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자크 루소(1712~1778)의 <고백록>은 서구 근대 자서전 문학의 출발점이자, 인간 내면에 대한 가장 용기 있는 탐구의 기록입니다. 루소는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며, 부끄러움조차 숨기지 않고 진실을 드러냅니다. <아시아엔>은 루소의 원전을 바탕으로 그의 유년기부터 철학자로서의 성숙, 글쓰기를 통한 구원, 그리고 고립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10회로 나누어 싣습니다. 연재를 통해 우리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넘어 ‘나는 고백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한 인간의 선언을 마주하게 됩니다. <편집자>
1749년부터 루소는 절친한 친구가 된 디드로의 권유로 프랑스 디종 아카데미 학술 공모전에 참여한다. 그는 <학문 및 예술론>을 제출해 1등을 차지하며 일약 이름을 알린다. 루소는 이 글에서 문명의 발달이 오히려 인간의 도덕성을 파괴했다고 주장하여 계몽주의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 무렵 그가 작사·작곡한 오페라 <마을의 점쟁이>가 공연되며 대중적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백과전서> 편찬에 참여하여 음악, 정치, 경제 항목에 관한 글을 썼으며, 계몽주의의 열기를 함께하면서도 그 한계를 자각하기 시작했다. 남프랑스 디종의 학술원에서 열린 또 다른 공모전에서는 “무엇이 인간 불평등의 근원인가?”라는 주제를 다루며 소유권 제도와 문명 사회의 불평등을 고찰한다. 그는 인간이 원래 자유롭고 평등한 자연 상태에서 살았으나, 문명이 발전하면서 오히려 비참과 불평등이 심화되었음을 주장했다. 이 주장은 훗날 <사회계약론>의 이론적 기초가 된다.
1762년 루소는 <사회계약론>을 통해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자연권이 국가의 법과 제도 속에서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당한 권력은 오직 ‘일반의지’에 기반해야 하며, 그것은 인민주권에 의해 실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수결은 그러한 일반의지를 구체화하는 수단이었다.
이 시점에서 루소와 볼테르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기 시작한다. 1755년 루소는 자신의 논문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당시 가장 저명한 문필가였던 볼테르에게 보내며 의견을 청한다. 그러나 볼테르의 반응은 혹독했다. 그는 책 여백에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약탈당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거지의 철학을 보라!”라고 적었다고 한다. 주식투자와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볼테르에게 “사유재산은 불평등의 원인”이라는 루소의 주장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볼테르뿐만 아니라 당대의 주류 계몽철학자들, 즉 이성을 통해 문명의 진보를 믿었던 이들에게도 루소는 도전적인 존재였다. 그들은 문명이 인간을 해방시킨다고 믿었지만, 루소는 오히려 문명이 인간을 억압하고 타락시킨다고 보았다. 이로 인해 루소는 계몽주의 진영 안에서도 점차 고립되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