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칼럼

[이우근 칼럼] 푸틴·트럼프·시진핑·김정은 시대, 우리는 또 다른 리바이어던을 보고 있는가?

오늘의 세계에서 무소불위의 리바이어던은 미국․러시아․중국 세 강대국 아닐까? 그래도 미국에서는 권력을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이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곤 하는데, 중국과 러시아에서는 강권통치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는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남쪽에서는 여야가 정권을 뺏고 뺏기며 서로에게 비판과 반대의 외침을 쏟아내지만, 북한에서 비판과 반대는 곧 숙청 또는 죽음이나 다름없다. 핵무기를 거머쥔 북녘의 괴물을 우리는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아니, 우리 내부에서도 울려 나올 수 있는 리바이어던의 용트림을 어떻게 억누를 것인가? 사진은 Thomas Hobbes <Leviathan>

인류역사는 치(治)와 난(亂)이 뒤엉킨 혼돈의 역사를 거듭해왔고, 지금도 거듭하고 있다. ‘영구평화’는 철학자 칸트의 이상론일 뿐,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제안이 아니었다. 역사에는 영원한 평화도, 영원한 전쟁도 없었다.

제 1,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소련의 붕괴를 거쳐 미국의 패권이 냉전체제를 지배한 20세기 후반은 대체로 치의 시대였다. 한반도와 중동과 베트남 등지에서 국지적 전쟁은 있었지만,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치의 시대에 바야흐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21세기는 치의 시대일까, 난의 시대가 될까?

​러시아의 푸틴은 같은 동슬라브족의 나라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미국의 트럼프와 이스라엘의 네타냐후는 이란을 무력으로 공격했다. 그에 맞서 이란의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밀실에 숨어 결사항전을 외쳐댄다.

저들 강권통치자에게 국민이나 병사들의 목숨은 하루살이만도 못한 듯하다. 중국의 시진핑은 대만을 대륙에 무릎 꿇리려 눈에 불을 켜고, 핵폭탄을 거머쥔 북한의 김정은은 대한민국을 적대국이라고 공언한다.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난세의 조짐이 뚜렷하다.​

치의 시대에는 도덕과 규범이 최소한으로나마 힘을 지녔는데, 난의 시대에는 도덕과 규범은 자취를 감추고 이기주의와 강권통치가 활개 친다. 국제정치에서 이기주의는 민족주의로, 강권통치는 제국주의로 나타난다.

민족주의와 손을 맞잡은 제국주의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의 압도적 군사력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깡패나 조직폭력배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인권․국제법․자유무역의 평화적 국제질서는 사라지고, 저마다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무력대결의 시대가 펼쳐진다.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의 구호로, 시진핑은 중화민족의 부흥을 되살리겠다는 중국몽(中國夢)으로, 네타냐후는 아우슈비츠의 악몽을 떨쳐낸 신정국가(神政國家) 이스라엘의 부활로 지난날의 영광스러웠던 기억을 되살리거나 역사적 피해의식을 자극해서 대중의 지지를 낚아챈다.

푸틴은 위대한 러시아 제국의 재건으로, 하메네이는 화려했던 페르시아의 옛 영광으로, 김정은은 3대 세습정권의 백두혈통으로 모두 대중심리를 자극해 자기 권력을 확고히 다지는 역사적 포퓰리즘의 강권통치를 펴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 “정치지도자는 사랑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안전하며, 권력을 유지하려면 도덕적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고 썼다. 권력추구의 목적이 어떤 수단도 정당화한다고 믿는 21세기의 마키아벨리언(Machiavellian)들은 도덕이나 인권의 고상한 가치를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투쟁과 승리의 세속적 가치에 집착한다.

마키아벨리즘은 나르시시즘(Narcissism)․사이코패시(Psychopathy)와 함께 심리학이 ‘어둠의 3요소’라고 부르는 냉담성․이중성․공감결핍의 특성을 지닌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는 기원전 5세기에 벌써 “강자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약자는 고통을 입는다”고 절규했다.​

이기적 존재인 인간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결국 공멸에 이른다고 본 토머스 홉스는 인간이 서로의 투쟁을 멈추고 강력한 통제력을 가진 절대군주에게 자신들의 권리를 양도해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받는 암묵적 계약을 맺는다고 주장했다. 그 암묵적 계약으로 국가가 태어난다. 국가는 안보와 평화와 질서유지를 위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일정 부분 제한한다. 일종의 필요악(必要惡)인 셈이다.

홉스는 국가를 리바이어던(Leviathan)이라고 불렀다. 리바이어던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혼돈의 괴물, 사악한 바다짐승이다(욥기 41, 시편 74, 이사야 27). 그런데 지구촌에는 ‘세계정부, 세계국가’라는 괴물이 없다. 그래서 강대국들 스스로 리바이어던이 된다. 그 리바이어던은 필요악으로 그치지 않는다. 세상을 ‘만국에 대한 만국의 투쟁’ 속으로 몰아가는 일그러진 악의 세력, 무소불위의 제국주의, 절대권력의 강권통치다.

​오늘의 세계에서 무소불위의 리바이어던은 미국․러시아․중국 세 강대국 아닐까? 그래도 미국에서는 권력을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이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곤 하는데, 중국과 러시아에서는 강권통치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는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남쪽에서는 여야가 정권을 뺏고 뺏기며 서로에게 비판과 반대의 외침을 쏟아내지만, 북한에서 비판과 반대는 곧 숙청 또는 죽음이나 다름없다. 핵무기를 거머쥔 북녘의 괴물을 우리는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아니, 우리 내부에서도 울려 나올 수 있는 리바이어던의 용트림을 어떻게 억누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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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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