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오늘의 시] ‘대청호 아래’ 김시림

흰 페인트가 듬성듬성 벗겨진
유·도선 운임표 푯말이 있는 대청호
막지리와 서정리를 운항했다는
선착장 자리
작은 배가
하늘과 산그림자를 가득 싣고 흔들리고 있다
저 아래
수몰된 마을이 있다
귀퉁이가 닳아버린 오랜 시간들은
저 물밑에서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어미 발치에 앉은 아기 코끼리처럼
순하게 세 들어 사는 산들도
갈수록 옹졸해지는
거꾸로 선 내 그림자도
저 물아래 세상을 알지 못한다
호수가 뒤척일 때마다
새로 태어나는 빨래판 같은 물주름들
비밀 하나를 픔고 사는
호수는 입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