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위스로 가는 비행기편도 미리 준비하지 못해 미군 수송기를 얻어 타고 무작정 일본 도쿄에 도착했다. 이후 스위스로 가는 항공권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끝에 도쿄-방콕-캘커타-카라치(파키스탄)-로마-취리히로 이어지는 세계일주를 방불케 하는 긴 여정을 거쳐 경기 전날 취리히에 도착했다. 그것도 1진만 먼저 도착했고, 2진은 좌석이 부족해 출발조차 쉽지 않았다. 마침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왔던 한 신혼부부가 사연을 듣고 좌석을 양보해 주었지만, 2진은 결국 1차전에는 합류하지 못했고 2차전 튀르키예와의 경기 직전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경기 시작 10시간 전에 간신히 스위스에 도착한 대표팀은 적응 훈련은커녕 유니폼만 갈아입고 당시 세계 최강팀인 헝가리와 맞붙게 되었다. 그럼에도 대표팀은 경기 초반 20분 동안 실점하지 않았다. 헝가리 선수들의 공세가 워낙 거셌는지 홍덕영 골키퍼는 “슈팅 수가 30개를 넘은 뒤부터는 아예 세어보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당시 해외 언론은 20대0까지의 대승을 예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 대표팀은 투혼을 발휘해 끊임없이 슈팅을 막아내며 9대0으로 경기를 마쳤다. 지금 기준으로는 대패처럼 보이지만 당시에는 고득점 경기가 흔했다. 예선전에서 훗날 우승팀인 서독마저 헝가리에 8대3으로 졌고, 튀르키예는 서독에 7대2, 스코틀랜드는 우루과이에 7대0으로 패하는 등 야구 스코어를 방불케 하는 경기들이 이어지던 시절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이 세계 최강 헝가리를 상대로 9실점으로 버텨냈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결과가 아니었다. 당시 헝가리 감독은 “그들은 사자처럼 용맹하게 싸웠다. 쓰러져도 계속 일어나 싸웠다”고 찬사를 보냈다. (대표적인 맹수로 호랑이를 떠올리는 우리와 달리 서구에서는 사자를 용맹의 상징으로 자주 사용한다.)
당시 대표팀 김용식 감독은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연히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 골만 넣자. 그래야 전쟁으로 헐벗고 힘든 국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지 않겠는가?”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세계와의 격차는 너무 컸고, 상상하기 어려운 열악한 상황 속에서 그 소박한 목표도 이루지 못했다. 당시 유럽 방송 해설자들은 “대한민국 대표팀은 전쟁이 끝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나라의 선수들입니다. 하지만 엄청난 투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기를 지켜보고 계신 모든 분들께서는 이들을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응원을 부탁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유럽의 축구팬들은 한국 대표팀 숙소를 찾아와 음식과 선물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돌아갔다. 헝가리와 튀르키예에 연패하며 일정을 마친 대표팀은 여비마저 떨어져 결승전도 보지 못한 채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당시 월드컵 참가국에는 경기 수익의 일부가 배정되었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대표팀은 이를 찾아가지도 못했다. 이후 다음 월드컵 참가 공문마저 영어를 몰랐던 직원의 서랍 속에 묻혀 버렸고, 결국 한국은 다음 월드컵 본선에도 나서지 못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같은 이 이야기는 2022년 한국 TV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소개되기도 했다.
북중미 월드컵에서 한국의 조별리그 3차전은 남아공과 열렸다. 남아공은 멕시코에 졌고 체코와 비겼기 때문에 한국은 비기기만 해도 32강에 오를 수 있었다. 많은 국민의 응원 속에서도 한국은 남아공에 1대0으로 패했고, 32강 진출 여부는 다른 조 3위 팀들의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한국의 현재 상황은 가장 비교하기 쉬운 일본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북중미 월드컵 직전에 열린 경기에서 브라질을 3대2로 꺾었고, 잉글랜드에도 1대0으로 승리했다. 반면 한국은 브라질에 5대0으로 대패했다. 일본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4년 전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일본은 최악의 조 편성 속에서도 독일과 스페인을 차례로 꺾고 16강에 진출했으며, 결국 3위를 차지한 크로아티아와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패했다. 한국 역시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에 올랐지만 브라질에 4대1로 완패했다.
72년 전 한국 축구 대표팀은 비록 크게 졌지만 ‘사자와 같이 용맹하게 싸웠다’는 찬사를 받았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을 지켜본 결과 한국 대표팀에서는 승리에 대한 절박함이 잘 보이지 않았다. 멕시코와의 2차전은 무승부를 노리는 듯한 소극적인 경기 끝에 1대0으로 패했고, 남아공과의 경기에서도 이기겠다는 의지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결국 국민들에게 큰 아쉬움을 남겼다.

도대체 홍명보 감독은 어떤 생각으로 이런 무기력한 경기를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일본 대표팀의 경기를 보면 공을 잡는 순간 주변 선수들이 함께 움직이며 유기적인 축구를 펼친다. 반면 한국 대표팀은 공을 잡아도 연결할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이는 개인 기량보다 전술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히딩크 감독이 이탈리아전에서 무려 8명의 공격수를 투입했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번 한국 대표팀은 뒤지고 있는데도 수비수 4명을 그대로 유지했고, 전술 변화도 거의 없었다. 공격수는 계속 고립됐고 경기는 무기력하게 흘러갔다. 외신에서도 “한국은 왜 이기려고 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남아공과의 경기를 보며 그렇게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사자와 같이 용맹하게 싸웠던 우리 선배들의 투혼이 떠올랐다. 요행으로 한국이 32강에 올라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기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안타까운 경기를 지켜보며 다시 한번 사자와 같은 용기를 기대해 본다.
팬다임은 ‘편견 없는 과학’을 의미한다. 팬다이머(Pandimer)는 필자가 영어로 사용하는 호(號)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