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이 고향인 사람들조차, 또는 서울에 들어와 살아가는 사람들조차 한강에 수많은 섬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잠실섬, 부리도, 저자도, 여의도, 밤섬, 선유도, 난지도 등 한강을 수놓았던 역사의 흔적과 이름들은 한강개발로 인해 대부분 사라지고, 현재는 석촌호수와 몇몇 흔적만이 그 자취를 전할 뿐이다.
조선시대 지도에 따르면 잠실, 저자, 여의, 난지도 등 네 개의 큰 섬이 한강에 있었다. 이 섬들은 평소에는 백사장으로 육지와 연결되었다가, 큰물이 지면 섬이 되었고, 물이 빠지면 다시 육지로 이어지곤 했다.

한강에 떠 있던 잠실섬과 부리도
잠실은 원래 광진구 자양동 쪽에 붙어 있는 반도형 지형이었다. 당시 한강은 잠실섬 남쪽으로 흐르며 현재의 석촌호수를 거쳐 잠실종합운동장 서쪽으로 흘렀다. 잠실과 신천 일대의 옛 지명인 ‘하중도(河中島)’는 이곳이 한강 한가운데 있었음을 뜻한다. 한강은 송파 일대에 이르러 신천강(새내)과 송파강(남쪽)으로 갈라졌고, 이로 인해 잠실섬(360만 평)과 그 서남쪽의 부리섬(약 30만 평) 등이 형성되었다. 잠실 왼편에는 ‘무동’이라는 작은 섬도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부렴마을이 있던 부리섬은 평상시에는 잠실과 백사장으로 연결되어 같은 생활권이었다.
《한국지명총람》에는 부리도(浮里島)를 “큰물이 지면 사방에 물이 들고, 오직 이곳만이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아 부리도라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동국여지비고》에는 “한강 물이 넘쳐 지류가 생기는데, 이를 신천이라 한다. 가물면 걸어서 건널 수 있고, 물이 불면 저자도 아래에서 두 강줄기가 합쳐진다”고 적고 있다. 중종 23년(1528)에는 군사를 동원해 무너지는 강둑을 보호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조선시대, 한강 북쪽에 붙어 있던 잠실은 자양동과 얕은 샛강 하나를 두고 있었고, 배 없이도 건널 수 있었다. 그러나 1925년 을축년 대홍수 이후 이 샛강은 배를 타야 할 정도의 강폭으로 바뀌었다. 조선총독부는 홍수 이후 《근세에 있어서 조선의 풍수해》라는 책을 펴냈으며, 그 속의 잠실 일대 모습은 다음과 같다.
“물이 빠진 뒤 퇴적된 모래와 진흙으로 도로와 마을 흔적을 알 수 없을 정도였고, 포플라 나무와 목재 더미로 그곳이 마을터였음을 짐작케 한다.”
그 후 잠실 주민들은 새내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신천강을 건너 뚝섬나루로 건너가 서울로 들어갔다. 섬이던 잠실과 부리도가 육지로 변한 계기는 1971년 시작된 ‘잠실 공유수면 매립사업’이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반포, 구의동 등 한강 주변이 매립되어 가치 높은 땅으로 변모하기 시작했고, 잠실은 그 마지막 매립지였다. 정부와 서울시는 잠실 북쪽 모래사장과 새내마을 일부를 침수시켜 샛강인 신천강의 폭을 넓히고, 본류인 송파강을 메우기로 했다.
잠실섬에는 새내, 잠실, 부렴마을이 있었으며, 한강종합개발로 육지화되면서 옛 송파강 자리에 롯데월드가 들어섰고, 잠실종합운동장은 탄천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에 건립되었다. 옛 한강 본류를 짐작케 하는 유일한 흔적은 송파강 일부를 남긴 석촌호수다.

강가에서 산다는 것은 매년 반복되는 홍수 탓에 쉽지 않았다. 전라도 나주에서는 영산강이 자주 범람하자 “광산 큰 애기 오줌만 싸도 넘친다”는 말이 돌았고, 한강 인근에서는 “메기가 하품만 해도 넘치고, 개미가 침 뱉어도 잠긴다”는 말이 생겨났다. 이 일대 주민들은 여름철 홍수가 나면 광진구 자양동이나 삼성동 봉은사로 대피하곤 했다.
잠실 주민들이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972~73년경 토지보상금 수령 이후였다. 당시 이주민들이 집을 지은 곳이 현재의 잠실본동 새마을시장 옆이며, 이곳에 ‘신천’이라는 지명을 붙였다. 이후 잠실대교 인근 시영아파트 등이 들어서자 원주민은 ‘신천’을 떠났고, 새로운 주민들이 밀물처럼 유입되었다.
광진교에서 유입되는 한강 물을 신천강으로만 흐르게 하기 위해, 잠실 동북부를 깎아 물길을 내고 송파강 입구를 막았다. 그 결과, 송파강의 흔적만 남은 곳이 바로 현재의 석촌호수다.
잠실은 모래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모래 위에 지어진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다. 예전에는 아스팔트 도로도 없이 여름마다 강물이 범람했다. 지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잘 모른다. 시멘트와 철근이 잠실을 지탱해주고 있다. 그것들이 없다면 모래는 다시 흩어져버릴 것이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모래는 모래끼리 아무리 뭉치려 해도 뭉쳐지지 않는다. 슬픈 일이다.”
잠실은 이렇게 성동구 자양동에서 송파구 잠실동과 신천동으로 바뀌었다.
신정일의 『신 택리지 – 서울』에서, 한국종합예술학교 건축학과 학생들에게 한강을 주제로 강연하며 필자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한강의 옛 모습을 조감도로 남긴다면, 훗날 우리나라가 먹고 살 만해졌을 때 한강을 옛날 모습으로 복원하는 날이 올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그런 날은 올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