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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APEC 경주, 천년 고도에서 언론의 참역할 묻는다

APEC 개막 앞두고 운영 시작한 국제미디어센터 <사진=연합뉴스>

그저께 (10월 25일)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다섯 해 동안 한국에서 특파원으로 활약하다 귀국한 중국의 유력 매체 기자였다. 그는 이번 APEC 정상회의를 취재하기 위해 7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고 했다.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는 서울에 들를 여유조차 없다고 했다. 대신 짧은 통화 속에서 “이번 경주 회의가 중·미 관계의 긴장을 완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기자이기 이전에 한국인으로서 국익을 우선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저널리즘은 언제나 더 큰 대의와 공동체의 이익을 향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필자가 아시아기자협회를 창립하고, 오늘까지 아시아엔을 발행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경주 APEC은 세계가 복잡한 위기 속에 놓인 시점에서 열린다. 미국의 관세 압박, 중동의 불안,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그리고 중국과 북한의 밀착 움직임까지…전세계 수많은 시선이 한국 경주로 향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다카이치 사나에 새 총리가 취임 후 첫 국제무대에 나서고, 시진핑 주석은 주요국 정상들과 개별 회담을 조율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의 회담에 강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국내 미디어는 물론 외신들의 주요 관심사다.

이처럼 미·중·일·북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이번 회의는 단순한 지역경제 논의를 넘어 동북아 안보지형을 가늠하는 무대가 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번 회의의 본래 목적이 아시아를 넘어선 인류가 직면해 있는 과제와 그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때 기자는 단순히 ‘누가 누구를 만나는가’보다 ‘무엇을 위해 만나고 어떤 대안을 내놓는가’를 기록해야 할 사명이 있다. 이면의 맥락을 읽어내는 힘, 그것이 저널리즘의 본령이다.

이번 회의에는 중국 CCTV와 영국 BBC를 비롯해 주요 외신들이 대규모 취재진을 파견했다. 미국, 일본, 나아가 중동 언론의 관심도 뜨겁다. 이런 때일수록 각국 기자들이 객관성과 균형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 가짜뉴스나 ‘아니면 말고’식 보도가 국제 여론을 왜곡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엄격히 다스려야 한다.

한국 언론 역시 이번 APEC을 통해 국제행사 취재의 모범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신문과 방송 등 전통 매체는 공적 책임을 지닌 만큼 깊이 있는 해설과 검증으로 응답해야 한다. 동시에 온라인 매체, 유튜브, SNS가 가진 즉시성과 접근성도 살려 새로운 소통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에 근거한 품격 있는 보도, 그리고 서로 다른 매체 간 협력과 연대가 이번 회의를 계기로 한 단계 성숙하길 바란다.

기자는 단순한 정보 전달자가 아니라, 진실을 향한 ‘조정자’이자 ‘해석자’여야 한다. 국가 간 이해가 충돌하는 국제무대일수록 언론은 이해관계가 아니라 사실의 편에 서야 한다. 이번 APEC이 다루는 의제는 경제 격차, 기후 위기, 인공지능 윤리, 청년세대의 미래 등 인류 공동의 과제다. 이런 논의들이 단발적 회의로 끝나지 않도록, 언론의 정직한 기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취재 경쟁이 치열할수록 우리 안의 윤리 나침반은 더욱 분명해야 한다. 한 줄의 헤드라인, 한 장의 사진, 한 문장의 자막이 때로는 국제 여론을 바꾼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번 경주 APEC은 언론인들에게 단순한 취재 현장이 아니라, 저널리즘의 미래를 시험하는 무대가 될 수도 있다. 경주의 고도(古都)는 천 년 전 신라가 세계와 교류하던 흔적을 마주하고 있다. 그 발자취 위에서 오늘의 기자들도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의 가능성을 찾길 바란다.

언론은 시대의 거울이자 나침반이다. 이번 경주 APEC이 그 방향을 다시 정립하는 계기가 되기를,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하는 모든 기자들이 진실과 책임의 길 위에서 다시 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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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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