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칼럼

북해의 청어와 태평양의 여정…카보베르데가 보여준 월드컵의 괴력

[아시아엔=팬다이머 김현원] 흔히 기독교계에서 많이 인용하는 북해산 청어 이야기가 있다. 어부가 북해에서 잡은 청어를 영국으로 가져오는 동안 청어는 기력을 잃는다. 하지만 어느 어부가 가져오는 북해산 청어는 영국에 도착할 때까지도 팔팔하게 움직인다. 어부가 비결을 밝혔다. “나는 잡은 청어 탱크에 메기를 한 마리 넣어줍니다. 그러면 청어들이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며 영국에 오기까지 활력을 잃지 않습니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주제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항상 나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이것은 많은 목회자들의 설교 주제이기도 하다. 나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론을 교회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쓴 적이 있다. “신앙은 북해를 건너는 짧은 항해가 아니라 태평양을 건너는 긴 여정이다. 메기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도망가는 청어의 몸에는 북해를 건너는 동안 아드레날린이라는 활력을 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일시적으로 생생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아드레날린은 극한 상황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아드레날린이 계속 분비되면 청어들은 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결국 빨리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 글은 당시 큰 논란으로 이어졌다.

월드컵 축구에는 여러 차례 우승한 전통의 강호가 있는가 하면 이번 대회에 처녀 출전한 국가들도 있다. 많은 국가가 조별리그에서 월드컵 우승을 여러 번 차지한 강호를 상대로 선전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첫 경기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세 경기 만에 조별리그에서 탈락한다. 그들을 보면서 북해산 청어가 떠오른다. 한두 번은 기대하지 않았던 괴력을 발휘하지만 그 기세를 계속 이어가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전통 축구 강국은 조별리그에서 예상 밖으로 약팀에 지기도 하지만 토너먼트에서는 실력을 발휘해 4강 이상의 성적을 거둔다. 전통 강국의 월드컵은 북해가 아니라 태평양을 건너는 긴 여정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는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1대2로 역전패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결국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준우승팀 아르헨티나가 개막전에서 아프리카의 카메룬에 0대1로 패하기도 했다.

이 경기들을 넘어 월드컵 최고의 이변을 꼽는다면 1966년 영국 월드컵에서 북한이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한 뒤, 에우제비오가 이끈 포르투갈을 상대로 3대0까지 앞서다 역전패한 경기와,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세계 최강으로 평가받던 영국이 축구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미국에 0대1로 패한 경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카타르 월드컵 우승팀 아르헨티나와 서아프리카의 인구 약 50만 명의 소국 카보베르데의 경기가 32강 토너먼트에서 열렸다. 아르헨티나는 프랑스, 스페인, 잉글랜드와 함께 월드컵 우승 경험을 가진 전통의 축구 강국이며, 이번 북중미 월드컵 참가국 가운데 FIFA 랭킹 1~4위에 속하는 강팀이다.

반면 카보베르데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 낯선 팀이다. 40세 골키퍼 보지냐는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하며 0대0 무승부를 이끌었다. 무려 27개의 슈팅을 막아내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카보베르데의 돌풍은 계속 이어졌다. 조별리그 3경기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고(3무) 조 3위로 32강에 진출해 아르헨티나와 16강 진출을 다투게 됐다.

아르헨티나 경기 후 팬들에게 손을 흔드는 카보베르데 골키퍼 보지냐 <연합뉴스>

먼저 전반 아르헨티나의 메시가 뛰어난 개인기를 바탕으로 선제골을 넣었다. 카보베르데는 물러서지 않고 후반 14분 동점골을 터뜨렸다. 이후 아르헨티나의 파상공세를 카보베르데의 골키퍼 보지냐는 잇달아 막아냈다. 연장전에 돌입한 두 팀은 놀랍게도 한 골씩을 주고받으며 승부를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러던 가운데 카보베르데 수비수가 걷어내려던 공이 자책골이 되면서 아르헨티나가 3대2로 앞서기 시작했다. 연장 후반이 끝나고 추가시간마저 거의 다 흘렀는데도 주심은 좀처럼 종료 휘슬을 불지 않았다. 그 순간 카보베르데의 극적인 동점골이 터졌다. 이런 장면은 평생 본 적이 없었다.

카보베르데 선수들은 환호했고, 메시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주심은 곧바로 카보베르데의 오프사이드를 선언했다. 리플레이 화면에는 카보베르데가 슈팅하기 직전의 장면이 비쳤다. 페널티지역 근처로 크로스가 올라왔고 카보베르데 선수가 헤딩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머리에 공이 닿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공은 그대로 뒤로 흘러가 슈팅으로 연결됐고 골망을 흔들었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여준 리플레이에서는 그의 머리카락이 공에 스친 모습이 확인됐다. 그는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고 결국 골은 취소됐다. 이미 추가시간도 모두 끝난 상황이었다. 카보베르데의 여정은 기적을 만들어낼 뻔하다가 그렇게 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카보베르데는 세계 최강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는 경기를 펼쳤다. 골키퍼 보지냐는 무려 8차례 골문으로 향한 슈팅을 막아냈다. 그 가운데 4개는 메시의 슈팅이었다.

월드컵에서는 늘 약팀의 골키퍼가 주목받는다. 약팀은 강팀의 거센 슈팅 공세를 견뎌야 하기 때문에 골키퍼의 활약이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카보베르데의 보지냐도 마찬가지였다. 보지냐의 활약은 단지 조별리그 1~2경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팀을 32강까지 이끌었고, 세계 최강 아르헨티나와의 혈전에서도 눈부신 선방을 이어가며 자신의 이름을 세계 축구팬들에게 각인시켰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은 당시 세계 최강 헝가리에 크게 패했지만 사자와 같은 투혼을 발휘해 많은 찬사를 받았다.

지금의 카보베르데는 비록 인구 50만 명 남짓한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지만, 대표팀 선수 대부분이 영국·독일·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 등 유럽 빅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당시 한국 대표팀과는 차원이 다른 전력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북중미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카보베르데가 보여준 괴력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들의 투혼이 전설을 넘어 현실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번 월드컵의 우승 후보를 꼽는다면 아르헨티나, 프랑스, 스페인, 잉글랜드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원래 FIFA 랭킹 1~4위권을 유지해 왔고, 이번 대회에서도 순항하며 모두 8강에 진출했다. 월드컵 우승을 노리는 팀이라면 전통도 필요하고, 선수들의 뛰어난 기량도 필요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탄탄한 자국 리그도 필요하다. 수준 높은 감독과 전술 역시 필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골을 결정짓는 스트라이커의 존재일 것이다.

과거 축구에서는 비교적 많은 골이 나왔지만 최근에는 득점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야구나 농구가 7전 4승제로 우승팀을 가리는 반면 축구는 단판 승부다. 더구나 축구에는 판정승이 없다. 결국 골을 많이 넣는 팀이 승리한다. 평균적으로 10개의 슈팅 가운데 한 골이 나온다면 세계적인 스트라이커는 3~4개의 슈팅 가운데 한 골을 만들어낸다. 무작정 슈팅을 많이 하는 것보다 결정력 있는 스트라이커의 존재가 승부를 좌우하는 것이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스트라이커의 존재감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월드컵 득점왕은 대체로 7골 안팎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음바페가 8골로 득점왕에 올랐고, 메시가 7골로 그 뒤를 이었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의 메시와 프랑스의 음바페가 벌써 7골씩을 기록했고, 잉글랜드의 해리 케인은 6골을 넣었다. 노르웨이의 엘링 홀란도 7골을 기록하고 있지만, 노르웨이가 토너먼트에서 얼마나 더 올라갈지는 미지수다. 반면 각국 리그에서 득점왕을 수차례 차지했던 폴란드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는 이번 대회에서 대표팀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면서 더 이상 득점을 추가할 기회를 잃었다.

어느 팀이 우승할지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갈수록 치열해지는 득점왕 경쟁 또한 이번 월드컵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우승 경쟁 못지않게 득점왕 레이스 역시 가히 점입가경이라 할 만하다.

필자의 호(팬다이머)에 사용된 팬다임(Pandigm)은 ‘편견 없는 과학’을 의미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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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원

연세대 의대 전 교수, 팬다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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