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시선] 가난한 사람처럼 사는 부자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사랑, 생명, 돈, 권력, 자유 등 다양한 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본질적인 것은 ‘자유’일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자기 의지대로 자유롭게 살다 떠나는 것, 겉으로 보면 어려운 일 같지 않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다. 감옥에 갇힌 것도, 군대에 있는 것도 아닌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저런 일들에 얽매여 자기 뜻대로 살지 못한다.
나 역시 겉보기엔 자유롭게 사는 것처럼 보인다. 출근하지 않고, 양복에 넥타이를 매지도 않으며, 시간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출근하지 않는 대신 월급도 없다. 매 순간 글을 쓰고, 강연하고, 답사하고, 방송에 출연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내가 자유를 가장 철저히 빼앗겼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군 복무 33개월 15일 동안, 그리고 1981년 초, 모처에서 고문을 받고 풀려나기 전까지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이네는 이렇게 말했다. “봄이 무엇인지는 겨울이 되어야 알 수 있다. 가장 아름다운 5월의 노래는 화롯가에서 만들어진다. 자유에의 사랑은 감옥의 꽃. 감옥에 갇혀보아야 비로소 자유의 가치를 안다.”
남자들은 감옥이나 군대에서 일정 기간 자유를 반납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유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쿠퍼는 “자유는 천 가지의 매력을 갖고 있지만, 노예는 아무리 만족해도 자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괴테도 <에커만과의 대화>에서 말했다. “자유란 오묘한 것이어서, 스스로 충분함을 알고 자기 분수를 지킬 줄 알면 누구라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사용할 수도 없는 과도한 지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유가 너무 많으면 방종해지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적당한 자유, 때로는 약간의 구속을 포함한 그런 균형 잡힌 자유를 갈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피카소는 말했다. “성공은 대중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고독 속에 있다. 나는 그래서 가난한 사람처럼 사는 부자가 되고 싶다.”
우리 역사 속에서 진정한 자유인의 모범을 보여준 사람은 신라의 고승 원효일 것이다. 그는 ‘그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철저한 자유인’이 되고자 무애사상(無碍思想)을 터득했고, 이후 무애춤을 추며 세상을 거리낌 없이 살다 갔다. 그 무애춤이란, 기쁨이나 슬픔을 격식 없이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팔과 다리를 흔들고, 머리를 흔들며 추는 춤이다. 자라처럼 몸을 움츠리고 곱사처럼 등을 굽히며, 두 소매를 휘젓고 다리를 세 번 들었다 놓는 춤. 바로 그것이 원효의 무애춤이었다.
베르그송은 “행위하라, 그러면 자유를 알게 될 것이다”라고 했고, “많은 사람들은 진정한 자유를 알지 못한 채 죽는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진정한 자유인일까?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존재다. 그가 어떤 길을 가든 자유다. 그러나 그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이 전제된 자유. 그 속에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자유. 그 자유를 하나하나 추구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상이 도래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