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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출격입니다”…전투조종사는 하늘로, 외과의사는 수술실로

2019년 공군 대령 이배선이 자비 출간한 <출격일지>를 항공도서관 북 큐레이션을 통해 보게 되었다. 그는 1949년 6월 공군사관학교 1기생으로 입교해 교육을 받았고, 임관과 비행과정 수료 후 6·25 전쟁에 참전했다. 책에는 1952년 12월 첫 출격에서부터 1953년 휴전에 이르기까지 모두 92회에 걸친 출격의 기록이 담겨 있었다. 전투 상황과 긴장, 그리고 살아 돌아온 순간의 안도가 담담한 필체로 적혀 있었다.-본문에서

“아, 드디어 마지막 출격이네”…전투 조종사는 하늘로, 외과의는 수술실로

수술이 여러 개 있는 날이면 한 수술이 끝나고 다음 수술을 준비하는 동안 갱의실 소파에 잠시 앉아 있기도 한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즈음, 오늘의 마지막 수술을 하러 수술실로 들어가며 어느 외과의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아, 드디어 마지막 출격이네.”

2019년 공군 대령 이배선이 자비 출간한 <출격일지>를 항공도서관 북 큐레이션을 통해 보게 되었다. 그는 1949년 6월 공군사관학교 1기생으로 입교해 교육을 받았고, 임관과 비행과정 수료 후 6·25 전쟁에 참전했다. 책에는 1952년 12월 첫 출격에서부터 1953년 휴전에 이르기까지 모두 92회에 걸친 출격의 기록이 담겨 있었다. 전투 상황과 긴장, 그리고 살아 돌아온 순간의 안도가 담담한 필체로 적혀 있었다.

얼마 전 항공우주의료원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하는 길에 공군사관학교에 들렀다. 그 육필 원고를 직접 보고 싶었다. 기록은 평범한 대학 노트에 적혀 있었다. 날짜와 상황, 비행 내용이 간결하게 정리된 모습이 어딘지 수술 기록을 떠올리게 했다.

복도를 지나가다 세로로 긴 액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6·25 전쟁 당시 출격 중 전사한 전투조종사 고 신철수 소령을 애도하는 추도사였다.

추도사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불행히도 공군 대위 신철수는 6·25 사변 이후 연일 계속된 작전 중 적을 격멸하고 조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용전분투하다가 마침내 장렬히 전사하였다.” 이어 고인의 충성과 용기, 전우애를 기리며 그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이 적혀 있었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외과의와 출격하는 조종사 사이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응급환자가 들어와 응급실로 달려갈 때에는 귓전에 마치 경기병의 나팔 소리 같은 음악이 울리는 듯하다. 그러나 수술실 문 앞에 서면 마음은 오히려 차분해진다. 마스크를 쓰며 머릿속으로 수술의 과정을 하나씩 그려본다. Plan A, 그리고 Plan B. 어려운 수술을 앞두고는 가끔 성호경을 긋기도 한다.

수술이 끝나면 장갑을 벗고 손을 씻는다. 그리고 피를 깨끗이 닦은 손가락이나 얼굴을 조수 의사나 스크럽 간호사에게 잠시 보여준다. 함께 고생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기록을 위해 사진도 남겨야 한다. 수술실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컴퓨터로 옮기는 일은 순환간호사의 몫이다. 내가 찍자고 말해야 찍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는 분명 추가 일일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 “깨끗하게 잘 된 것 같습니다”라고 말해주면, 빈말일지라도 어깨가 조금 으쓱해진다. 이 나이쯤 되면 하느님도 그 정도의 작은 교만쯤은 용서해 주실 것이라 믿는다.

전투 조종사는 하늘로 출격하고 외과의는 수술실로 들어간다. 전장은 다르지만,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늘 같다.

공군사관학교에 전시된 고 신철수 소령 추도사. 6·25전쟁 당시 출격 중 전사한 전투조종사를 기리는 글로, 당시 공군 장병들의 정신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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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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