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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순의 아무르 답사⑪] 한반도역사의 교차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러시아제국 함대

범선과 군함의 조화,블라디크 항만의 오후

오늘은 블라디보스토크 일정 중에 지정학적으로 매우 의미있는 장소를 방문하게 된다. ‘러시아 태평양함대사령부와 함대의 기지인 블라디보스토크 군항 주변을 탐방하는 일정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195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초까지는 중요한 군사기지로 도시 전체가 외국인이 엄격히 출입금지된 폐쇄도시였다. 그러나 1991년 소련연방의 해체로 이 제한이 풀어져, 지금은 외국인이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다.

졸로토이 대교 및 군항과 함대사령부

금각만(골든 혼, Golden Horn)을 가로지르는 졸로토이 대교를 좌측에 두고 함대사령부 건물과 군항이 위치한다. 평화로운 군항에는 대형함정들이 여러 척 입항하여 도크에 대기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군항과 함대사령부 건물 부근 스베트란스카야 거리를 민간인이 자유롭게 걷거나 접근할 수 있었다. 가까운 거리에 잠수함박물관과 군사영웅기념 부조물이 있어 더욱 흥미를 자극한다.

​남북 분단 상황에서 극히 폐쇄적으로 군대를 경험한 한국인으로서는 상당히 신선한 느낌이었다. 아마도 항만건설 초기부터 군항과 민간항으로의 기능이 복합적으로 발전해 왔으며, 항만 자체가 비좁아 민군을 완전히 분리할 수 있는 공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행객들에게는 군항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장소였다.

거리에 인접한 군항과 산책 및 드라이브용 거리 <사진 이택순>

러시아 태평양함대는 구한말부터 격동기마다 등장하는 중요한 군사요소였다. 그것은 1896년 아관파천, 1904년 러일전쟁, 그리고 1945년 해방 후 분단 상황에서 결정적으로 우리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1896년 고종이 덕수궁 옆 러시아공사관으로 피난할 때(아관파천)러시아 태평양함대 소속 해군 100명이 1년간 공사관을 경비하며 일본의 압력을 방어했다. 러시아의 조선에 대한 영향력이 확대되었고, 고려인(연해주로 이주한 한인) 50여 명이 러시아 통역과 수행원으로 입국했다. 이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친러파가 내각에 입각하며 일본과의 대립과 긴장이 높아진다.

전쟁에서 죽은 군인을 기리는 기념 부조물 앞에 선 필자

러시아와 일본 간 긴장의 확대는 결국 1904년 2월 9일 한반도와 만주를 둘러싸고 전쟁(러일전쟁)이 벌어진다. 그 첫 전투가 조선의 항구 제물포에서 해전으로 시작되었다. 일본해군의 영웅 도고 헤이하치로(1848-1934)가 지휘하는 일본의 함대 14척이 인천에 정박해 있던 러시아 태평양함대 순양함 바랴그’호와 포함 ‘카레이츠’호를 기습공격한 것이다. 러시아 제독 루드네프(1855-1913)는 일본에 항복을 거부하고, 자폭을 택하며 33명이 전사하고 190명의 부상자가 발생한다.

​전쟁은 러시아가 조차한 중국 뤼순(여순)항과 만주로 확대되며 러시아는 예상 외로 패배한다. 미국의 중재로 포스머스조약을 체결하고 러시아는 조선에서 발을 빼며 조선(대한제국)은 일본의 독점적 영향권으로 전락한다. 이어서 외교권을 빼앗기고 질곡과 암흑 속에서 일본의 식민지로 35년간을 보내야 하는 처절한 시련이 찾아왔다.

​1945년 8월 8일 2차대전이 끝날 무렵 소련이 기습적으로 일본에 선전포고(대일선전포고) 한다. 조선반도 진격작전으로 소련 태평양함대가 동해안 경흥군 웅기항과 청진항의 일본군을 포격하며 8월 11일 점령한다. 이어서 소련군이 함흥과 원산으로 남하하며 동해안으로 진출하여 38도선으로 남북이 분단되는 사태가 전개되고, 5년 뒤 남북한 전쟁으로 이어진다.

잠수함박물관 , 퇴역한 잠수함의 부활 <사진 이택순>

오늘 블라디보스크에서 한국역사와 깊은 연관성이 서려있는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실체를 직접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매우 착잡하면서도 분출하는 역사적 상념을 막을 수 없다. 러시아제국은 시베리아 공략이 마무리될 무렵 1731년 북태평양 오호츠크 해에 러시아 태평양 소함대를 창설했다. 1850년에는 아무르강 연안을 무혈점령하며 아무르강 하구인 니콜라옙스크-나아무레 항에 해군기지를 설치하고 오호츠크 전대(소함대)라 불렀다.​

동시베리아 총독 무라비요프의 결단으로 부동항을 찾아 남하한 러시아는 1860년 7월 2일 아므르만에서 천혜의 항구 금각만을 발견한다. 오호츠크 전대 소속 알렉세이 키틸로비치 세프네르 해군중위는 수송선 만주르 호에서 블라디크 해변으로 상륙했다.​

러시아 주력함대인 발틱함대의 군함들이 1871년부터 아프리카를 돌아 기후가 따듯한 이곳으로 전개를 한다. 이들을 블라디보스토크 소함대(시베리아 함대)라 부르며 태평양함대의 주력이 된다. 고려인(구한말 함경도에서 이주한 한인)이 1863년부터 연해주 남부에 이주하기 시작하여 1871년에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진출한다.

시기상 군항건설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게 되었다. 부족한 노동력을 고려인이 공급했다. 고려인의 피와 땀으로 블라디보스토크 항만과 해군기지가 건설되었다. 그리고 조선의 망국을 즈음하여 1905년부터는 망명지사들과 독립투사들이 이 도시를 찾아든다. 그들이 국권회복의 꿈과 독립의 뜻을 펼치면서 해외 독립운동의 주요 거점이 된다.

​동아시아 역사에 격랑을 일으키며 러시아 태평양함대는 태평양으로 진출했다.

알렉산드르 2세 황제는 명령했다. “개척하라, 동방을!”(블라디츠, 보스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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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순

전 경찰청장, '이택순의 실크로드 도전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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