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N Travel] 고난과 축복의 땅 예루살렘(하)

노인의 굴곡진 삶 ‘통곡의 벽’을 울리다

솔로몬왕은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율법이 적힌 십계명판을 담은 궤를 보관하기 위해 성전을 세웠다. 그러나 기원전 587년 성전은 바벨론 군대에 의해 파괴된다. 지금의 ‘통곡의 벽’ 성전은 기원전 515년 헤롯왕이 다시 세운 제2성전의 일부이다. 이후 서기 70년 로마 티투스는 성전을 파괴하고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에서 추방한다. 이때 파괴된 성전은 대부분 불타 사라지고 성벽 서쪽 끝부분만 남아 ‘서쪽 벽(Western Wall)’이라고 불린다. 유대인들은 통곡의 벽을 안식처 겸 기도의 구심처로 삼고 있다. 제1의 성지인 셈이다.

로마에 의해 추방된 유대인들의 삶은 고통으로 이어진다. 땅을 빼앗고 성전을 불태운 로마군은 유대인의 예루살렘 출입을 금한다. 그러나 비잔티움시대에 들어선 이후 매년 성전이 파괴된 아브월 9월(양력 7~8월)의 단 하루만 유대인의 예루살렘 입성을 허용했다. 이날 세계 곳곳에 흩어져있던 유대인들은 남겨진 ‘서쪽 벽’을 두들기며 통곡했다. 예루살렘 구시가지 18m 높이의 담벼락, ‘통곡의 벽’ 의 유래는 거기서 시작됐다.

요즘도 매주 금요일, 유대인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예레미야 ’ 등을 부른다. 벽의 북쪽은 키파를 쓴 남자들이, 남쪽은 스카프나 모자로 머리를 가린 여자들이 기도 한다. 남녀유별인 셈이다.

스카프 두른 노인의 간절하고도 애절한 흐느낌에 고단했던 그의 삶이 엿보인다. 통곡의 벽을 타고 넘은 통곡소리와 눈물은 어느새 성스러움으로 승화한다. 평생을 신과 함께 살아온 유대인들의 삶이 그저 개인이 아닌 신에 의해, 신을 위해 이어지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벽 사이사이 끼워져 있는, 소원을 적은 종이쪽지가 모두 신의 축복으로 이어지길 조심스럽게 기도한다.

‘천상의 정원’ 갈릴리호수서 내 안의 신을 발견하다

고요한 묵상의 호수 ‘갈릴리’는 언제나 순례자들로 분주하다. 하프 모양이라 하여 히브리어로 ‘키네렛호수(Lake Kineret)’라고도 불리는 갈릴리호수는 남북 21km, 동서 11km에 이르는 담수호이다. 메마른 대지의 땅에서 예수는 이곳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순례자들에겐 이스라엘 성지순례의 기착지다.

끝없는 호수 주변을 걷노라면, 2000년 전 예수의 옷자락이 스친 돌부리에 내 손길이 스칠지도 모를 일이다. 갈릴리의 돌과 나무, 물에는 수천년 시간에도 씻기지 않은 예수의 향기가 스며나는 듯하다.

황폐해져 사람이 살지 않는 가버나움마을은 예수와 제자들이 수많은 기적을 행하여 병자들을 고쳐준 곳이다. 가버나움의 이끼 낀 돌기둥은 무너지고 부서진 채 순례자들의 손을 이끈다. 자신이 행한 기적이 전해지길 간절히 바라는 순례자 마음을 예수는 이미 헤아리고 계신 듯하다.

갈릴리 주변 유적지 중에서도 팔복교회는 특별하다. 갈릴리 북쪽 언덕 위 ‘축복산’으로 불리는 곳에 세워진 교회다. ‘축복산(팔복산)’은 예수가 8가지 복을 가르친 곳이다. 팔복교회는 8복을 상징하는 팔각형 구조물로 각 면의 창문마다 8복이 헬라어로 쓰여 있다. 내려앉은 푸른 하늘과 온갖 화초, 그 아래 펼쳐진 에메랄드빛 갈릴리 호수는 그대로 아름다운 천상정원이다. 무언가를 찾아떠나는 여행자들의 몸과 마음을 평화롭게 감싸 안는 이곳이 바로 축복의 땅이 아닌가? <글 사진 이정찬 여행레저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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