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귀포시 강정동 4573번지, 내가 태어났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어머니는 6년 전까지도 이 집을 지켰다. 사람이 한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 그 생명을 다하고 삶을 마치는 것, 집은 그 순간을 지켜본다. 그때까지 우리 집이다.
그 집을 비워냈다. 어머니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그 삶을 털어내는 작업이다. 70년 전에 발급된 어머니의 도민증, 색 바랜 거래 문서, 털털거리며 잘도 돌아가던 재봉틀, 아직도 재깍거리는 벽시계, 찜통더위를 식혀줬을 선풍기, 아직도 윙윙거리는 냉장고, 툭 치면 이미자의 노랫소리가 들릴 것같은 오래된 라디오, 언제나 기독교방송 채널이 켜져 있던 텔레비전, 아직도 반짝이는 차롱과 곤대구덕이 정겹다. 어머니가 아끼던 장롱과 궤도 주인을 잃었다. 이제는 모두가 필요 없는 물건이 돼버렸다.

평생 농사를 지었던 어머니의 창고엔 농기구들이 줄지어 섰다. 벼나 보리 이삭을 두드리던 덩드렁마께, 알맹이를 가려내던 얼맹이, 곡식을 보관하던 망텡이, 어머니의 지문이 잔뜩 묻혀진 글겡이, 골갱이, 솔박과 푸는 채도 옛 모습 그대로이다. 호렝이도 있다. 우리 집은 원래 초가였다. 초가는 2~3년에 한번씩 지붕을 갈아주는데 지붕을 단단하게 엮어주는 줄을 만들 때 쓰는 도구가 호렝이다. 가난을 이겨내려던 어머니의 고통과 절망, 고생의 생애를 보는 것 같아 울컥했다.

어머니와 공원묘지에서 이별했다고 생각했는데, 집을 정리하면서 또 다른 추억과 새로운 기억을 만난다. 세상 인연이 질기고도 정겹다. 전화기, 늘 떨어져 살던 모자간의 소통 도구였다. 전화? 나와 어머니의 통화는 얼마나 잦았고 정겨웠을까, 아니다, 통화는 뜸했고 내용도 사무적이었던 기억밖에 없다. 불효이다. 살아계실 때 더 통화하고, 더 찾아뵙고, 최선을 다해 모시라는 어느 선배님의 말씀이 새삼 새롭다. 늦었다. 후회가 밀려온다. 다음 주엔 전화번호를 반납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