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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일본의 정치사에 미친 해양의 영향’..英 제독 발라드 “이순신 장군, 넬슨과 대등한 해군지휘관”

<일본의 정치사에 미친 해양의 영향>(The Influence of the Sea on the Political History of Japan)

영국 해군중장 G. A. 발라드(George Alexander Ballard)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1년, 일본 패권주의가 아시아에서 고양되던 시기에 <일본의 정치사에 미친 해양의 영향>(The Influence of the Sea on the Political History of Japan)을 집필하였다.

이 책은 발라드가 1차세계대전 종전 후 급격히 감군되는 과정에서 45년 군 복무기간 동안 문학적 소양은 없지만 반액 봉급을 받는 여가 시간에 해군의 동료들과 친구들의 추천으로 저술활동을 한 결과 탄생한 다소 사연이 많은 저술이다. 스스로 일본의 기록을 원전으로 읽을 수 없는 한계로 역사적 사건에 대하여 다른 사람(제임스 머독)의 기록과 대영제국 도서관의 서지 정보에 의존했다는 한계를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러일전쟁에 이르기까지의 전쟁사를 분석하고 있다. 발라드는 이순신 제독을 넬슨에 비교하여 극찬하고 있다. 하지만 넬슨과는 비교불가다. 충무공은 23전 23승 한번도 패하지 않은 제독이었다. 이러한 그의 평가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도고 헤이하치로의 전승 기념식에서 넬슨과 이순신의 비교에 대한 겸손한 발언에서 충무공의 위대함이 드러나듯이 발라드의 저서는 이순신의 지략을 세계 해전사에 공식적으로 평가 소개한 저술일 것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해양력이 국가 흥망을 결정한다는 마한(Alfred Thayer Mahan)의 “역사에 미친 해양력의 영향”이라는 책에서 밝힌 해양전략 사상에 영향을 받은 후속 연구에 해당하며, 특히 임진왜란 당시의 한·중·일 해상전략을 사례 분석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분석은 조선·명·일본을 동일 문명권 구조로 단순화하고, 용어·명칭·역사적 맥락 파악에서 일부 오류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신중한 검토가 요구된다.

발라드는 임진왜란을 동아시아 해전사에서 해군력의 우위가 국가전략의 성패를 좌우한 대표 사례로 보았으며, 이순신 장군을 “넬슨과 대등한 위대한 해군지휘관”으로 높이 평가하였다는 사실은 주목할만하다.

그가 남긴 평가는 서양 해군전략가가 동양의 영웅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당시의 국제 인식 수준을 고려할 때 매우 높은 관심을 보여준 결과이며, 이는 국제 해군학계가 이순신을 ‘전략사적 보편 가치’로 인정하는 기점이라는 점에서 평가할 수 있다.

발라드 서술의 구조적 오류와 역사 인식의 한계

그러나 발라드의 기술에는 식민지 시대적 인식, 일본 사료 중심 접근, 번역·사료 검증 미흡이라는 한계가 함께 들어 있다.

1) 조선과 한국, 명과 중국을 동일 용어로 표기하는 문제
발라드는 조선을 Korea, 명나라를 China로 기록하며 단순히 현재 지명 기준으로 통칭하였다. 이는 동아시아 전통 왕조체제의 속성, 조공·책봉 관계, 그리고 조선의 문명·국가체제의 상징적 정통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남겼다. 역사학에서는 동일 지리·다른 국가·다른 제도는 반드시 개념적으로 구분해야 하지만, 발라드는 이를 근대 민족국가 관념에 의존하여 설명하는 오류를 범했다.

2) 이순신의 이름 표기 오류 – ‘Yi-Sun’ 또는 ‘I-sun’
명확한 실명 표기의 중요성은 단순 언어 문제를 넘어 역사적 인물 정체성에 관한 학술 윤리이지만, 발라드는 이순신을 ‘이순(I-sun)’으로 표기하며 혼동을 반복하였다. 이는 번역본 사전 검토 부재 및 일본군 기록 의존의 흔적으로 분석된다.

3) 임진왜란 전개와 조선…내부체계의 단선적 설명
발라드는 목차에서 임진왜란의 전개과정을 개념적으로 서술하고 전쟁의 주요 국면을 해전 중심의 전투사적 흐름으로만 설명하며, 조선의 전략문화·관료제·유교 군제·지방군 체계·민병 동원 등의 요소를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그 결과 임진왜란의 총체적 성격, 즉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문명대결의 전쟁이라는 시각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있다.

4) 원균 문제 및 후반기 전황 기술의 불분명
칠천량 해전에서 패배한 장수가 누구인지 이름을 밝히지 못한 점, 한산·명량·노량의 승전 구조, 전투 지휘체계, 수군 재정비 과정의 기술이 단편적·서술적 묘사에 그치며 원균의 책임성은 희석되었다. 칠천량 해전 패배를 두루뭉술하게 표현하고 있고 패배 원인을 적시하지 못했다.

발라드의 임진왜란 평가가 갖는 역사적 의의

다수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발라드의 연구는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서양 해군전략이 동양의 사례를 학술적으로 분석한 최초 시도이며 이순신 리더십·기술혁신·전술혁신을 세계 해군사 비교 틀에 편입하여 분석하였고

판옥선의 특징이나 연안작전에서 기동성과 방향전환의 장점을 거론하지는 못했고 충무공의 총통에 의한 당파전술을 파악하지 못했지만 거북선·기동성·해상보급 차단 전략을 현대 해양통제론 관점에서 해석하였다.

이는 단순한 전투 승패 기록을 넘어 해양력의 작전·전략· 국가존립과의 연계성을 명확히 보여주는 해군 전략 교본으로서 가치가 있다.

오늘의 전략적 함의

발라드의 한계는 제국주의 시대 연구의 구조적 한계에서 기인하지만, 그의 연구는 오히려 동양 해양사 재해석의 필요성과 국제학술 표준화를 촉발한 계기로 보아야 한다. 오늘 대한민국의 해양전략과 원자력 잠수함 보유 필요성을 포함한 국가발전에서의 중요성, 한국 해군이 병력부족과 열악한 근무조건하에서도 해군력을 유지하는 사명감 그리고 림팩 훈련에서 보여준 지략과 저력의 근원과 사명감을 일깨워 주고, 미국의 조선에 대한 조력과 트럼프의 한국 함정 건조능력에 대한 기술력 인정은 조선해양력의 계승, 국방·산업·기술·전략문화 형성에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준다. 충무공 이순신 연구는 단순한 ‘전투의 평가’가 아니라 ‘국가전략의 패러다임 연구’의 일환으로 확산되어야 함을 제시해 준다.

‘명량’은 이순신(1545~1598) 장군이 임진왜란 6년(1597) 단 12척의 배로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공격에 맞선 ‘명량대첩’을 그린 전쟁액션 블록버스터다.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전 1기갑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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