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1호 법정. 오전 10시. 사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판사가 들어왔다. 안경 너머로 법대 위의 서류를 훑는 그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신청인 측, 주장을 요약해 주십시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신현확은 고등문관시험에 합격, 도쿄의 상공성 사무관 시보로 발령받아 1년간 실무 수습을 했습니다. 그 과정이 끝난 뒤 군수성 관리관으로 정식 발령이 나자 당일 병가를 내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신현확은 고향에서 숨어 지내다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순간 판사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물었다.
“시보로 지냈다는 것은 일을 배우는 수습 과정이지, 결재권을 행사하거나 행정을 실행한 것이 아니라는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신현확은 일본 정부에 봉직하지 않았습니다. 잘나갈 수 있는 직위를 뿌리치고 낙향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친일파인가 하는 논리입니다.”
순간 판사의 고개가 미세하게 좌우로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입증 계획은 어떻습니까?” 판사가 물었다.
“신현확 본인 생존 시 <월간조선>과의 인터뷰 기사가 있습니다.”
판사가 이번에는 민족문제연구소 측에서 나온 사람을 향해 물었다.
“피신청인 측의 주장 요지는 무엇입니까?”
연구소 측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판장님, 신현확은 당시 사무관 시보에서 일본 군수성의 군수관리관으로 승진했습니다. 태평양전쟁의 와중에 승진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일본을 위해 공을 세웠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월간조선>의 인터뷰 내용은 일방적인 변명에 불과합니다.”
논리가 명확했다. 그가 덧붙였다. “친일인명사전의 발간은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한 것입니다. 그 사업의 발목을 잡는 이 가처분 신청을 기각해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판사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판사의 마음이 기울어져 있는 게 아닐까. 친일파 청산의 당위성은 모든 사람의 머리에 각인되어 있는 사실이 아닐까. 판사는 한 개인의 사정보다 공적인 명분 쪽으로 치우쳐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변호사의 입장이 아니라 판사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신청인 측, 추가로 다른 증거는 없습니까?” 판사는 바로 심리를 끝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시간을 주십시오.” 판사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가처분 사건을 오래 끌 수 없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일본에 있는 자료들을 찾아야 하니까요. 이 사건은 고인의 명예뿐만 아니라 후손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판사는 잠시 고민하는 눈치였다.
“2주 정도면 충분하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일단 아들 신철식의 입장을 대변했지만, 변호사가 아닌 한 개인으로서 나도 의문이 일었다. 신현확, 그는 당시 이십대 청년이었다. 고시에 합격하고 일본의 심장인 도쿄에서 고위 관료가 되는 단단한 레일 위에 올랐다. 출세가 보장된 인생이었다. 그런 그가 부임을 거절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해방이 될 때까지 숨어 있었다? 왜? 무엇을 위해서? 그는 독립운동가는 아니었다. 납득이 되지 않았다.
잠시 후 나는 신철식과 법원 앞 커피숍에서 마주 앉아 있었다.
“어떤 증거가 있을까?” 내가 말했다. 이미 60년 전의 일이었다. 근무지를 이탈해서 고향에 숨어 있었다고 해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죽었을 것이다.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나는 우리 아버지를 믿어. 고향에 내려가 한 집 한 집 뒤져서라도 우리 아버지를 안다는 사람들을 찾아볼 거야.” 신철식이 고향 왜관으로 내려갔다. 나는 수시로 그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 노인정 세 곳을 다녔어. 아무도 기억을 못 해.”
이틀 후. “한 분이 기억한대. 하지만 너무 어렸을 때라 확실하지 않대.”
“진술서라도 받아둬.”
사흘 후. “한 분을 찾았어. 아버지를 분명히 봤대. 해방되기 바로 전, 왜관 시장에서.”
“확실해?”
“당시 스무 살이었대. 또렷이 기억한대.”
“증인으로 나올 수 있대?”
“법정에 가겠대.”
일주일이 지났다.
“다섯 명을 찾았어!” 신철식의 목소리가 떨렸다.
“다들 아버지를 봤대. 왜관에서, 1945년 여름에. 평복 차림으로 시장에 다니시는 걸 봤대.”
“좋아. 진술서 다 받아.”
나는 희망을 느꼈다. 다섯 명의 증인. 그것도 직접 목격한 사람들. 신현확이 근무지에 가지 않은 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불안했다. 판사가 그걸 믿어 줄까. 2주 후 재판이 다시 열렸다. 나는 대구 거주 이모씨의 진술서를 제출했다. “1945년 여름, 신현확이 왜관에 숨어 지내던 것을 목격했다는 친척의 증언입니다.”
판사가 내가 제출한 진술서들을 훑어보았다. 상대방 측의 말이 튀어나왔다. “재판장님, 그 진술서들은 모두 이해관계인들입니다. 친척이거나 같은 마을 사람들이죠. 60년이 지난 기억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습니까? 짜맞춘, 신빙성이 없는 증거들로 보입니다.”
판사가 나를 똑바로 봤다. “제가 원하는 건 공문서입니다. 일본 경찰의 수배 기록, 조선총독부의 공문, 군수성의 공식 문서. 제3자가 작성한 객관적이고 검증 가능한 문서 말입니다. 그런 게 있습니까?”
“그건…”
“없으면 찾아오십시오.” 상대방 측에서 말했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지체하지 않기 위해 지금 우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수십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일본 정부의 문서들을 찾고 있습니다. 저희 측에서 군수관리관으로 승진했다는 명령서를 곧 찾아 제출하겠습니다.”
링 위에 대신 오른 나는 상대방의 강한 펀치를 연달아 얻어맞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