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깐묵상 | 데살로니가후서 2장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살후 2:2)
당시 위서(僞書) 문제는 심각했습니다. 바울이 편지마다 굳이 친필임을 강조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가짜 편지가 판을 쳤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바울이 쓰지도 않은 바울의 편지를 읽고는 혼란에 빠지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이것은 2,000년 전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숙고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바울의 경고를 이렇게 현대적으로 의역해 볼 수 있습니다. “영상으로나 알고리즘으로나 AI 기술로나”
이제는 가짜가 진짜처럼 보이는 수준을 넘어 진짜가 가짜처럼 의심받는 진실의 역류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만약 몇 년 뒤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면 사람들은 “저거 AI로 만든 거 아냐?”라고 의심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기독교 신앙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무신론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무신론이 아니라 ‘시뮬라크르 신’, ‘하이퍼리얼 신'(Hyper-real god)입니다. 머지않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신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이는 구약 시대의 말하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우상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AI로 만든 신은 말도 하고 움직이기도 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지혜와 지식이 축적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기도에 응답할 것이고 그들의 뇌 속에서 기적을 일으키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누군가 그걸 하나님이나 예수라고 부르지 않으리라는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10년 동안 기도해도 응답이 더딘 하나님과 10초 만에 응답하는 하이퍼리얼 신, 사람들은 누구를 믿게 될까요?
바울의 친필 편지는 2,0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 우리에게 도착했습니다. 모든 것이 조작 가능한 이 시대, 픽셀과 데이터로 만들어진, 진짜보다 진짜 같은 가짜들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진짜를 분별해야 할까요? 어쩌면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것들이 진실로 남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좋은 것들은 모조리 다 꾸며낼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예수님이 왜 누구도 지고 싶어하지 않는 십자가를 지셨을까요? 고난과 십자가, 그것만이 조작할 수 없는 사랑의 확증이기 때문입니다. 그 외의 번영과 화려함은 환각의 영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는 바울의 고백이 AI 시대의 문이 열리는 이 시점에 묵직하게, 그리고 리얼하게 다가옵니다.
잠깐묵상 유튜브로 듣기
https://youtu.be/RxaSOHawBsk?si=2KaBG1xL3msfYKk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