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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시가 있는 풍경] 가을 손길
억새꽃 하이얀 언덕에서 저무는 노을 바라볼 때 어깨 위에 놓이는 손길 가을인가 당신인가 박꽃 하얗게 눈부신 밤 하염없이 별을 쳐다볼 때 가만히 내미는 손길 가을인가 당신인가 구절초 환한 산굽이 돌아 지나온 길 아스라이 돌아볼 때 말없이 잡아주는 손길 가을인가 당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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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속초’ 정철훈
이상국 시인이 박재삼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 문자를 보냈더니 답신이 왔다 ㅡ적막하게 한잔합시다 까무룩해진다 적막이라는 단어가 입안 가득 퍼진다 비가 오려는지 하늘이 흐려진다 비가 온종일 내렸으면 좋겠다 한 달 전엔 불쑥 문자를 보내왔었다 ㅡ동쪽 술은 다 잊으셨는지 인연을 만들지 말아야 하는데 인연은 늘 생기고 만다 퍼뜩 생각나는 게 있어 스마트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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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가을 바다’ 홍사성
그 즐겁던 웃음소리 어디론가 사라지고 텅 빈 백사장은 주인없는 발자국만 어지럽다 갈매기 끼룩거리며 무슨 기미 살피는데 썰물처럼 떠난 사람들 돌아올 기약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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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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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겨울 바다’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싶던 새들도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혼령(魂靈)을 갖게 하소서 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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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목월木月 선생’ 이시영
성심여고 후문에서 산천동 깔그막 용산성당 올라가는 길, 누가 뒤에서 “이 군!” 하고 불렀다. 돌아보니 키 큰 목월 선생이 거기 서 계셨다. “이 군, 시는 그렇게 쓰면 안 된데이.” 반가움에 왈칵 달려갔더니 선생은 안 계시고 웬 낯선 청노루힐빌라. 전차 종점 가까운 원효로4가, 낡은 제과점 봉투를 든 선생께서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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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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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류:시가 있는 풍경] ‘누구인가’ 이병철
꽃을 피우게 하고 지게 하는 것은 새벽이면 닭을 울게 하고 팔월 불볕 아래 매미를 저토록 절규하게 하는 것은 허공에 거미의 집을 짓게 하고 모기 주둥이에 침을 달게 한 것은 지는 노을에 한숨짓게 하고 이슬 맺힌 꽃 앞에서 미소 짓게 하는 것은 숨 쉬는 모든 목숨붙이들 속에도 쉼 없이 출렁이는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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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무악재 부근’ 안병준
무악재를 넘을 때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담배를 피운다 서대문 감옥소에서 아버지는 인왕산과 안산 바라보며 원 코리아 꿈나무에 날마다 물을 주셨다 당신의 탄생일로부터 90여 년 증손자가 그 터에서 철부지로 날개짓 하다 넘치는 에너지 무악재 아래 서대문독립공원으로 이름은 바뀌었으나 강물처럼 이어져가는 역사와 영웅들의 숨결 무악재 부근에서 시대의식 있는 듯 없는 듯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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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흘러 흘러, 흐르고 흘러’ 김영관
흐르고 흘러 아주 자연스럽게 당연한 듯 당연히 아무렇지 않게 수렁에 고여 썩기도 하고 따뜻한 해에 하늘로 올라가 한번 더 아니 몇번째인지 모를 또 누구가에게는 간절함을 해소시켜주기도 또 누군가에게는 공포감을 끝없이 안겨주기도 어차피 가지는 길 어려워도 가고 힘들어도 가고 뭘 해도 가네 나이는 무엇을 해도 먹고 멈추려 늦추려 애쓰며 거슬러 오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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