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최초의 한인타운 파차파 캠프
“미국 최초의 한인타운이 하와이도 아니고 LA도 아닌 LA에서 동쪽으로 60마일 떨어진, 한인들이 ‘하변(河邊)’으로 부른, 리버사이드에 있었다.”
2015년 10월 14일 한국외대 <세계의 한민족>(재외동포 이해교육) 특강, “Dosan Republic”(도산 공화국)에서 UC(캘리포니아주립대) 리버사이드 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 소장인 장태한 교수가 들려준 이야기였다. 리버사이드 ‘파차파 캠프’가 궁금했다. 2017년 7월, 필자는 한국외대 대학원생들과 함께 장태한 교수의 안내를 받아 파차파 캠프가 있던 곳을 찾았다. 마침 2017년 3월 리버사이드시가 파차파 캠프를 문화관심지(사적지)로 지정해 현판을 설치하고 4개월이 된 후였다.

현판에는 “이곳은 코리아타운의 효시이다. 당시 주소는 1532 파차파 애비뉴인데…도산공화국으로도 알려진 이곳에 한인 100여 명이 모여 20여 채의 가옥으로 판자촌을 형성했으며…”라는 설명과 ‘1호'(No.1)라는 숫자, ‘1905∼1918’이라는 연대 표기가 차례로 새겨졌다.
도산이 이끈 파차파 캠프는 미혼 남성 중심이던 다른 한인 거주지와 달리 가족 중심의 공동체였다. 비록 전기·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열악한 주거형태였지만, 한인노동국(노동주선소) 설립 이후 한인들은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어 한때는 300명 이상의 한인이 살기도 했다. 지도자인 도산 안창호 선생 자신도 낮에 오렌지를 땄는데, 파차파 캠프의 한인들은 밤에는 영어를 배우고 일요일에는 예배를 드렸다. 도박과 폭음을 금하는 엄격한 자치규약도 시행했다. 파차파 캠프는 결혼식, 출산, 장례식, 파티 장소를 제공했다. 미국 최초의 한인타운이었다.

1904~05년경에 만들어진 파차파 캠프는 1905년 안창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한 애국계몽단체인 공립협회 설립의 중심지요, 공립협회를 뒤 이은 대한인국민회의 첫 번째 지방회이고, 1906년 신민회가 발기된 곳이다. 캠프 거주 한인들은 <신한민보>를 통해 조국의 소식을 듣고 활발한 모금 활동을 전개하는 등 독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10년 8월 29일 나라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는 ‘망국일’ 행사를 하기도 했는데, 1911년 8월 29일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한인들이 ‘국치일’ 기념행사를 한 것과 상통했다.
장테한 교수는 도산 안창호가 리버사이드로 돌아온 파차파 캠프에서 개최된 1911년 12월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 4차 회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민주공화제의 ‘미국발’ 계보: 대한인국민회와 <대동단결선언>”, <서강대학교 社會科學硏究> 第29輯 1號, 2021) 북미 지방회장 전원이 참석한 총회가 열흘 밤낮을 새고 새벽 3시에야 끝났는데, 대한인국민회가 해외 한인을 대표하는 무형정부를 추구하고 대의원 제도와 사법제도 도입 등 민주 공화주의를 제도화시켰다는 점이다. 당시로써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민주주의의 원형, 한마디로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리버사이드 파차파 캠프의 실상이 알려지기 전까지 연구자들은 중부 캘리포니아 리들리-다뉴바가 북미 최초의 한인타운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사실 리버사이드는 1913년 한파로 오렌지 작황이 큰 타격을 받았고 그 이후 한인들도 리들리-다뉴바 등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 도산 안창호와 우남 이승만이 독립운동을 위한 모금을 위해 방문한 중부 캘리포니아 리들리-다뉴바 지역이 새로운 한인타운으로 역사의 바통을 잇게 되었다.
현재 리버사이드 시청 앞 광장에는 성공한 재미동포 기업인으로 ‘세계 한상(韓商)의 대부’로도 불리는 홍명기 선생 외 한인사회의 기부로 세워진 도산 안창호 선생 동상이 서 있고, 서울 강남구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 부부가 영면해 있는 도산공원이 있다. 1999년 리바사이드시와 강남구는 자매결연을 맺고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파차파 캠프 전시회와 <도산공화국> 책 출간
파차파 캠프를 알리기 위해 UC 리버사이드 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 장태한 소장과 캐롤 박 연구원은 “파차파 캠프: 미국 최초의 코리아타운” 전시회를 2021년 10월부터 2022년 2월까지 리버사이드의 UCR 아트 센터에서 개최했다. 이후 전시회는 2024년 6월부터 9월까지 샌프란시스코(2024.6~9월), 워싱턴 DC(2024.10~11월), 뉴저지(2025.1~2월), 뉴욕(2025.3~4월)에서 개최되었고, 2025년 6월 현재 시카고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파차파 캠프 전시회가 열렸으면 좋겠다.

지난 3월 12일 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에서 만난 장태한 교수는 7년 전에 나온 <파차파 캠프 : 미국 최초의 한인타운>(성안당, 2018) 책을 2021년 발표한 연구 논문을 추가하여 ‘도산공화국’이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11월에 나올 예정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3일과 4일, 위기에 처한 한국의 민주주의를 대한민국 국회와 자발적으로 모인 일반 시민들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구했는데, 100년 전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파차파 캠프에서 보여준 ‘도산공화국’이 한국사회에 널리 알려지고 파차파 캠프의 소중한 역사 사진이 한국에서도 전시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