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간브리핑 8.23~29] 트럼프엔 침묵, 북중·북러 육로는 열린다…김정은의 ‘선택적 외교’

8월 23~29일 북한의 움직임은 대미 침묵과 북중·북러 관계 확대가 교차한 한 주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과거 회동 사진을 공개하고 한미연합훈련 축소 메시지를 다시 내놓았지만 북한은 공식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반면 중국과 연결되는 신압록강대교에서는 ‘신의주세관’ 간판이 포착됐고, 러시아와 연결되는 두만강 자동차다리도 9월 개통 가능성이 제기됐다. 벨라루스와는 상호 비자면제 협정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대외관계의 문을 모두 닫기보다 상대를 가려가며 연결망을 넓혀가는 북한의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편집자>
이번 주 흐름
이번 주 북한을 읽는 핵심어는 ‘선택적 연결’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25일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주재하며 경제부문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점검했다. 같은 시기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김 위원장과 만났던 사진을 잇달아 공개하며 북미대화 재개 의지를 나타냈지만 북한은 이에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의 국경에서는 다른 움직임이 나타났다. 중국 단둥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신압록강대교 개통 준비가 막바지에 접어들었고, 러시아와 북한을 잇는 두만강 자동차다리도 9월 개통 가능성이 커졌다. 북한이 미국에는 전략적 침묵을 유지하면서 중국·러시아와는 물류와 인적 교류의 기반을 실제로 확충하는 모습이다.
김정은, 경제 간부 질책…트럼프의 잇단 ‘구애’엔 침묵
김정은 위원장은 8월 25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9기 제4차 정치국 확대회의를 주재했다. 회의에서는 올해 주요 정책과제 추진 상황과 주요 경제부문 사업이 집중적으로 점검됐다. 김 위원장은 일부 문제의 원인으로 “경제 지도기관들의 미숙한 작전과 지휘능력”을 지적하면서 새로운 각오와 투쟁 의지로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계획된 주요 사업을 차질 없이 마무리하라는 내부 단속의 성격이 강한 회의였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경제 부문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눈길을 끈 것은 미국을 향한 메시지가 없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과 2019년 판문점 회동 당시 김정은 위원장과 찍은 사진들을 잇달아 공개했다. 25일에는 앞서 게시했던 한미연합훈련 축소 관련 메시지를 다시 올렸다. 지난주 “김정은과 연내 만날 것”이라고 말한 데 이어 북미대화 의지를 연이어 드러낸 셈이다.
하지만 북한은 정치국 확대회의에서도, 관영매체를 통해서도 이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지난주 주간브리핑의 ‘다음 주 관전 포인트’가 바로 김정은이 트럼프의 대화 제안에 답할 것인지였다. 적어도 29일까지 북한의 답은 ‘침묵’이다. 다만 이것이 북미대화를 거부한다는 뜻인지, 협상 조건과 시기를 저울질하는 전략적 침묵인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김정은, 시진핑·네팔 대통령에 홍수 위문전문
김정은 위원장은 28일 대규모 홍수와 산사태 피해가 발생한 중국과 네팔 정상에게 각각 위문전문을 보냈다. 김 위원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티베트자치구의 산사태 피해와 관련해 중국 정부와 인민,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위문을 표하고 피해지역 주민들이 하루빨리 안정된 생활을 되찾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람 찬드라 파우델 네팔 대통령에게도 사상자와 실종자 발생에 위문과 동정을 전하며 조속한 피해 복구를 기원했다. 북한이 중국뿐 아니라 네팔에도 정상 차원의 위문전문을 보낸 것은 북한 외교가 러시아·중국에만 한정돼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중국에 대한 위문 메시지는 최근 북중관계의 회복 움직임 속에서 나온 정상 간 우호 표시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신압록강대교 ‘신의주세관’ 간판…11년 만에 개통 임박
북중관계에서는 보다 실질적인 변화가 감지됐다.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둥을 연결하는 신압록강대교 북한 측 구간에서 ‘신의주세관’ 간판이 확인됐다. 일본 교도통신은 25일 북한 측 세관 건설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개통이 임박했다는 관측을 전했다.
신압록강대교는 2010년 착공해 2014년 중국 측이 다리 본체를 완공했다. 그러나 북한 측 연결도로와 세관 등 기반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10년 넘게 개통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세관과 창고·물류시설, 교역품 검사장과 관문 시설 등이 모습을 갖추고 있다.
신압록강대교가 정식 개통되면 기존 북중우의교를 보완하는 새로운 북중 교역의 대동맥이 된다. 북한 대외무역에서 중국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단순히 다리 하나가 열리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북중 인적 교류와 물류량이 동시에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러 자동차다리도 9월 개통 가능성
북한의 북쪽에서는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로 향하는 길도 열리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를 잇는 두만강 자동차다리의 러시아 측 공사가 최근 빠르게 진척되면서 9월 개통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북한전문매체 38노스는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러시아 측 출입국·통관시설을 통과하는 주요 도로 포장이 완료됐고 교량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구간에서도 마무리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북한과 러시아의 육상 교통은 철도 중심이다. 자동차다리가 개통되면 차량을 이용한 물류와 인적 교류가 가능해진다. 이는 북러 관계가 군사협력과 정상 간 정치적 밀착에서 경제·물류 기반 확충 단계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중국과 연결되는 신압록강대교와 러시아를 연결하는 두만강 자동차다리가 비슷한 시기에 개통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북한 입장에서 서쪽의 중국과 동북쪽의 러시아를 동시에 육로로 확장하는 셈이다.
북한·벨라루스, 상호 비자면제 추진…러시아 우방권 외교 확대
북한은 벨라루스와도 관계를 확대하고 있다. 막심 리젠코프 벨라루스 외무장관은 최선희 북한 외무상과 회담한 뒤 양국 국민에게 적용되는 상호 비자면제 협정에 곧 서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협정 초안은 이미 마련됐으며 일부 세부사항 조율만 남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조치는 지난 3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평양 방문 당시 김정은 위원장과 체결한 ‘친선 및 협조에 관한 조약’의 후속 조치로 풀이된다. 북한이 러시아와의 밀착을 중심축으로 삼으면서 러시아의 우방국인 벨라루스와도 외교·인적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북러 관계가 북한과 러시아 두 나라에 그치지 않고 러시아 우방권과 북한의 관계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도 주목된다.
일본엔 선수단 보내면서 야스쿠니엔 “신군국주의 광풍”
대일관계에서는 상반된 두 장면이 나타났다. 북한은 오는 9월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열리는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 14개 종목, 100여명 규모의 선수단을 파견한다. 남녀축구와 역도, 권투, 레슬링 등에 출전하며 여자축구 리성아와 가라테 정세리 등 재일동포 선수 2명도 북한 선수단에 포함된다. 북한은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18개 종목 185명의 선수단을 보내 금메달 11개 등 모두 39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이번 대회 참가 규모는 줄었지만 북한은 더 많은 메달 획득을 기대하고 있다.
반면 정치적으로는 일본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북한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공물 봉납과 일본 정치인들의 집단참배를 겨냥해 “신군국주의의 광풍”이라고 비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일본의 방위력 강화 움직임과 야스쿠니 참배를 연결하며 일본이 군국주의적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일본 정부에는 강한 정치적 비난을 계속하면서도 일본에서 개최되는 국제 스포츠대회에는 100명 이상의 선수단을 보내는 것은 정치·외교와 국제 스포츠 참여를 분리해 대응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북한에도 전기버스…평양서 강계까지 확대
이번 주 북한 내부의 민생 관련 움직임 가운데서는 전기버스 확산이 눈에 띈다. 북한은 ‘축전지 버스’라고 부르는 전기버스를 평양에 이어 자강도 강계에서도 운행하고 있다.
평양에서는 지난해 문수~토성 구간에 수십 대의 전기버스를 처음 도입한 데 이어 올해 평양역~낙랑구역 전진동 구간에 새로운 노선을 구축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강계에서는 지난 7월부터 20여대의 전기버스가 새로운 시내 노선에서 운행을 시작했다.
북한은 기존 궤도전차와 무궤도전차를 전기버스로 개조하는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북한에서 전기버스 도입은 단순한 친환경 교통수단 확대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만성적인 유류 부족과 전력 공급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 선택의 측면도 있다. 배터리를 충전해 운행하면 정전 때마다 멈출 수밖에 없는 무궤도전차보다 운행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고, 석유제품 소비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의 북한
8월 23~29일 북한의 움직임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미국에는 답을 미루면서 중국·러시아와 연결되는 길은 넓혔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사진을 다시 꺼내고 한미연합훈련 축소 메시지까지 반복했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침묵했다.
그 사이 신의주에서는 중국으로 이어지는 신압록강대교의 세관이 모습을 드러냈고, 두만강에서는 러시아로 연결되는 자동차다리의 개통 준비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벨라루스와는 비자면제까지 추진하고 있다.
북한의 외교가 고립 일변도로 움직이고 있다고만 보기는 어려운 이유다. 미국과 한국에는 높은 문턱을 유지하면서 중국·러시아 및 이들과 가까운 국가들과는 교통·물류·인적 교류의 통로를 넓혀가는 모습이다.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경제간부들의 집행력을 질책하고 전기버스와 같은 민생 인프라 확충도 강조했다.
다음 주 관전 포인트
첫째는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연이은 대화 메시지에 언제, 어떤 방식으로 답할 것인가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북한이 북미협상을 위해 요구할 조건이 무엇인지가 더 중요해진다.
둘째는 북러 두만강 자동차다리의 실제 개통 여부다. 9월 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과 맞물려 북러 간 고위급 접촉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지켜볼 대목이다.
셋째는 신압록강대교다. ‘신의주세관’ 간판까지 등장한 만큼 실제 차량 통행이 시작된다면 코로나19 이후 북중관계 정상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장면이 될 수 있다.
트럼프가 계속 손을 내미는 가운데 김정은이 먼저 바라보는 곳이 워싱턴일지, 베이징과 모스크바일지 다음 주에도 그 방향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