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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로버트 오닐 ‘독일군과 나치당 1933-1939’

The German Army and the Nazi Party

“군부는 나치를 이용하려 했고, 나치는 군부를 장악했다”의 결정적 6년을 해부한 정치–군사 연구

  1. 오닐의 책은 단순한 ‘군부와 히틀러의 관계사’가 아니라, 정치권력과 군부 사이에서 어떻게 우위가 이동하는가를 보여주는 사례 연구이다. 리델하트는 서문에서 이 책을 “히틀러가 전문적 군사 엘리트 위에 군림하게 된 과정에 관한 가장 통찰력 있는 연구”라고 평가했다. 오닐은 로즈 장학생으로 옥스퍼드에서 4년간 연구했고, 독일 장군들을 직접 인터뷰하며 기존 연구가 갖지 못했던 1차 자료, 독일군 내부 시각, 비공개 문서를 확보했다.

이 책은 나치 집권기 독일군은 단순한 피해자도, 적극적 공범도 아니었으며 군-정 관계는 이념보다 구조·인물·상황의 상호작용으로 결정되고, 군은 정치 불개입의 ‘전통적 미덕’ 때문에 오히려 전체주의의 길을 열어주었다. 즉, “독일군은 히틀러에게 속았는가, 히틀러를 이용하려 했는가”라는 오래된 논쟁을 오닐은 냉정하게 해부한다.

2. 크게 내용을 요약하면 3단계로 구분된다.
① 1933–1934: 히틀러의 등장과 군부의 초기 호감(또는 착시)
독일군은 히틀러를 “두 악 중 덜한 대안”으로 보았다. 오닐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군부의 절망적 처지-병력 제한, 장비 부족, 예산 빈곤, 사회적 고립
*나치의 적극적 구애-베르사유 조약 타파, 재무장 약속, “국가의 군대” 존중
*히틀러 개인의 전우 이미지-1급 철십자 훈장, 참호전 경력은 장교단에 강한 호소력
*공산주의 내란 위기-1932년 베를린 파업, 적색전선(RFB, Roter Frontkämpferbund)·나치 SA 폭력 등으로 군부는 ‘내전 공포’를 체감했다. 즉, 군부는 “나치와 공산주의 중 택일”이라는 인식 속에서 히틀러에게 기회를 허용했다. 여기서 이미 군부의 첫 번째 전략적 패착이 발생한다. 정치 중립이라는 명분 하에 “불개입”이 곧 “동의”가 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② 1934–1938: 군부의 제도적 종속 과정- ‘장벽에서 도구로’
1934년 장검의 밤(반대파 숙청)에서 나치는 SA를 제거하며 군부에 ‘안도감’을 제공했고, 동시에 군의 충성을 끌어냈다. 이후 군부는 점차 나치 정책의 수단으로 조직화되었다.
*결정적 사건들로 히틀러에 대한 충성 선서(1934)-국가는 사라지고, 군은 특정 개인에게 충성하는 구조가 고착.
*재무장과 군사확대(1935~)- 군은 막대한 예산·장비·지위를 제공받으며 히틀러를 “군사 재건의 수호자”로 인식.
*블롬베르크–프리치 사건(1938)-히틀러가 군 수뇌를 제거하고 OKW(국방군 최고사령부)를 창설하며 군권을 직접 장악. 군부는 “최고사령부의 집단지도”에서 “총통 개인의 지휘”로 구조적으로 종속되었다.

SS의 군사적 확대
– 힘러·하이드리히가 군의 인사·정보·치안 영역을 침범.
– 육군은 경쟁·불만을 느끼면서도 히틀러와 충돌을 피하는 보수적 태도를 유지했다.
이에 대해 오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군부는 나치와 전략적 거래를 하려 했으나, 히틀러는 군부의 비정치성·관료주의·분열을 이용해 군부를 장악했다.

③ 1938–1939: 군부의 완전한 동원- 침략전쟁의 도구로 전락
*1938년 이후 독일군은 다음 두 가지를 중심으로 히틀러 계획에 종속되었다(10~12장).
*전격적인 국방계획·침공시나리오 수립-오스트리아 합병(1938), 주데텐란트 점령, 체코슬로바키아 해체.
*정치적 거부 의지 상실- 베크·프리치·만슈타인 등 일부 장군의 반대는 구조적으로 고립 -군부 엘리트는 “전쟁 가능성”을 논쟁했으나 히틀러의 의지를 막을 힘은 없어졌다. 결국 1939년 폴란드 침공으로 이어지는 길은 군부와 히틀러의 “전쟁 가능성 논쟁”이 아닌, 히틀러의 의지만이 기준이 되는 구조로 재편된 결과였다.

3. 독일군은 나치에게 ‘이용당했는가’ 혹은 ‘이용했는가’?
오닐은 양극단을 모두 부정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내린다.
① ‘이용당했다’는 시각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군부는 다음 세 가지 이유 때문에 히틀러에게 기만당했다. 비정치성을 미덕으로 착각- 군은 정치 개입을 “명예롭지 못한 행위”로 보았고, 이로 인해 히틀러의 권력 강화에 저항하지 못했다.
*나치의 위협을 과소평가- SA의 위협만 제거되면 히틀러는 ‘보수 엘리트에 포섭된 인물’이 될 것이라고 착각했다.
*재무장이라는 당장의 이익- 군부는 재무장과 예산 확충을 얻기 위해 히틀러와 손을 잡았고, 그 대가로 정치적 통제권을 상실했다. 이 결과 군부는 스스로를 “국가의 유일한 합리적 기관”으로 여겼지만, 실제로는 히틀러의 침략정책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었다.

② 동시에 군부는 ‘나치를 이용하고자 했다’는 점도 분명하다.
오닐은 군의 보수적 엘리트들이 처음에 히틀러를 다음과 같이 활용하려 했음을 지적한다.
*공산주의 진압, 베르사유 조약 무력화, 재무장 및 군사력 증강, 국가적 통합과 보수체제 회복
즉, 군부는 히틀러를 자신들의 군사 목적 달성의 촉매로 보았다. 그러나 그 판단은 치명적 오판이었다. 결국
*결론은 다음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군부는 처음에 히틀러를 이용하려 했고, 결과적으로는 히틀러가 군부를 완전히 이용했다.”

4. 오닐이 남긴 경고
오닐의 연구가 준 교훈은 다음과 같다. 군의 비정치성은 전체주의에 악용될 수 있다.
– 정치 불개입은 정치적 책임 회피로 전락할 수 있다. 재무장·예산·위신의 회복은 군을 정치권력에 예속시키는 미끼가 될 수 있다. 전문성만으로 전체주의를 막을 수 없다. 히틀러는 군의 전문성과 충성 맹세를 이용해 그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했다. 군/정 관계의 균형은 제도가 아니라 정신에 의해 지켜진다. 독일군은 제도적으로는 독립된 조직이었지만, 정신적으로는 히틀러에게 종속되었다.

한국군에 주는 교훈

로버트 오닐이 분석한 독일군과 나치당의 관계는 군의 비정치성이라는 미덕조차 정치 환경에 따라 치명적 약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독일군은 “정치 불개입”을 명분으로 히틀러의 권력 장악을 방치했고, 재무장과 조직 확대의 이익을 좇는 순간 스스로 정치권력의 도구가 되었다. 이는 한국군에게 다음의 교훈을 준다.

첫째, 군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되 국가 가치·헌법질서 수호라는 적극적 기준을 가져야 한다. 둘째, 군 조직 이익이나 예산 확대가 군의 판단을 흐려서는 안 된다. 셋째, 지휘구조의 투명성과 문민통제는 장식이 아니라 국가안보의 핵심이며, 군의 침묵이나 방관이 오히려 정치에 이용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고위 장교단의 전략적 통찰·조기 경보 기능은 언제든 약화될 수 있으므로 지성·윤리·전문성이 결합된 리더십을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전 1기갑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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