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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식 칼럼] 신질서의 문 앞에서 흔들리는 한국…”전략 잃은 국가는 방향을 잃는다”

세계는 지금 거대한 체제 전환의 한가운데 있다. 미중 전략경쟁은 단순한 국가 간 갈등을 넘어 문명 간 경쟁으로 확장되었고, 글로벌 공급망은 안보 기반 경제체제로 재편되고 있다. 미국은 세계 전략을 “힘에 의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로 회복시키며 가치 동맹, 기술 연대, 산업 동맹이라는 3중 전략을 통해 신보수주의 노선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의 주요 7개국(G7)과 일본은 이미 미국의 전략 질서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했고, 프랑스와 영국도 동조할 수밖에 없음을 자인했다. 인도와 동남아는 탈중국 전략을 통해 새로운 전략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인도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관계 개선이 쉽지 않으며,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해 전쟁비용 조달의 원천(sinew of war)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이 거대한 흐름은 대한민국에 역사적 기회의 창이다. 반도체, 인공지능, 우주, 방산, 에너지 공급망, 해양 전략 등에서 한국은 전략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미동맹은 군사 협력을 넘어 핵억제·경제안보·기술동맹으로 격상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맞고 있다. 지금이 바로 한국이 중견국을 넘어 전략국가로 도약할 시점이다.

그러나 이 기회는 빠르게 닫히고 있다. 문제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다. 실현 가능한 비전과 이를 실행할 리더십, 그리고 새로운 국가 전략의 부재로 한국은 스스로 기회를 위기로 바꾸고 있다.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방향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지도자는 대상과 장소의 격에 맞지 않는 발언으로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잘못된 자리에서 잘못된 메시지를 내면서 국정의 품격과 방향성을 동시에 잃고 있다.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각) 뉴욕 제이에프케이(JFK)공항에서 차지훈 주유엔대사와 악수하고 있다. 차지훈 대사는 사법시험 28회, 사법연수원 18기 출신으로, 이재명 대통령과 연수원 동기다. 외교무대 경험이 전무한 채로 다자외교의 중심축인 유엔대사로 임명돼 논란이 되고 있다. 연합뉴스

외교 실종과 전략 부재
이재명 정권 출범 4개월 반은 외교 붕괴의 시간이었다. 전 정부의 주요 공관장을 조기 소환하고 대사 자리를 장기간 비운 것은 국가 외교 체계를 마비시킨 외교 공백 사태였다. 외교는 정권의 것이 아니라 국가 생존의 시스템이다. 외교의 연속성을 끊고 보은·정치 인사로 채우는 행태는 외교를 포기한 것이며, 직업외교관의 사기와 전문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산업·경제·정치·외교 전 영역에서 중국 의존도가 확대되는 것도 문제다. 반도체와 배터리 핵심 소재의 중국 의존, 외교 현안에서의 중국 눈치 보기, 국가 전략 문서에서 가치 동맹 개념 삭제 등은 모두 체제 침식의 징후다. 중국의 은밀한 초한전은 법률, 여론, 심리전을 활용한 간접 접근 전략이다. 한국은 이미 그 초기 단계에 들어섰다. 최근 중국 운전면허증으로 한국 내 운전을 허용한 조치는 상호주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정부가 중국만 예외로 두는 것은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략의 왜곡이다.

국가 원리를 무너뜨리는 권력의 위험
오늘 대한민국의 가장 근본적인 위기는 체제의 위기다. 삼권분립, 법치, 공정경쟁이라는 헌정 질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국회가 사법부를 압박하고 대법원 판결을 흔드는 가운데, 특별검사 남발과 입법 폭주로 선출 권력이 사법을 지배하려는 시도까지 이어지고 있다. 헌법 질서를 수호해야 할 국회가 오히려 헌법을 공격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해밀턴은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에서 “입법권은 독재로 향하는 가장 위험한 권력”이라고 경고했고, 칼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전체주의는 언제나 법치를 무너뜨리는 순간 태어난다”고 말했다. 법치 없는 민주주의는 독재로 전락하며, 절차가 무너지면 자유는 사라지고, 견제가 사라지면 권력은 폭주한다.

대한민국은 전략을 회복해야 한다
이 정권의 위기는 곧 전략 부재의 위기다. 비전이 없고, 국가 목표가 불분명하며, 정책 메시지는 공감과 설득력을 잃었다. 대통령의 발언은 즉흥이 아니라 전략소통 비서관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 국정을 이끌 철학이 없으면 인사는 혼선을 빚고, 정책은 표류하며, 무능은 전략 부재의 필연적 결과로 이어진다.

대한민국은 국가 전략 재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1. 국가 목표 재정립 – 전략국가 도약 선언과 기술·해양·우주·안보의 대전략 수립
2. 동맹 구조 재편 – 한미 핵·경제동맹의 구조화 및 미·일 전략 연계 강화
3. 반중 전략화 – 공급망 자립, 기술주권 확보, 경제안보 체계 전환
4. 국정 인재 체계 재건 – 보은·충성 인사에서 전략 인재 시스템으로 전환
5. 법치 회복 – 삼권분립 수호, 헌정 파괴 입법 저지, 절차적 민주주의 복원

정권은 유한하지만 국가는 영원하다. 지금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은 어디로 향하는가.” 한 국가를 떠받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국가 원리와 전략, 리더십, 그리고 국민의 방향성이다. 국가가 위기를 극복한 힘은 언제나 하나였다. 바로 국가 전략이다. 전략 없는 권력은 나라를 무너뜨리지만, 전략을 가진 국민은 어떤 위기도 이길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국가 정신을 다시 세우고, 대한민국의 전략을 재정립해야 할 시간이다.

일부에서는 “미국의 패권이 저물고 있으니 이제 중국과 함께 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현실을 오해한 인식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30년간 미국이 골병들었다”고 지적하며 내부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다. 민주당의 시각에서 보면 트럼프조차 내란의 주동자일지 모르지만, 미국은 자유주의와 법치, 그리고 전통적 가치 질서를 복원해 국가를 재정비 중이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토대로 견제와 균형을 통해 권력을 분산시키는 제도이며, 반드시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를 따라야 한다.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전 1기갑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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