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12월19일 대통령선거…2002·2007·2012 노무현·이명박·박근혜의 ‘명암’

왼쪽부터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12월 19일에는 세 차례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선거에서는 노무현 후보가, 2007년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각각 당선됐다. 그러나 세 대통령 모두 재임 중 또는 퇴임 이후 검찰 수사를 받았고, 이명박과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은 실형을 선고받아 수감됐으며, 박근혜는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파면됐다.

2002년 12월 19일 치러진 제16대 대통령선거에서 투표율은 70.8%를 기록했다. 노무현 후보는 득표율 48.9%, 1,201만 표를 얻어 당선됐으며, 이는 당시 사상 최다 득표였다. 이 기록은 10년 뒤 박근혜 후보가 경신했다. 제15대 대선에서 패배했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재도전에 나섰지만 다시 낙선했다.

노무현과 박근혜

2002년 초만 해도 한 자릿수 지지율에 머물던 노무현 후보는 처음 도입된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여당 후보로 선출됐다. 정치인 팬클럽인 ‘노사모’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에서 이인제 후보를 이겼고,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를 통해 이회창 후보를 꺾으며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2007년 12월 19일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됐다. 투표율은 63.0%로 대통령선거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 후보는 1,149만 표(48.7%)를 얻어 노무현 대통령보다 득표 수는 적었지만, 532만 표 차로 사상 최대 격차 승리를 거뒀다.

당시 노무현 정부의 낮은 지지율로 선거는 비교적 수월할 것으로 전망됐으나, 이명박 후보는 BBK 주가조작 의혹으로 어려운 선거를 치렀다. 검찰은 선거 2주 전 해당 의혹을 모두 무혐의로 결론 내렸지만, 이 사건은 2020년 대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됐다.

이명박과 노무현

이회창 후보는 세 번째 대선 도전 끝에 낙선한 뒤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권영길 후보 역시 제15·16·17대 대선에 세 차례 출마했으나 모두 패배했다. 허경영 후보도 세 차례 대선에 출마해 모두 낙선했다. 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세 차례 낙선 뒤 네 번째 도전에서 당선됐다.

2012년 12월 19일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1,577만 표를 얻어 당선됐다. 이는 사상 최다 득표 기록이며,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최초의 부녀 대통령이었다. 득표율은 51.6%로,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이후 유일하게 과반 득표를 기록했다. 투표율도 75.8%로 비교적 높았다.

이명박과 박근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안철수 후보의 중도 사퇴 이후 박근혜 후보와 맞대결을 벌여 1,469만 표를 얻었으나 낙선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기무사 선거 개입 의혹,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를 겪었고, 이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드러나면서 탄핵돼 파면됐다.

제17대 대선에서는 만 19세에게 처음으로 투표권이 부여됐다. 이후 2019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선거 연령은 만 18세로 낮아졌다. 제18대 대선에서는 재외국민이 1971년 이후 처음으로 투표에 참여했고, 사상 최초로 선상투표도 실시됐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재외국민과 원양선원의 투표권 제한을 헌법불합치로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대통령 직선제 부활 이후 대선은 12월 중순에 치러졌지만, 박근혜와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대선 일정은 변화했다. 앞으로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치는 경우, 대선은 4월 하순에서 5월 하순 사이에 치러질 전망이다.

손혁재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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