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화(老化)와 노쇠(老衰)는 비슷한 뉘앙스를 지니지만, 의미와 개념은 다르다. 노화(aging)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물의 신체 기능이 점차 퇴화하는 현상을 말하며, 육체적·정신적·사회적 변화를 동반한다. 반면 노쇠(frailty)는 노화 과정에서 신체·생리·인지 기능이 저하되어 장애나 질병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 취약한 상태를 의미한다. 노쇠는 예방할 수 있지만, 노화 자체를 피할 수는 없다.
노화는 나이가 들며 나타나는 정상적인 변화로, 모든 신체 영역에서 서서히 진행된다. 정상적인 노화 과정에서는 각 기관의 항상성 유지 능력이 점차 감소한다. 이에 비해 노쇠는 나이와 무관하게 생리적 항상성이 급격히 떨어져 작은 스트레스에도 쉽게 질병이 생기고 일상생활이 어려울 만큼 기능이 저하되는 상태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약 50%는 노쇠 전 단계, 10% 정도는 이미 노쇠 상태에 있다. 보통 노쇠는 7075세 전후에 나타나지만, 최근에는 4050대에서도 발생한다. 노쇠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가족 부양 부담과 요양시설 입소로 이어져 사회적 의료·돌봄 지출을 증가시킨다. 균형 잡힌 영양 섭취와 규칙적인 근력 운동이 핵심 예방책이며, 일본은 1978년부터 ‘건강 일본 21’ 프로젝트를 통해 국가 차원에서 노쇠 방지에 나섰다.
안티에이징(anti-aging), 웰에이징(well-aging), 석세스풀 에이징(successful aging) 등 다양한 개념이 주목받는 가운데, 최근 새롭게 부상한 화두가 ‘저속 노화(slow aging)’다. 이는 노화의 속도를 늦춰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것을 뜻하며, 식생활·운동 등 노화를 완화할 수 있는 전반적인 방법을 포함한다.
저속노화는 단순히 나이를 거스르는 데 그치지 않고,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영위하면서 질병을 예방하고 노화 속도를 늦추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담는다.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핵심은 식단 관리다. 전문가들은 “항산화 성분이 풍부한 식품을 꾸준히 섭취하면 세포 손상을 줄이고 노화 속도를 늦출 수 있다”면서, “식단 개선은 현재와 미래의 건강 문제를 예방하는 강력한 수단”이라고 강조한다.
미국정신의학회는 출생일부터 사망일까지의 연혁을 ‘연대기적 나이’로 정의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장년 이전의 변화는 발달로, 장년 이후의 신체 기능 저하는 노화로 구분한다.
노화를 부정적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지만, 장점도 있다. 예를 들어 ▲일찍 기상: 나이가 들수록 수면 패턴이 바뀌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편두통 감소 ▲인간관계 개선 ▲여유 있는 성격 ▲스트레스 관리 능력 향상 등이 있다. 미국심리학회 조사에 따르면 노인 10명 중 9명은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고 있었다.
최근 미국 연구에서는 간 등 내장 조직의 노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시기가 34세, 60세, 74세임이 밝혀졌다. 적절한 운동은 노화 방지에 효과적이지만, 과도하면 활성산소가 증가해 오히려 노화를 촉진할 수 있다. 또 나이를 잊고 젊게 생활하는 것은 노화를 늦추지만, 외로움을 자주 느끼면 노화를 앞당긴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직을 내려놓고 2025년 7월 서울시 초대 건강총괄관이 된 정희원 박사(40)는 “서울시는 재정이 넉넉하고 조직이 빠르다”며 “저속 노화를 ‘고속’으로 정책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서울대 의대·대학원(의학 석사)과 KAIST 이학 박사 과정을 마친 의사-과학자(MD-PhD)다.
정 박사는 2023년부터 언론 활동을 통해 저속노화의 필요성과 방법을 강조해 왔다. 2024년부터 그의 생각이 확산되면서 저속노화 열풍이 본격화됐다.
건강관리가 중요한 이유는 젊어서의 부주의가 누적되어 노년기에 큰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이는 노년기뿐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고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20~30년 후에는 적절한 돌봄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
식생활 관리의 핵심은 혈당 스파이크를 유발하는 음식(정제 탄수화물, 단순당, 초가공식품)을 피하는 것이다. 젊을 때는 정제 탄수화물을 줄이고 잡곡밥을, 노년에는 충분한 단백질 섭취와 부드러운 백미 위주의 식사를 권장한다.
운동은 젊을 때는 유산소와 근력 운동을 병행하고, 노년에는 특히 근력 운동이 필수다.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므로 반드시 신체 활동을 유지해야 한다.
수면은 하루 7~8시간 숙면이 바람직하다. 자기 전 전자기기 사용과 카페인 섭취를 줄이고, 규칙적인 생활과 적당한 운동을 통해 수면 질을 높인다.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신체·사회·두뇌 활동이 모두 중요하다. 노년에도 적절한 일을 하며, 건강검진에서 부족한 영양소는 식품을 통해 보충하는 것이 좋다.
최근 유통업계에서는 MZ세대 중심의 자극적인 음식 유행에서 벗어나 저속노화 식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음료와 주류 업계에서도 당류를 줄이는 ‘제로 마케팅’이 확산 중이다.
저속노화 식단은 설탕, 정제 곡물, 붉은 고기, 튀김류, 버터, 마가린, 치즈 등을 줄이고, 푸른 잎채소, 통곡물, 콩류, 견과류, 블루베리 등 베리류를 늘리는 것을 권장한다.
노화는 숫자 나이보다 생물학적 나이, 즉 신체 나이가 더 중요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5년 ‘내재 역량(intrinsic capacity)’ 개념을 제시하며 건강한 노화를 평가했다. 이를 욕조의 물에 비유하면, 물이 가득 찬 상태는 건강하고, 마개가 열리면 물이 빠져나간다. 저속노화의 목표는 물이 빠지는 속도를 늦추고 가능한 오래 유지하는 것이다. ‘건강한 나이 듦’은 질병 유무뿐 아니라 삶의 다양한 요소를 함께 고려해야 하며, 존엄과 자율성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