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 언론감시단체 국경없는 기자회(RSF)는 오는 6월 3일 치러질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요 대선 후보들에게 공영방송의 정치적·재정적 독립성을 핵심으로 한 5대 언론 자유 개혁안을 촉구했다. RSF는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은 공영방송의 자율성과 신뢰 회복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며, 각 후보가 구체적 이행 방안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이번 권고는 이재명(더불어민주당), 김문수(국민의힘), 이준석(개혁신당), 권영국(녹색정의당), 황교안·송진호(무소속) 등 주요 후보 전원에게 전달됐다.
공영방송의 독립, 민주주의의 척도
RSF는 첫 번째 권고사항으로 공영방송의 정치적 개입 차단과 안정적 재정 구조 마련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방송사 임원 임명 절차의 투명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충분한 재원을 확보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편집권의 자율성과 미디어 다양성 확보, 그리고 국민 신뢰 회복의 핵심 조건이라는 설명이다.
한국 공영방송은 정권 교체 시마다 임원 교체, 편성 개입 논란 등이 반복돼왔으며, 특히 최근 몇 년간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특정 언론사에 대한 공격적 대응 등이 정치적 논란으로 불거진 바 있다. RSF는 “편집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언론은 정권의 도구가 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나머지 네 가지 핵심 권고 사항
① 언론인에 대한 폭력·법적 탄압 중단
RSF는 정치인, 공직자, 기업 등에 의해 언론 보도를 이유로 가해지는 물리적 폭력, 법적 소송, 차별적 조치에 대해 명확히 반대 입장을 밝히고, 이를 제도적으로 금지할 것을 촉구했다. 이는 언론의 안전과 독립성 확보를 위한 최소 조건이다.
② SLAPP 방지법 제정
전략적 봉쇄소송(SLAPP: 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은 언론을 위축시키기 위해 제기되는 악의적 소송으로,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법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RSF는 후보들이 해당 법안 제정을 공약에 포함해야 한다고 밝혔다.
③ 허위정보 규제의 사법적 통제 도입
RSF는 디지털 플랫폼이나 정부가 허위정보를 이유로 콘텐츠를 차단하거나 삭제할 경우, 사법적 감독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온라인 플랫폼은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출처를 표시하고, 공정한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④ 독립 언론과 윤리적 저널리즘에 대한 지원
사실확인(팩트체크) 활동과 윤리 기준을 지키는 독립 언론에 대해 재정적·제도적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RSF는 특히 국제 표준인 저널리즘 트러스트 이니셔티브(JTI)를 예로 들며, 신뢰받는 언론을 제도적으로 보호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언론 자유, 회복의 기로에
RSF에 따르면, 한국의 세계 언론 자유 지수는 2022년 43위에서 2025년 61위로 하락했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오랫동안 유지해온 ‘언론 자유 선도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조사에서는 한국인의 언론 신뢰도가 30% 내외로 나타났으며, 이는 주요 민주주의 국가 가운데 낮은 수준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2년 취임 이후 언론 보도를 “가짜 뉴스”로 규정하며 비판 언론과 갈등을 빚어왔다. 2024년 12월에는 비상계엄 선포로 탄핵됐으며, 언론 자유에 대한 통제 우려도 그 일환으로 지적돼왔다.
세드릭 알비아니 RSF 아시아·태평양 디렉터는 “이번 대선은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한국 언론 자유의 분기점이 되어야 한다”며, “모든 후보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언론 개혁안을 제시하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