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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나림생태공원에서] “이병주 선생님, 지리산 명품정원 한번 들러주소서”

운무를 배경으로 피어난 코스모스 <사진 여류 이병철>

숲마루재에서 맞은 편의 작은 고개 하나를 넘으면 10분 남짓한 거리에 기차역이 있다. 내가 농담 삼아 이 역의 크기가 서울역 다음이라고 할 정도로, 시골 기차역으로서는 역사(驛舍)의 규모가 상당하다. 원래 이 역은 KTX 역사로 만들어졌지만, 갈수록 줄어드는 지역 인구수 때문인지 이용하는 이들이 적어 1년만에 그냥 통과역이 되고 말았다. 일반역으로 강등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집 가까이 이런 멋진 기차역을 두고도 사실 이 역을 이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 역이 KTX 개통에 따라 새로 지어지고 나서 KTX는 한 번도 타보지 못했는데도 그만 통과역이 되어버린 바람에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에, 이 역에서 무궁화호 열차편으로 목포까지, 그리고 포항까지 한 차례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 뒤로는 열차를 이용할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이번에 문득 가을 속 열차여행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제 이 역에서 50분 정도면 갈 수 있다는 북천역까지 기차여행에 나섰다. 북천에서 아직 코스모스 축제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기차로 갈 수 있는 것은 하루에 두 차례인데,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뿐이다. 오전 8시경에 출발하는 첫차를 타고 9시쯤 북천역에 도착했다. 돌아오는 차편은 오후 4시경으로, 그 밖에 다른 차편은 없다.

북천역에 도착하니 코스모스축제 현장이 바로 역 옆에 있었다. 아침부터 하늘이 잔뜩 흐르더니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조금 지나 다행히 웃비가 멎었다. 잦은 가을비 때문인가, 축제장의 코스모스도 거의 다 저버렸다. 조성된 코스모스 꽃밭의 규모도 크지 않고 다른 볼거리도 거의 없어 조금 허망한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이 축제는 지역 사람들이 여러 해 동안 애써 이어온 것이라 하니 나름의 의미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스모스는 내가 어릴 때 가장 흔히 보던 가을꽃이었다. 외래종이 분명한 이 코스모스가 언제부터 이 땅의 가을꽃으로 자리매김해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초등학교 때 십오 리의 통학길을 걸어 오갈 때 그 신작로 따라 코스모스가 피어 있었다. 아마 그때는 누가 씨를 따로 뿌리거나 가꾸지는 않았을 터인데도, 해마다 가을 들머리에서부터 들녘에 나락이 누렇게 익을 때까지 코스모스가 높아지는 가을 하늘 아래 하늘하늘 피어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허기졌지만, 길가에 핀 코스모스 꽃잎을 한 장씩 엇갈리게 딴 다음 궁중에 빙 돌려 날리면 바람개비처럼 날아내리는 재미로 배고픔을 잊곤 했다.

그처럼 흔했던 코스모스 꽃이 지금은 길가에서도 거의 사라지고, 이런 축제 현장에서나 구경하는 꽃이 되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코스모스가 사라지게 된 까닭이 무엇일까. 기후변화 탓인지, 아니면 다른 식물이나 꽃들 때문에 절로 도태된 것인지는 나로선 알 수 없다.

마침 코스모스 축제장 뒷산에 내려온 운무를 배경으로 남아 있는 코스모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내 눈에는 운무가 내려앉은 뒷산의 모습이 흡사 젊은 날 한참 헤매고 다녔던 저 히말라야 설산처럼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그리움이 되살아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1시간이면 충분히 다 둘러보고도 남는 시간이라, 돌아갈 기차편을 탈 때까지 꼼짝없이 오후 4시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것 또한 만만한 일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보니 마침 그곳이 ‘나림(那林) 이병주 선생’의 출생지라는 안내 표지판이 보였다. 역 가까이에 이병주 선생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나림생태공원’이 있고, 거기서 오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선생의 문학관이 있다는 것이다. 문학관은 월요일 휴관이라 방문을 포기하고, 폐교가 된 근처 북천중학교 자리에 최근 조성된 나림생태공원에 들렀다.

이병주 선생의 호 ‘나림(那林)’은 ‘어떤 숲’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선생이 왜 이런 뜻을 자신의 호로 삼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리산 자락의 ‘어떤 숲’을 그리셨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병주 선생의 <지리산>을 읽은 때가 언제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7권으로 된 대하소설 <지리산>을 읽으며 가슴이 뜨거웠던 기억이 난다. 또 선생의 소설 <바람과 구름과 비>도 아주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도 아마 밤새워 읽었으리라 싶다.

선생의 <지리산>과 비슷한 맥락으로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이 나온 것은 그 몇 해 뒤였던 것 같은데, 두 책을 읽은 느낌은 내게 많이 달랐다. 나는 생전에 나림 이병주 선생과 직접적인 인연은 없지만, 책을 통해 접한 선생의 느낌은 지리산 자락 고택의 올곧은 선비 같은 그런 이미지로 남아 있다. 나림생태공원에 있는 안내 표지판의 내용이다.

‘지리산의 어떤 숲’
이곳은 1971년 개교하여 1972년 북천중학교로 인가받았다가 2016년 한다사중학교와 통폐합되며 폐교된 부지를 2024년 생태공원 및 체험 공간으로 재조성했다. 하동군 북천면은 소설가 이병주(1921~1992)가 나고 자란 고향이다. 이병주는 대하소설 <지리산>, <관부연락선> 등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사실적으로 작품화한 소설가이다. 이병주의 호 ‘나림’은 ‘어떤 숲’을 의미한다. 이병주의 고향인 이곳에 지리산의 아름다움을 담아 ‘지리산의 어떤 숲’을 조성했다. 이병주는 소설에서 자신의 고향인 하동과 북천면을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산촌 마을로 표현하면서도 언제나 그리운 곳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처럼 쓰고 있으면 무미건조할 뿐이고 사실 그러한데, 어째서 고향이 그토록 그리운지 모를 일이다. 들판을 누비는 길, 산을 기어오르는 오솔길, 병풍처럼 둘러친 산의 능선, 아니 풀 한 포기, 돌 하나까지 안타까우리만큼 그리운 것이다.”
-이병주 에세이 ‘지리산 남쪽에 펼쳐진 섬진강 포구’

추신. 나림 이병주 선생께.
지금 하동은 녹차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평범한 산촌 마을에 지리산의 아름다움을 담은 명품 정원을 만들었으니, 한 번 들러주시기 바랍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7시간 동안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다가 오후 4시 기차편으로 돌아오니, 5시. 어느새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서둘 것 없는 이런 나들이 또한 새로운 경험이다. 이번 여행에서 코스모스 꽃 구경 못지 않게 나림 이병주 선생의 고향을 만났다는 것이 내게는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언제 <지리산>을 다시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니 주변이 온통 달고 깊은 향기로 그윽하다. 숲마루재의 은목서가 온 나무 가득 하얗게 피어났는데, 그 향기가 온 사방에 퍼지고 있다. 이번 가을도 이렇게 깊어가나 보다.

이병철

시인, 생명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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