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3년 6월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 날이었다.함경도 경원에 살던 상놈 양응범은 새 세상으로 가서 살자고 가족들을 타일렀다. 울상 짓는 아내를 달래며 보리쌀과 호미, 그릇 몇 개를 짐 보따리에 쌌다. 어두운 밤, 칭얼대는 아이들을 업고 감시하는 눈을 피해 출발했다. 동행을 약속한 무산 출신 최운보의 가족을 두만강가 풀숲에서 만났다.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강가에 감추어놓은 뗏목을 타고 물살이 약한 곳을 찾아 조심조심 강을 건넜다. 청나라 땅 훈춘을 지나, 몇 날을 걸었는지 수백 리 길, 기억조차 희미하다.
하루 한두 끼 주먹밥을 간신히 먹었다. 호랑이가 포효하는 산을 넘고, 늑대가 울부짖는 숲을 돌아왔다. 아라사(러시아) 군의 초소가 저 산 너머로 어느 곳에 있을 것이다. 애타게 그리던 새 땅에 도착했다. 아라사의 광활한 대지, 연해주(프리모르스키)였다.

십여년 전부터 고향사람끼리 여름이면 몰래 들어와 농사짓고 짐승을 잡던 땅이다. 눈을 들어 사방을 바라본다. 나지막한 언덕 사이에 수목이 울창하게 둘러싸고 있다. 이글거리는 해가 저기 걸려 있으니 남쪽 고향땅이 거기로구나!
동해바다가 가깝다고 하지만, 널찍한 동쪽으로 뻗어나간 풀밭은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눈앞에는 큰 개울(티진헤 강,지신허의 어원) 맑은 물이 조용히 흘러내려 간다. 다시 봐도 사람의 그림자는 찾을 수가 없구나! 배고픔에 찌들려, 양반들에게 모멸당하고 아전 나리들에게 쥐어뜯기던 내 고향 함경도 경흥과는 천지차이구나! 정녕 이곳이 신천지 아라사 땅, 연해주인가! (함경도 유민 양응범의 조선탈출기, 이택순의 현지답사에서)
우리는 함경도의 조선인들이 1863년 최초로 정착한 고려인 마을, 지신허(地信墟, 러시아어, 비노그라드노예)를 찾았다. 중국 훈춘 국경으로 가는 길, 크라스키노행 도로에서 포시예트 항구를 지나 갈라지는 길이다.
서쪽으로 농로 길을 10여 분 차로 이동하면 철조망과 차단 초소가 나타난다. 중국 국경이 가까워 민간인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우리는 사전에 지신허마을 의 유일한 거주자인 러시아인의 허락이 있어 통과할 수 있었다.

다시 차에서 내려 10여 분 숲길을 걸어가면 농촌주택과 멀리 언덕에 기념비 하나가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조선인 양응범과 최운보의 일행, 13가구 60여 명이 발길을 멈춰 집을 짓고 개척을 시작한 곳 지신허의 옛 땅이다.
지신허의 조선인(고려인)은 이주 5년 만에 165가구 인구 1천여 명에 달하였다. 기아와 압제를 피해 기하급수적으로 조선인이 유입된 것이다. 이 번창하던 지신허부락에 망국 조선의 망명지사가 나타나고, 혁명의 손길을 벗어날 수 없었다.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국영농장으로 개편되며 개인의 농지소유권이 사라졌다. 1937년 스탈린정권의 강압정책에 따라 이곳의 고려인 전체 인원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하며 흔적조차 사라진 것이다.
이후 이곳은 폐허의 불모지가 되었다. 이곳이 지신허라는 것을 누가 알 수 있었겠는가? 역사는 성쇠와 흥망을 반복하며 발전하는가!
공산주의 소비에트 연방이 1990년 들어 붕괴하며, 이곳 지신허에도 러시아인 농부가 찾아들었다. 그는 ‘알렉산드로 시지코프’ 라는 인물로 이곳에서 농장을 경영하기 위해 귀향한 농부였다. 1990년대 들어 한국과 러시아의 수교가 이루어졌다.
그 즈음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한 고려인의 실상이 서서히 드러났다. 1990년대 후반부터 조심스럽게 고려인과 한국인 역사가들이 지신허의 실체를 찾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고려인들의 증언과 유물들이 이 농장에서 발굴되기 시작했다.

연해주 고려인 역사는 또 한번 드라마틱한 경로를 간다. 한국 가수 서태지가 개방의 물결을 타고 2004년 5월 8일 블라디보스토크 ‘디나모 스타디움’에서 ‘한러 수교120주년 기념공연‘을 열었다. 서태지는 전위적 음악과 복장, 조명으로 현대음악에 갈증 나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젊은이들을 뒤흔들었다. 1863년 고려인의 집단 이주 이후 야외 스타디움에서 러시아의 젊은이 2만여 명이 모인 것도 기념비적인 기록이었다.
공연 수익금으로 ‘지신허마을 옛터’를 알렉산드로의 농장에 세워 헌정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는가! 음악인 서태지는 지신허에 그렇게 이름을 남겼다. 고려인의 최초 이주도 부활했다.
알렉산드로 시치코프가 죽고 그의 딸 엘레나 시지코에바 (53세)가 상속을 받아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귀향했다. 엘레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인터넷 마케팅과 웹 개발 전문가로 일해왔으나, 지금은 자연에 귀의하여 친환경 농업에 전념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고려인들이 개척한 땅에서 살고 있다는 감사함과 자부심으로 한국인들의 방문을 환대하고 있었다.

산 쪽에서 작업 중 개 짖는 소리에 내려온 그녀는 고려인들의 유물과 유적지를 자세히 안내했다. 그 넓은 농장에는 곳곳에 당시 조선인이 사용하던 맷돌과 토기 등 각종 유물들이 발굴되어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 고려인들의 숨결은 그렇게 살아있었다.
안내자인 조미향 여사와의 교분과 신뢰가 빛을 발했다. 집안으로 안내하며 흙투성이 농장 작업복을 순식간에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나타난다. 러시아 인들은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기쁜 일에는 옷을 갈아입고 현재를 만끽한다는 것이다. 매우 친절하면서도 의지가 돋보이는 강한 러시아 여성이었다. 고려인들이 이런 러시아 여성의 도움을 받았다면 정착에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엘레나는 즉석에서 염소 생우유와 샐러드를 요리해 주는 엄청난 친절과 응대를 보여주었다. 지신허를 찾아온 최고의 빈객으로 우리를 맞아준 것이다. 이 러시아 숙녀의 우아한 면모는 두고두고 기억이 날 것 같다.
지신허 이주 160년, 고려인의 역사는 고목의 나이테처럼 환희와 고통의 연륜을 더해간다. 신천지를 찾아온 자유와 생존의 감격, 혁명의 광풍, 지옥같은 강제이주였다. 2차대전의 폐허와 부흥, 페레스토이카와 글라드노스트(개혁과 개방), 다시 고려인의 귀향으로 역사의 드라마는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