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아이네이아스는 미래로

헨리 깁스(Henry Gibbs)의 1654년 작품. 불타는 트로이를 빠져나오며 아버지 안키세스를 업고 아들 아스카니우스의 손을 잡은 아이네이아스의 모습이 담겼다. ‘등에는 과거를 업고, 손에는 미래를 잡은’ 한 인간의 선택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버지를 업고, 아들의 손을 잡고
얼마 전 아버지를 업고 아들의 손을 잡고 불길을 빠져나가는 투구 쓴 병사의 그림을 본 적이 있다. 아이네이아스였다. 트로이가 불타고 있었다.

도시는 무너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살기 위해 달아나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병사가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다른 한쪽 어깨에는 늙은 아버지를 업고 있었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무기도, 재물도 없었다. 그가 가져가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뿐이었다. 그림을 한참 바라보았다.

아이네이아스는 오디세우스와는 다른 방식의 영웅이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를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승리자였다. 트로이 목마라는 계략으로 전쟁의 마지막 문을 연 사람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오디세우스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었다. 이타카였다.

하지만 아이네이아스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그가 살던 트로이는 불타고 있었다. 승리한 적군이 아니라 무너진 도시의 잿더미 속에서 그는 떠나야 했다. 두 사람은 같은 전쟁을 겪었지만 전쟁이 끝난 뒤 서로 반대 방향에 서 있었다. 한 사람은 승리해서 돌아가는 사람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패배해서 떠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 사람의 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닮아간다. 둘 다 바다를 건너고, 낯선 땅을 지나고, 수많은 유혹과 위험을 만난다. 그리고 둘 다 어느 순간 죽은 자들의 세계로 내려간다. 왜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자를 찾아가는 것일까. 돌아갈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돌아갈 집이 있는 사람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의 가장 큰 소원은 단순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 트로이 전쟁은 끝났지만 그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키클롭스와 맞서고, 세이렌의 노래를 지나고, 칼립소의 섬에 붙잡힌다. 바다와 신들은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하나의 장소가 있었다. 이타카.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있는 곳. 그래서 오디세우스의 여행은 모험이면서 동시에 귀환의 이야기다.

그런데 귀환하려면 길을 알아야 한다. 그는 결국 키르케의 조언을 받아 저승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만난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물을 수 없는 것을 죽은 사람에게 묻는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테이레시아스는 앞으로 닥칠 위험과 이타카로 돌아가는 길을 알려준다. 죽은 자의 세계가 산 자에게 길을 열어준 것이다.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
아이네이아스는 달랐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서 트로이는 이미 사라졌다. 아이네이아스가 찾아야 할 곳은 과거에 존재했던 고향이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고향이었다.

그래서 그가 아버지를 업고 아들의 손을 잡고 불길을 빠져나오는 장면은 더욱 특별하다. 그는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데리고 간다. 등에는 아버지 안키세스가 있다. 손에는 아들 아스카니우스가 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아이네이아스가 있다. 한 사람의 몸이 세 세대를 이어주는 다리가 된 셈이다.

그가 트로이에서 가져간 것은 황금도 왕관도 아니었다. 아버지와 아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한 문명이 패망한 뒤에도 끝내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인지 모른다. 도시는 불타도 사람은 데리고 나가야 한다. 과거는 기억해야 하고, 미래는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아이네이아스도 저승으로 내려간다
아이네이아스 역시 살아 있는 사람만으로는 자신의 길을 알 수 없었다. 그는 쿠마이의 시빌을 찾아간다. 시빌은 그에게 저승으로 내려가는 길을 알려준다.

그곳에서 아이네이아스는 많은 죽은 자를 만난다. 자신의 배에서 죽은 조타수 팔리누루스도 만난다. 트로이에서 함께했던 데이포부스도 만난다. 그리고 카르타고에서 자신을 사랑했던 디도도 만난다. 마침내 그는 아버지 안키세스를 만난다.

그런데 안키세스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오디세우스가 테이레시아스에게 들었던 이야기와 다르다. 오디세우스가 묻는 것은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였다. 아이네이아스가 듣는 것은 “왜 이 길을 가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었다.

안키세스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을 보여준다. 그들이 언젠가 로마의 역사를 이어갈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아이네이아스가 불타는 트로이에서 데리고 나온 아들은 이제 한 사람의 아들이 아니라 미래의 세대를 이어갈 사람이 된다.

그래서 <아이네이스>에서 저승은 죽음으로 끝나는 장소가 아니다. 오히려 미래가 보이는 장소다. 죽은 아버지가 살아 있는 아들에게 아직 오지 않은 역사를 보여준다.

두 사람의 귀환은 같지 않았다
오디세우스는 결국 이타카로 돌아간다. 그러나 아이네이아스에게는 돌아갈 트로이가 없다. 그에게 귀환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잃어버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집을 찾아가는 것.

오디세우스에게 고향은 기억해야 할 과거였다. 아이네이아스에게 고향은 만들어가야 할 미래였다. 그래서 두 사람은 모두 바다를 건넜지만, 그들이 향한 곳은 서로 달랐다. 오디세우스는 뒤에 남겨진 집을 향해 갔고, 아이네이아스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집을 향해 갔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그 길에서 죽은 자를 만났다. 아마도 인간은 혼자서 미래로 갈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자에게 길을 묻고, 죽은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처음에는 아이네이아스가 아버지를 업고 아들의 손을 잡은 그 그림을 단순히 전쟁에서 살아남은 한 사람의 피난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그는 불타는 트로이에서 한 세대의 끝과 다음 세대의 시작을 함께 데리고 나온 사람이었다.

등에는 과거를 업고, 손에는 미래를 잡고, 그 사이에서 현재의 인간이 걸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귀환의 또 다른 모습인지도 모른다.

산 자는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집을 잃은 사람은 새로운 집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에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한다.

산 자의 귀환을 말하기 위해 저승까지 내려갔던 두 영웅에게, 죽은 자들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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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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