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물도 기억하고 판단하고 진화하고 있다.”(66쪽)
“그래도 계속 가라.”(158쪽)
“꿈 꾸던 가출”(214쪽)
시인 김추인의 기행산문집 <그러니까 사막이다>은 위 3문장을 위해 쓰여진 것일까? 아니다. 사유와 고독이 깃든 배낭 하나에 의지한 채 사막을 걷고, 그 속에서 삶의 실루엣을 붙잡아 냈다. 49일간의 남미 아프리카 사막을 두 발로 걸으며 작가는 침묵과 황량함 속에서 오히려 생의 밀도를 발견한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사막 위를 걷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모래알이 발등에 닿고, 해가 지는 붉은 수평선 위로 길어진 그림자가 눈에 선하다. “내 그림자가 나보다 먼저 정상에 도착해 있었다”는 오묘한 문장 그대로.
낙타와 노을, 유목민과 별,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자신이 함께 한 모든 순간이 책에 담겨 있다. 빠르게 지나가는 도시의 시간과는 달리, 사막의 시간은 묵직하게 흐르고, 그 안에서 결국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니까 사막이다>는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도, 삶의 의미를 되짚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울림을 준다. 누군가에게는 발길이 닿지 못할 그곳이, 책을 통해 마음으로 먼저 걸어볼 수 있는 풍경이 된다.
2024년 여름 문화일보 장재선 기자 소개로 악수 한번 나눈 시인이 자신의 기행산문집을 보내왔다. 읽어보니 화려하지 않지만 깊은 글이다. 여운이 길다. 그러니까 그는 천상 시인이다.