시신을 올려놓은 것으로 전해지는 석판이 존재하는 이곳에서 순례자들은 통회의 눈물을 흘리며 “예수, 오 나의 하느님!”을 연발한다. 순례자 한 사람 한 사람 석판에 기름을 바르고 엎드려 예수를 향해 애절하게 울부짖는다. 마지막 제14지점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의 무덤에 예수를 장사 지낸 곳에서 십자가의 길은 끝난다. 이 길을 함께한 순례자와 여행객들 가슴엔 신을 향한 제 15지점이 열리기 시작한다.
신의 자취에 목말라 하던 이들은 ‘십자가의 길’ 위에서 신을 대면하고 신의 사랑을 확인한다. 끝없는 사랑과 평화로 안내하는 그곳에 제15지점이 순례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글 사진 이정찬 여행레저신문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