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석문섭 칼럼] 글은 독자의 것, 기쁨으로 쓰고 하나님께 맡기다

석문섭 이미지

나는 이 일이 즐겁다. 성경의 빼곡한 글자들 사이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 말이다. ‘오다 주웠다’는 말처럼, 성경을 읽는 길에 줍게 되는 것들이 있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별것 아니겠지만, 나는 자꾸 눈길이 간다. 적어도 나에게는 시선이 빼앗길 정도로 특별한 것이다. 마치 유치원 다녀온 아이의 가방 속에 있는 잡동사니들처럼.

유치원에 다녀온 둘째 아이의 가방에는 별별 것들이 다 담겨 있다. 얘는 유치원 쓰레기통을 털어 오나 싶다. 그러나 그 아이는 그걸 작품이라 주장한다. 내 수첩에도 잡동사니에 가까운 초고들이 널부러져 있다. 글이라고 하기에 민망한, 영락없는 낙서이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발견의 첫 기록이다. 헤밍웨이가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 하지 않았던가. 내 수첩에 담긴 잡동사니들도 영락없는 쓰레기임에 틀림이 없다.

매일 그 쓰레기들 중에 하나를 골라 나름대로 윤을 낸다. 나는 이 일이 즐겁다. 어떤 날은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설렌다. ‘뭐야? 여기에 이런 게 있었어?!’ 신이 나서 흥분하면 각성이 되어 잠이 오질 않는다.

잠 못 이루는 밤, 아주 가끔 찾아오는 날이지만 그런 날 덕분에 지난 몇 년간 매일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이걸 거창하게 사명감이나 은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아재 개그처럼. 누군가를 웃게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웃었다면 그걸로 충분하고, 코드가 맞는 사람이 피식했다면 만족한다.

사명이라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초반엔 그랬다. ‘말씀을 나누는 일’, 그건 귀한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너무 예쁘게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솜씨도 변변찮은 게 사실이고. 그렇다고 이 일을 결코 가볍게 여긴다는 뜻은 아니다. 글을 읽고서 이런저런 도움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전도하는 일에 나의 글을 활용하고 있다는 소식을 건너들을 때면 묵직한 부담감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미치는 좋은 영향, 그건 내가 한 일이 아니란 걸 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지. 나는 그저 기쁜 마음으로 이 일을 하고 싶다. 하나님이 하실 일까지 내가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지만.

지난 8월, 그간 썼던 글들 중 100개가 모여 책이 되었다. 책의 표지 디자인 시안이 나왔을 때, 첫아이의 초음파 사진을 보는 것 같았다. 이제 그 기쁨이 다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지난주 출판사와의 미팅에서 제목이 정해졌고, 그리고 오늘 표지 디자인 시안이 나왔다. 일이 진행되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말은 화자의 것이지만, 글은 독자의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성경을 읽는 길에서 ‘주운’ 이 기쁨과 감격도, 글을 읽는 분들의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게 다다. 변변찮은 글을 가지고 누구를 변화시키려 애쓰고 싶지는 않다. 그건 하나님께 맡겨 드리고, 나는 나에게 맡겨진 일에 그저 충실히, 기쁨을 누리련다.

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자동 게재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